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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잠이 오지 않는다. 중요한 내일 아침 회의 준비는 마쳤는데, 가슴 한쪽이 무겁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 누구나 한 번쯤 그런 밤을 보낸 적이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는 이 같은 불안을 자아에 보내는 '위험신호'라 불렀다. 위험하니 피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 불안이 위험이 아니라 새로운 주체로 태어나는 일종의 '초대장'이라면 어떨까.
새책 불안의 카이로스(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사람의 무늬)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저자 안상혁 성균관대 영상학과 교수는 오랜 시간 천착해 온 '불안'이라는 주제를 집대성했다. 인간학적 관점에서 불안의 본질을 깊이 있게 분석했다.
이 책에서 펼치는 주장은 단순하면서도 도발적이다. 인공지능(AI) 시대의 파고를 넘어서기 위해서 불안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식하는 대신, 자아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역설적 희망의 기제로 살펴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 교수는 불안의 긍정적 측면을 조명하기 위해 불안 연구의 두 거장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1813~1855)와 자크 라캉(1901~1981)의 저서, 이론을 근거로 들어 현대인의 심연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본다.
키에르케고르는 일찍이 불안이라는 감정의 본질을 깊이 탐구한 사상가다. 1844년 발표한 저서 '불안의 개념'에서 그는 불안을 단순한 걱정이나 근심이 아닌 '자유의 현기증'이라 정의한다.
플라톤의 '소피스트'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존재란 곧 가능성'이라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불안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할 자유를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며, 불안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깊은 뿌리이자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여는 열쇠로 정의했다.
정신분석학자 라캉(1901~1981)은 키에르케고르가 제시한 불안의 개념을 자신의 정신분석 이론에 접목시켜 한층 더 확장했다. 라캉이 말하는 불안의 진정한 의미는, 내가 갈망하는 욕망이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니면 타인이나 사회가 심어준 것인지 의심해 보라는 개념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사교육 마케팅, 명품 마케팅에 포섭돼 자녀의 학원 뺑뺑이와 명품 소유욕 등으로 나타나는 욕망의 본질이 사실상 타인의 시선으로 인한 불안의 결과물은 아닐지 성찰을 제공한다.
이외에도 저자는 키에르케고르에게서는 불안의 초기 형태를 담고 있는 '이것이냐 저것이냐'(1943)와 불안이 심화된 삶의 상태를 다룬 '죽음에 이르는 병'(1846)을, 라캉에게서는 불안과 욕망의 얽힘을 다룬 '세미나 7권', 불안이 증상을 통해 새로운 주체를 탄생시키는 과정을 담은 '세미나 23권'도 참고해 논지를 탄탄히 했다.
결과적으로 '불안의 카이로스'는 불안을 제거해야 할 감정이 아닌,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카이로스(Kairos, 창조적 결단의 시간)로 재해석한다. 키에르케고르와 라캉은 불안을 크로노스(cronos) 시간에서 카이로스(kairos) 시간으로 이끈다.
크로노스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반복적이고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이고, 카이로스는 자신에게만 특별하고 창조적인 시간이다. 불안은 크로노스 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을 반복하며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고, 불안의 카이로스를 경험하는 나는 모든 보편적인 규정과 규범에 도전하며, 선택과 결단, 실천으로 예외적인 개체성을 만들어낸다.
안 교수는 이 대목에서 시선을 현대 한국 사회로 돌린다. 자녀의 학원 뺑뺑이, 명품 소유욕, SNS 속 과시적 소비. 우리를 사로잡는 이 욕망들의 정체가 사실은 '타인의 시선'이 만들어낸 불안의 산물이라는 해석이다. 결국 라캉에게 불안이란 고유한 존재감을 찾아가는 여정의 출발점이며, 타인의 욕망이 아닌 '진짜 나'의 좌표를 확인하게 하는 감정이었다.
저자가 책 제목에 담은 '카이로스(Kairos)'는 그리스어로 '시간'을 뜻한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 시계 바늘이 째깍거리며 모두에게 동일하게 흐르는 반복의 시간이다. 다른 하나가 카이로스, 오직 자신에게만 특별하고 창조적인 결단의 시간이다.
안 교수는 키에르케고르와 라캉이 공통적으로 불안을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로 건너가는 다리로 봤다고 분석한다. 불안이 "나는 무엇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고, 그 균열 사이로 보편적 규범에 도전하며 선택과 결단, 실천으로 예외적인 '나'를 만들어내는 순간이 바로 카이로스라는 것이다.
AI가 매끈한 정답을 쏟아내는 시대일수록 사유 없는 지식은 무지보다 위험하다고 저자는 강하게 경고한다. 그런 상황에서 불안이야말로 낡은 지적 허상을 깨뜨리는 필연적인 균열이자, 그 틈 사이로 미지의 영역을 감각하게 하는 희망의 빛이라는 역설이다.
저자는 사회경제적 불안을 극복하는 힘은 불안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서 나오며,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주도하는 주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상혁 교수는 1998년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초임 교수로 부임해 인재를 양성하며, '불안'을 키워드로 연구해왔다. 주요 저서로는 '중국 6세대 영화, 삶의 본질을 말하다'(2008), '불안, 키에르케고어의 실험적 심리학'(2015), '불안은 감각을 잠식한다'(2020) 등이 있다.
wideope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