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상용 기자 = 연말 원화 환율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달러/원 환율이 수시로 1480선을 넘나들면서 1500선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당국 개입으로 24일 달러/원은 한때 20원 가까이 급락하기도 했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내년 달러는 미국 경제의 예외주의 후퇴와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추가 금리인하로 완만한 속도로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덕분에 원화 가치(달러대비 원화의 상대 가치)도 내년에는 점진적으로 반등할 것이라는 예상이 월가에서 주를 이룬다. 다만 원화에 가해지는 구조적 하방 압력은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환율은 그 자체로 거시경제의 자동조정자 기능을 수행하지만, 투기적 베팅이 결합하면 경제주체들의 고통과 시장 내 혼란은 깊고 길어진다. 그 일방적 기대 쏠림을 억눌러야야 할 필요성은 내년에도 수시로 제기될 수 있다.

1. 미국 예외주의의 후퇴와 달러
월가의 투자은행들이 제시하는 내년말 달러/원 환율 전망치는 대략 1400원~1420원 선이다. 최근 1480선 부근에서 거래되고 있는 달러/원 환율이 점진적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점쳤다.
나홀로 '번영의 섬'을 구가하던 미국의 성장률이 내년 다소 둔화하고(2% 안팎), 연준은 기준금리를 1~2차례 더 내릴 것이며 뉴욕 증시의 열기 또한 최근 2~3년 수준에 못미칠 것이라는 전망을 배경으로 한다. 포트폴리오 자금 흐름 측면에서는 뉴욕 증시에 집중됐던 자금들이 미국 바깥 자산으로 분산되면서 약한 달러와 상호교감할 것이라는 설명이 보태졌다.
반면 원화를 압박했던 무역통상 부문의 불확실성이 가시고, 인공지능 등 핵심 기술 영역의 꾸준한 성장 사이클에 힘입어 원화는 반등할 것으로 기대됐다. ING와 MUFG는 내년말 달러/원 환율 전망치를 1400원으로 제시했다. 모간스탠리의 전망치는 1425원, UBS의 전망치는 1440원이다.

2. 구조적 압력
90년대 이후 유가가 하락하고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오를 때 원화는 통상 강세 흐름을 보였다. 이 조건 하에서는 한국의 주된 외화 유출 통로와 유입 통로를 통해 나가는 달러는 줄고, 들어오는 달러는 늘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메커니즘이 올해만큼 어긋난 적도 없다. 그 경로가 막힌 것은 뭔가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미국과의 금리 차이다. 한국의 돈값(금리)은 거의 항상 미국보다 높았다. 그러나 양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는 2022년 7월 역전된 이후 여전히 상당한 수준의 역전폭을 유지하고 있다. 돈은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옮겨가기 마련이다. 그 유속이 글로벌 시장에서는 환율로 표현되곤 한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제때 숙제를 하지 않은(통화가치 안정을 도모하지 못한) 한국은행 탓이 크다.
다음으로 자본계정(금융계정)을 통한 돈의 이동이 크게 변했다. 과거 직접투자(FDI)와 포트폴리오 자금의 흐름은 국내 유입 우위였다. 지금은 반대다. 역대급으로 많은 돈이 해외, 특히 미국 증시로 옮겨갔다. 한미 관세협상으로 향후 미국에 직접투자해야 할 자금도 연간 200억달러, 총 3500억달러에 달한다.
무엇보다 한국의 성장 엔진이 식고 있다. 실질 성장률은 가장 덩치가 큰 미국 경제에도 못미친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의 잠재 성장률이 기조적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점이다 - 이제는 2%선 아래로 내려왔다는 게 정설에 가깝다.
서학개미들이 미국 주식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미국 기업이 한국 기업보다 더 돈을 잘 벌어서다. 외환시장에서 한국 원화가 달러 대비 약한 것도 마찬가지다. 미국 경제가 순항하는 동안에도 한국 경제는 예전만큼 돈을 잘 벌지 못하고 있다(예전만큼 부가가치를 늘리지 못한다).

3. 투기적 쏠림 경계
이러한 구조적 압력은 내년 원화가 반등하더라도 그 폭을 제한할 공산이 크다. 수시로 투기적 원화 약세 베팅을 부추길 요소도 잠복해 있다.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최저치로 떨어진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과 일본 등에 서둘러 대미 투자 약속을 이행하라 채근할 참이다. 이미 달러/원 환율에 선반영된 재료이긴 하지만 실제 대미 투자 이행 단계에서 시장의 투기심리를 자극할 위험이 도사린다. 같은 이유로 일본 엔에 들러붙은 투기적 엔화 쇼트 베팅이 원화로 넘어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인한 미국의 물가상승률 왜곡이 복원되는 시점도 경계해야 한다. 미국의 11월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큰 폭으로 둔화한 데는 주거비 산출에 필요한 표본집단 설문 데이터가 셧다운으로 누락된 측면이 크다. 내년 4월 해당 데이터가 복원되면 과소집계됐던 물가상승률이 되튀어 오르면서 연준의 금리인하 전망이 급히 후퇴할 수 있다. 이 무렵 반등하는 달러를 따라 달러/원 환율도 출렁댈 수 있다.
이날(24일) 달러/원 환율은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으로 한때 20원 가까이 밀리며 1465.5원까지 하락했지만, 이런 류의 구두개입 효과는 오래 가지 못한다. '어디 한번 실탄을 보여봐라'는 시장의 도발 앞에 점점 효력을 잃기 쉽다. 자칫 시장의 배짱만 키워 놓을 수 있고, 서학개미들에게는 싼 값에 미국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될 수도 있다.
물론 실탄 개입의 효과도 마찬가지다. 금리와 포트폴리오 자금흐름 등 펀더멘털 측면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기전까지 언발에 오줌 누는 격이다. 그럼에도 시장에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당국이 무섭다는 경험을 학습시켜야 한다. 실탄 개입(달러 매도 개입)이 필요한 시점에는 나홀로 개입보다 미국과 공조 개입 등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osy75@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