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전기차 축소 방침…SK온과도 '각자도생'
배터리 3사, 실적 구원투수 ESS 집중 강화
[서울=뉴스핌] 김아영 기자 = LG에너지솔루션이 포드와 체결했던 9조6000억원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해지하면서 전기차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배터리 업계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동화 전략을 대폭 수정하고 있는 만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의 무게 중심이 옮겨갈 전망이다.
18일 LG에너지솔루션에 따르면, 회사는 포드로부터 전기차 배터리 셀·모듈 장기 공급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해지 금액은 9조6030억원으로, LG에너지솔루션 지난해 매출액의 28.5%에 해당하는 규모다. 물량은 2027년부터 2032년까지 공급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美·유럽, EV 정책 변화에 배터리업계 "중장기 계약도 보장 안 돼"
이번 계약 해지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 폐지 방침 이후 포드가 전동화 전략을 손질한 결과로 해석된다. 포드는 'F-150 라이트닝' 픽업트럭 등 주력 전기차 모델 생산을 중단하는 등 전기차 중심 라인업을 축소하고,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 차량 비중을 다시 늘리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유럽향 상용 전기차용 배터리 프로젝트 일부가 정리되며 LG에너지솔루션과의 장기 공급 계약도 취소됐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최근의 정책 환경과 전기차 수요 전망 변화로 인한 포드의 일부 전기차 모델 생산 중단 결정과 이에 따른 계약 해지 통보에 따른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포드는 SK온과의 합작 체제도 재편했다. 미국 내 배터리 생산 합작법인인 블루오벌SK의 운영 구조를 바꿔 켄터키주 공장은 포드 자회사가, 테네시주 공장은 SK온이 각각 단독으로 맡아 운영하는 형태로 나눈 것이다. 공동 투자·경영에서 벗어나 각자 운영을 통해 여러 고객사와 전기차·ESS 등 다양한 사업에 유연하게 대응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자동차 전동화 전략 변화는 유럽에서도 감지된다. 한때 2035년을 목표로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완전 전동화 규제를 추진하던 유럽연합(EU)은 해당 방침을 사실상 철회했다. 이에 유럽 완성차 업체들 역시 전기차 투자 강도를 다시 조절하는 분위기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해지는 중장기 계약이라고 해서 더 이상 절대적인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환경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보조금 축소, 고금리 환경이 겹치면서 완성차 업체들이 전동화 전략을 조정하는 국면에 들어선 만큼, 이미 체결된 대규모 공급 계약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됐다는 의미다.
◆배터리사 '체질 개선' 속도…ESS·고객 다변화로 리스크 분산
국내 배터리 업계에서는 이번 사례처럼 이미 체결된 대규모 계약에서도 추가 변동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7년 이후 6년간 유럽용 상용 전기차에 공급하기로 했던 물량이 사라지면서 폴란드 공장 라인 가동 계획과 중장기 수주·투자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통상 전략 변경에 따라 일부 증설 계획이나 차종 구성이 바뀌는 일은 있었지만, 10조원에 육박하는 계약이 통째로 해지된 사례는 유례가 없다는 평가다.
다만 배터리 업체들은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불확실성을 극복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이미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응해 사업 구조 다변화를 서두르고 있다. 북미를 중심으로 인공지능(AI) 인프라·데이터센터 투자가 늘어나면서 ESS 수요가 빠르게 커지고 있어 ESS용 배터리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우려는 전략이 강화되는 분위기다. 전기차·ESS·산업용 등 적용 분야와 지역·고객 구성을 동시에 넓혀 특정 완성차나 단일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배터리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들이 전동화 속도를 조절하는 시기에 들어간 만큼 배터리사들도 전기차 한 축에만 기대기보다는 ESS 등으로 체질을 바꾸는 작업이 불가피하다"며 "이번 LG에너지솔루션과 포드의 계약 해지 사례는 시장의 성장 방향이 바뀐 게 아니라 그 속도와 경로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신호에 가깝다"고 말했다.
aykim@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