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상용 기자 = 미국 워싱턴 DC에 자리한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본관은 '에클스' 빌딩이라 불린다. 1934년부터 1948년까지 연준 의장직을 수행했던 마리너 에클스를 기리기 위함이다. 에클스의 이름이 연준 본관 빌딩에 붙여진 것은 그가 연준 독립성 수호의 전설적 인물로 통하기 때문이다.
전날(현지시간 11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영상 성명을 통해 미국 법무부가 연준 청사 개보수 과정에서 초과된 비용을 빌미로 형사 기소 취지의 수사를 벌이고 있는 사실을 공개했다.
에클스처럼 파월 의장이 '연준 독립운동'에 매진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이번 수사의 배경으로 작용했을 수 있지만, 상황은 자칫 '긁어 부스럼'이 되는 꼴로 흘러갈 수 있다.
수사의 편파성과 부당성을 알리며 트럼프에 정면으로 맞서는 파월의 모습에서 시장은 넉 달 뒤 혹시 모를 `에클스 모멘트`를 염두에 둬야 할지 모른다. 여전히 낮은 확률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이번 법무부의 표적 수사로 그 가능성은 높아졌다.
에클스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돈을 풀라'는 압력에 맞서다, 1948년 의장직 재임에 실패했다. 의장직에서 물러나면 이사직도 내려놓는다는 관행을 깨고 에클스는 1951년까지 잔여 이사 임기를 모두 채웠다.
파월 의장의 연준 의장직 임기는 오는 5월까지지만 연준 이사직은 2028년 1월까지다.

◆에클스 모멘트
에클스가 처음 연준 의장직을 맡았던 시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궁합은 아주 좋았다. 뉴딜 정책을 지지하며 대공황 극복에 힘을 모았다. 백악관과 갈등이 폭발한 것은 루스벨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해리 트루먼이 취임하면서다.
이 때는 2차 대전이 끝나고 세계가 냉전으로 접어들던 시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의 갈등이 한국전쟁이라는 형태로 표출됐던 시기다. 미국은 군사·외교에 막대한 지출을 감당해야 했다.
트루먼 행정부는 더 낮은 금리에 더 많은 국채를 찍어내기 위해 연준을 닥달했다.
연준의 입장도 여의치 않았다. 이미 2차 대전 동안 낮은 금리에 정부 국채를 대거 매입하며 재정을 떠받쳤다. 그런 연준이 보기에 또 한차례의 대규모 금융억압(시장 금리의 인위적 억압과 부채 화폐화)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게 자명했다.
에클스는 물가를 진정시키기 위해선 긴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트루먼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의회 청문회와 외부 강연을 통해 연준의 통화정책 독립만이 물가 안정을 통한 지속 가능한 경제적 번영을 보장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루먼과 관계는 악화일로였고, 1948년 트루먼은 그를 연준 의장으로 재임명하지 않았다. 에클스는 연준 의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이사로서 잔여 임기를 끝까지 채우며 연준내에서 계속 존재감을 발휘했다.
에클스가 트루먼의 요구에 정면으로 맞섰던 일화들은 이후 '연준의 독립된 금리결정을 보장하는' 1951년의 재무부-연준 협약(Treasury–Fed Accord)이라는 결과물로 이어졌다.

◆5월의 대역전극? '꼭두각시 의장 vs 정신적 지주'
임기가 넉 달 밖에 남지 않은 연준 의장을 법무부가 왜 이렇게 궁지로 모는지에 대해서는 추측만이 난무할 뿐이다. 트럼프의 '뒤끝 작렬'일 수도, 후임 연준 의장에 보내는 시그널일 수도 있다 - "백악관의 뜻을 거스르면 재미 없다"는 본보기.
또 한 가지는 파월 의장이 5월 의장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에클스처럼 연준 이사직을 유지하며 연준 내부 정서를 '반(反) 트럼프-연준 독립'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했을 수 있다.
☞ 구박받던 연준 파월의 복수극이 펼쳐진다면...'팝콘각'
그 위험의 싹을 잘라내기 위해서라도 파월 의장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게 필요했을 수 있다. 일찌감치 미운털이 박혔던 파월은 연준 의장직에 미련을 두지 않았지만 잔여 이사직 임기를 다 채울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힌 바 없다.
참고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통화정책 결정은 12명 위원들의 표결로 이뤄진다. 의장을 포함한 7명의 연준 이사와,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가 당연직으로 참석한다. 여기에 나머지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 11명 가운데 4명이 1년 임기로 돌아가며 투표권을 행사한다.
사실상 7인으로 구성된 연준이사회가 통화정책을 지배하는 구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사회에 전임 수장이 계속 버티고 있으면 연준이 트럼프 뜻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트럼프와 법무부가 이를 염두에 두고 일을 벌였다면 오히려 자충수가 될 위험도 적지 않다. 이번 공세가 파월의 맷집과 결연한 의지만 키워놓았을 수 있어서다. 변호사 출신인 파월은 이미 주요 로펌과 접촉하며 다양한 상황별 대응책을 논의했을 거라는 관측이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을 통해 전해진다.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은 1월 중 차기 연준 의장을 임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주말을 지나며 이번 트럼프 행정부와 연준 의장의 정면 충돌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트럼프에게 이는 일종의 그림자 연준 의장 옹립을 위한 과정이었을 수 있다. 오는 5월까지 그림자 연준 의장(차기 연준의장)을 내세워 통화정책 방향을 좌지우지하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5월로 접어들면 전세가 완전히 역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파월이 넉달 뒤에도 계속 연준 이사직을 수행한다면 연준 내부와 월가에서는 '트럼프의 꼭두각시 의장(차기 연준의장)'과 '제대로 된 정신적 지주(파월)'라는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는 신임 연준 의장의 정책 논리가 구관에 의해 수시로 공격당하거나 무시당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osy75@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