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까지 암호화폐, 은으로 대거 이동
귀금속 변동성 부담 한동안 계속될 듯
[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CME)의 귀금속 선물에 대한 잇단 증거금 인상이 투자자 사이에서 1980년과 2011년의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관련 사례는 거래소의 레버리지 고삐를 죄려는 조치가 투기 자금의 청산을 부르고 청산이 또 다른 청산으로 이어진 거래소 개입발 시세 폭락의 전형으로 불린다.

CME는 금·은 선물 계약의 증거금을 대폭 인상해 2일(현지시간)부터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백금과 팔라듐 선물 계약 역시 포함이다. 은 선물만 보자면 CME의 증거금은 지난달 26일부터 현재까지 한 달 만에 총 4차례 인상이다.
증거금 인상은 금·은 시세가 지난주 31일 케빈 워시(전 연준 이사)의 연준 의장 후보 지명 재료를 빌미로 급락한 와중에 나온 소식이다. 당일 금과 은 가격은 각각 온스당 9%, 28% 폭락했다. 증거금 인상발 시세 변동성이 계속될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은 시장의 변동성에 초점이 맞춰진다. 은 시장은 최근 수개월 암호화폐 투기자금이 대거 이동한 영역이다. 토큰화된 은 선물(스테이블코인을 증거금 삼아 24시간 거래되는 은 가격 연동 파생상품)과 뉴욕상품거래소(COMEX, CME 산하) 파생상품으로 유입했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지난달 31일까지 24시간 동안 토큰화된 은 선물의 청산 규모는 1억4200만달러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최근 들어 암호화폐 거래소가 귀금속 투기의 '거래 인프라'로 전용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거래소의 증거금 인상이 시장을 뒤흔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더 길게 올라가서 보면 1980년 이른바 '실버서스데이'는 그 영향력을 보여준 원형이다.
1980년 당시 사태의 장본인은 미국 텍사스 석유 재벌 헌트 형제였다. 이들은 달러 약세와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은을 대량 매집했다. 은 가격이 1979년 1월에서 1980년 1월 8배 폭등하자 거래소는 레버리지를 옥죄었다. 1980년 3월 헌트 형제가 마진콜 불이행에 빠지며 은 가격은 하루 만에 반 토막 났다.
2011년에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당시 은이 당해 1월부터 4월까지 석 달 만에 175%나 치솟자 CME는 당해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증거금을 80% 넘게 인상했다. 은 가격은 수 주 만에 30% 가까이 급락했다.
물론 당시 거시경제 변수의 조합은 달랐지만 증거금 인상이 레버리지 자금을 청산시켜 시세 급락을 유발한 역학은 동일했다. 1980년은 특정 세력의 물량 장악 시도가 촉발한 붕괴였고 2011년은 양적완화 종료 예상과 달러 강세 기대가 겹친 결과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급락을 펀더멘털 결함이 아닌 포지션의 극단성이 빚은 결과로 해석한다. 증거금 인상은 레버리지에 기댄 단기 투기 자금을 퇴출하는 역할을 해 오히려 건전한 환경을 조성한다는 논리다.
최근까지 월가에서는 금과 은 시장의 구조적인 수급상의 이유로 추가 강세를 전망하는 의견이 많았다. 금은 중앙은행들의 매수세가 '장기 전략적 축적형'으로 바뀌었고 은 시장은 공급 부족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bernard020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