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발의…계약갱신청구권 2회·임대차 3년 연장
전세시장 '불안' 재현 우려…집주인 매물 회수·월세 전환 가능성 ↑
[서울=뉴스핌] 최현민 기자 = 전세 계약을 최대 9년까지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전세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급등하는 전세보증금으로부터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지만, 임대인의 부담이 커지면서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월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대란'이 현실화될 경우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은 한층 더 커질 전망이다.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되면 월세 시장이 팽창하고, 이는 결국 임대료 전반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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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발의…계약갱신청구권 2회·임대차 3년 연장
19일 업계에 따르면 임대차 수요를 보호하려는 법 개정이 오히려 전세시장 위축과 월세 부담 증가로 이어지며 세입자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달 초 전세 계약청구권을 최대 9년까지 늘리는 내용이 담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으며 공동발의에는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소속 의원 등 9명이 참여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횟수를 기존 1회에서 2회로 늘리고 갱신시 임대차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전세 계약기간이 기본 2년이고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 최대 4년까지 거주가 가능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세입자는 최장 9년까지 한 주택에서 거주가 가능해진다.
임대인 의무도 크게 강화된다. 국세·지방세 납세증명서뿐 아니라 건강보험료 납부내역까지 세입자에게 제공해야 하며 주택이 매매될 경우 새 소유자의 정보를 임차인에게 서면 통보해야 임대인 지위가 승계된다. 보증금·선순위 담보권·세금 체납액을 모두 합친 금액이 주택가의 70%를 넘지 않도록 보증금 상한을 규정했다.
전세 시장 불안이 이어지고 짧은 임대 기간으로 인한 이사비 부담과 주거 불안이 커지면서, 이번 개정안은 임차인의 거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로 추진됐다.
입법 취지는 임차인이 전월세 인상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이사를 반복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1989년 임대차 보장기간이 2년으로 확대되고, 2020년 계약갱신청구권이 도입됐지만 임차가구의 평균 거주기간은 큰 폭으로 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임차가구의 평균 거주기간은 2019년 3.2년, 2021년 3년, 2023년 3.4년에 그쳐 여전히 안정성이 낮은 수준이다.
◆ 전세시장 '불안' 재현 우려…집주인 매물 회수·월세 전환 가능성 ↑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 물량이 빠듯한 상황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집주인들이 전세 매물을 회수하거나 월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장기 계약을 염두에 두고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선제적으로 인상하는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 실제 과거 임대차3법 시행 직전에도 전셋값이 대폭 인상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이후 안 그래도 임대인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인데 계약기간이 더 늘어날 경우 아예 초기 전세금을 더 높여버릴 수 있다"면서 "매물을 거두거나 월세로 전환하는 등 전세 매물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기준 수도권 지역의 전세 매물은 4만9277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5% 감소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2만4418건으로 20.9%, 경기가 2만 918건으로 31.3%, 인천이 3941건으로 31.5% 줄었다. 지난달 전세수급지수도 152.9를 기록했다. 전세수급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높으면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 공급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전세 매물 감소와 월세 전환이 확대되면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이 한층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전세의 월세화가 진행되면서 월세 가격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KB부동산 월간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9월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는 129.7을 기록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5년 12월 이후 최고치다.
상황이 이렇자 일각에서는 전세제도의 존속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세제도의 경우 오랜 기간 한국 주거문화의 중심축으로 작용해왔지만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정책 취지와 달리 전세 제도 자체가 설 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세입자 보호와 시장 자율성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min7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