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을 공정하게 대하던 은사님처럼, 교육자 마음으로 정치할 것"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학생들을 정말 공정하게 대하신 선생님을 존경했습니다. 그 분 덕분에 제 인생이 바뀌었죠."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은 16일 유튜브 채널 뉴스핌TV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시절부터 교육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공개했다. 해당 방송은 지난달 25일에 촬영됐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정 의원은 25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상식과 정의'에 대해 강조해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으로 지낼 당시에는 교권 회복에 앞장섰고,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문제 해결에 나섰다.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정 의원은 "교권 회복에 대한 대책이 좀 더 실효성 있게 되도록 꼼꼼히 챙기겠다"며 "유보통합 문제나 고교학점제 등 교육 현장에 혼란을 주는 부분들도 교육부와 함께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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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국민의힘 의원. [사진=뉴스핌TV] |
1971년생인 정성국 의원은 부산중앙고와 부산교대, 부산교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부산 토현초·성북초·동원초·남천초·교리초·해강초 등에서 근무했으며,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연구이사와 부산초등영어교육연구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정 의원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75년 역사상 두 번째 평교사 출신이자 최초의 초등교사 출신 회장으로 선출됐고, 제22대 총선에서 부산진구갑 지역구 국민의힘 소속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이며 당 내에선 조직부총장을 역임했다.
다음은 정 의원과의 폴리티션스토리 인터뷰 내용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뉴스핌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스토리 시작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뉴스핌 신정인 기자입니다. 오늘은 부산 진구갑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정성국 의원, 이하 정 의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신 기자)
부산 영도구에서 태어나셔서 부산교대에서 영어 교육학 학석사 전공하셨습니다. 의원님 지역구이자 고향인 부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실 것 같은데 부산은 의원님께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정 의원)
태어난 곳이라는 것은 의미가 크잖아요. 제가 부산 이제 지금 영도구 영도에서 태어났는데 이제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어요. 그리고 이제 한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제 우리가 지금 말하는 이제 수영구라고 하는 그쪽으로 이제 이사를 가게 된 거거든요. 그래서 그 이후로부터는 이제 수영구나 이제 해운대구 이렇게 남구 쪽으로 해서 이렇게 쭉 제가 이제 살았지만 저의 어릴 적의 추억은 사실 영도구 쪽에 있는 그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죠. 지금 저희 외삼촌이나 이모도 사실 지금 영도에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기억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어릴 적에 그 기억들이 곳곳에 남아 있죠. 한 번 이런 적은 있었어요. 저희가 이제 이사를 가고 나서 제가 대학생이 됐을 때 친형하고 저하고 우리 옛날 집이 옛날에 어릴 적에 살았던 집이 궁금해서 온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시점에 그게 없어져 버렸어요. 없어져 버린 걸 알면서도 다시 가본 적이 있어요. 그때 이 골목까지 있었고 이게 이제 없어졌구나 왜 지금 거기 아직까지 우리 외삼촌이 살고 계시니까. 사람이 역시 어릴 적 기억은 참 소중하죠.
우스갯소리로 제가 이번에 영입 인재로 국민의힘 들어왔을 때 어떻게 보면 그 지역에 선거를 준비하던 분들이 봤을 때는 국민의힘에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1호 영입 인재라고 제가 들어오니까 부산에 반드시 이 지역구로 오는데 어디로 가느냐에 대한 이야기들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뭐 제가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영도구를 넣는 기자들이 있더라고요.
그 이유는 아무래도 제가 그곳에서 태어난 곳이고 이러니까 영도구 쪽으로 또 갈 수 있지 않느냐 이런 기사도 나온 적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에게는 참 지금도 한 번씩 가는 일이 생기는데 옛날 추억들이 좀 많이 올라옵니다.
-(신 기자)
의원이 되시기 전에 부산에서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셨잖아요.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꿈이 초등학교 교사셨는지
▲(정 의원)
사실 제가 어릴 적부터 선생님의 꿈을 가진 건 아니었어요. 제가 나중에 무엇이 되어야 되겠다고 확실한 마음을 가졌던 건 고등학교 때였거든요.
우리가 뭐 초등학교 때는 대통령 된다 했다가 뭐 국회의원 된댔다가 의사가 됐다가 자꾸 바뀌잖아요. 그래도 제가 고등학교에 갔을 때는 이제 마음이 올라오는 부분에서 장군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80년대 후반 90년대 될 때 80년대 서울 올림픽 하고 할 때 있지 않습니까? 1988년 서울올림픽 하고 할 때 제가 고등학교 시절이었거든요. 그때만 하더라도 이제 노태우 정부가 이제 시작되는 그 시절이었어요.
그 시절을 제가 고등학교 때 겪어서 정치적인 경향을 많이 지켜봤는데 그때 제가 봤을 때 그때 제 꿈이 이제 군인이 장군이 되고 싶다 목표가 이제 어린 마음에 별 4개를 달고 있는 4성장군이 너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때만 하더라도 육군 사관학교나 이런 데는 굉장히 또 인기도 있었고 우리나라의 현실이 북한과의 관계나 이런 걸 봤을 때 우리 군의 중요성이 굉장히 많이 강조되던 때 아니었습니까?
내가 대한민국의 장군으로서 이 나라를 지키고 하는 그런 어떤 그런 마음이 고등학교 때 올라오더라고요.
제가 이제 87년에 6·10 항쟁 때 제가 고등학생이었는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이 군정이라 해가지고 좀 비판이 많았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에서 우리 군이 바르게 가는 군, 국민에게 신뢰받는 군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어릴 적부터 좀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그 당시 때 제 공부 실력이 뭐 그렇게 대단히 뛰어난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역사를 한번 실패하고 역사를 실패하고 좀 좌절하고 있을 때 사촌 누나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근데 제가 좀 너무 크게 좀 꿈을 꾸고 이러다 보니까 사촌 누나가 이제 그때 한번 위로를 하시면서 군인도 좋은데 나는 우리 성국이가 선생님이 교육자가 되는 게 참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어요. 저희 형제들도 스타일이나 이런 모습이 선생님보다는 뭔가 좀 이런 군인 이런 게 맞는 것 같은데 왜 누나가 그런 말을 할까 이랬는데 모르겠어요. 어떤 모습을 보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 형제들도 그때 제가 이제 교대를 가게 되니까 결국 교대를 갔잖아요.
가게 되니까 그때부터 무슨 말이 나오냐면 잘 갔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왜 일단 제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고등학교 때도 보면은 그 친구들 그때는 이제 학원이 없었거든요.
우리 학원을 갈 수 없는 시절이었어요. 그러면 친구들이 이제 공부할 때 잘 모르고 이런 거 있으면 서로 물어보잖아요.
네 근데 제 친구들이 어떤 말이 좀 있었냐 하면 제가 설명을 잘한대요. 저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설명을 잘한다는데 친구들이 좀 오더라고요.
또 아이들을 좋아해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너무 보람 있는 일이겠다 생각했습니다.
또 제가 초등학교 때 존경하는 은사님이 계셨거든요. 이홍렬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지금은 퇴임을 하셨는데 제가 평생을 존경하는 은사님이십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사실 한 반에 605명씩 되고 이러기 때문에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신경 쓸 수 있는 교육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또 선생님들도 월급도 작았지 또 이런 처우도가 약하고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처우가 좋지 않은 그런 상태고 하지만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났던 이홍렬 선생님은 제 인생을 바꾸신 분이었어요. 정성국이라는 사람의 어떤 자존감을 세워주신 분이거든요. 공정한 선생님이셨어요.
그전에는 이렇게 어린 마음에도 보더라도 좀 차별이 보이는 일들이 많았거든요. 아마 지금 제 나이에 되는 분들 다 이해하실 것 같아요.
좀 선생님이 잘 봐주는 학생이 있는 것 같고, 왜 저 반장은 야단을 안 치지 뭐 이런 것도 있는 것 같고. 엄마가 자주 찾아오는 학생은 더 눈여겨보게 되고. 그런데도 우리 이홍렬 은사님께서는 학생들을 정말 공정하게 대하시고 너무나 이렇게 학생을 아끼시는, 때로는 엄격하셨고 저도 그때 막 손바닥 맞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 손바닥 맞을 때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요.
이홍렬 선생님이 손바닥을 때리기 때문에 내가 잘못했구나를 생각한 거거든요.
그런 은사님이 제가 또 교대에 갔다는 말씀 들었을 때 가장 기뻐하셨고 그 당시 때의 이홍렬 선생님은 장학사가 되시고 이러셨거든요.
그러니까 나도 우리 이홍렬 선생님처럼 교육자의 길을 걸으면서 나중에 또 어찌 보면 교육계에서 또 더 큰일도 할 수 있는 것이구나 이렇게 하면서 그런 이유들이 다 이제 합쳐지면서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교대도 가게 되었고 교대를 이제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면서 한 25년 정도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신 기자)
의원님께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면서 가장 뿌듯했거나 보람 있던 적이 있으실 것 같아요.
▲(정 의원)
6학년을 5번을 했는데 학부모님들이 졸업할 때 다 오잖아요. 여러 번 눈물을 흘렸어요. 그때 이제 우리 학부모님들이 선생님 운다면서 막 그러는데, 학생들을 떠나보낼 때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면서 학부모님들께서는 선생님이 아이들과 참 잘 지냈고 아이들을 참 사랑했구나 이런 걸 좀 느끼실 수도 있지 않았겠나. 그게 억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학년이 바뀌면 학생을 보내잖아요. 한 번은 제가 교리 초등학교에 있을 때 5학년을 했는데 마지막 날 이제 끝나고 이제 학생들을 이제 종업식이라 하죠.
보내고 이제 혼자서 굉장히 아쉽고 슬픈 마음이 있는데 옆 반 학생이 쫓아와가지고 올라와가지고 선생님 지금 빨리 1층으로 내려가라더라고요.
"왜?" 그러니까 선생님 반 학생들이 안 가고 계속 울고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내려갔더니만 우리 학생들 열몇 명이 거기서 막 서서 안 가고 막 울고 있는 거예요.
1년마다 헤어짐이 참 그랬던 것 같은데 그 우리 제자들이 지금도 다 커서 이제 이 사회 곳곳에서 또 자기의 삶을 살고 있지 않겠습니까?
기억들이 참 생생하고 또 마지막 하나는 제가 이제 제가 역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역사 이야기를 사회 교과서가 역사가 들어 있거든요.
그 시간에 제가 역사적인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동영상도 보여주고 너무나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수업하다가 이렇게 사회 다른 거 공부하면 좀 딱딱한 내용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학생이 이렇게 딱 해요. 팻말에다가 '역사 특강' 딱 적어가지고 이렇게 들더라고요. 선생님 지금 수업이 따분하고 좀 내용이 어렵고 한데 선생님 역사 특강 해 주세요. 이순신 이야기해 주세요 막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그래 그럼 이 수업 잘 마치고 나서 선생님이 또 한번 해줄게 이래가지고 학생들하고 옛날에 우리 역사적 사실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을 우리가 이야기하면서 또 우리 예전에 보면 참 예전에는 역사 드라마가 참 많았잖아요. 그런 장면들이 참 좋은 게 많거든요. 그 불멸의 이순신 같은 참 떠오를 수 있는 게 많습니다. 그런 장면을 학생에게 직접 보여주면서 우리 그때로 한번 돌아가 보자. 타임머신 타고 우리가 지금 저기 한산도 대첩을 우리 산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저기 우리 아빠가 있다고 한번 생각해 보자. 이러면 아이들이 완전히 그게 심취를 해버리거든.
-(신 기자)
그렇죠. 몰입도가 높아질 것 같아요.
▲(정 의원)
그런 상황에서 왜 장군이 저런 판단을 하셨을까 왜 리더의 역할이 저렇게 중요할까 왜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을 했을까 뭐 이런 이야기 왜 사육신이 어린 12살의 단종을 지키기 위해서 저렇게 목숨을 바쳤을까 선생님도 저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다.
근데 우리가 저 정신만큼은 배워야 되지 않겠나 상식과 정의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교육의 힘이 크다고 생각해요. 수업을 받고 있던 학생들이 편지를 써서 보낼 때 항상 역사에서 저한테 감동받았던 부분들을 편지로 쓰더라고요. 저는 그게 굉장히 학생들의 내면에 인성 교육이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인성 교육이 도덕책 가지고 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생각해요.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수업이 될 수 있다면 저도 더 노력을 했어야 되지만 그런 부분에서 제가 아이들과 좀 많이 공감이 되지 않겠나 그런 게 기억이 좀 많이 남아요.
-(신 기자)
38대 한국교총 회장으로 당선 되셨을 때 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는 최초 당선이었습니다.
▲(정 의원)
75년 만에
-(신 기자)
아이들에서 교육 현장의 영향력을 더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회장으로 지내시면서 가장 크게 바꾸고 싶었던 교육 현장이나 문제점이 있으셨다면
▲(정 의원)
현장에 있으니까 좀 아쉽고 개선해야 될 일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선생님은 수업에 집중하고 싶은데 수업보다 행정 업무가 더 강조되는 그런 모습이라든지 그다음에 선생님들이 좀 소신 있게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기 시작하고 뭐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알면서도 그거를 해결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교장 선생님이 되더라도 그 학교 안에서는 좀 변화를 줄 수 있겠죠.
근데 전국에 있는 만 2000개 학교 중에 1개 학교의 역할일 수밖에 없잖아요.
과연 내가 어떤 역할을 했을 때 이 현장에 있는 교육 현장의 문제들 또 어려움들을 해결하는 데 좀 스스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이제 제가 한 40대가 되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제 진로가 걸리니까. 진로라는 의미는 내가 과연 교장 교감 이렇게 승진을 하는 길로 가는 게 맞느냐 어떤 분들은 승진 준비하면서 교총 회장 하면 안 되나 (했는데) 이 말은 사실 안 맞는다고 생각한 게 그 교총의 구조가 대학 교수가 대학 총장이 회장을 거의 다 했죠. 이 구조를 깨는 게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웠다고 봤거든요.
저희 교원들이 석사 박사를 하면서 교장이라 하더라도 석사 박사를 하면서 교수에게 수업을 받는 학생이 돼 버리잖아요. 교수는 좀 어찌 보면 스승의 개념이 돼버리는 그런 게 있다 보니까 대학 교수 정도, 대학 총장 정도 돼야 교총장 하는 게 아니냐 이런 인식들을 갖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저는 그런 걸 보면서 그래서 이런 부분에 문제점을 좀 많이 가지고 우리 사원들 초중등 교육에 있는 교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결국 교총회장이 된다든지 또는 교육감이 된다든지 이런 방법밖에 없잖아요.
교육감을 하는 부분도 어찌 보면 시도의 차원의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대한민국 교육을 좀 나름 좀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지금 교원 단체의 장이 되는 것이다. 이거는 한 번 스스로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을 갖기 시작한 거죠.
평교사로서 도전하는 것이 어찌 보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겠구나 하는 확고한 판단을 한 것입니다. 교사가 80%를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러면 이 교사들이 밀어준다면 내가 충분히 대학 교수와 경쟁할 수 있겠다 생각을 한 거죠.
결국은 그때 교총회장이 됐을 때 꿈은 교권 회복이었죠. 다른 거 다 떠나서 교권 회복이 1위였고 그다음에 행정 업무 경감이라든지, 교원들의 처우 개선 이런 쪽으로 실질적으로 해야 되겠다 생각했는데 회장 되고 나서 1년 후에 서이초 사건이 터지더라고요.
서이초 사건이 터지기 전에 이미 저는 많은 자리에서 무분별한 아동 학대 신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가 안 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서이초 사건이 딱 터지고 나서 많이 바뀌었잖아요. 우리 국민들도 선생님들을 응원해 줬잖아요. 이거는 아니다. 학생이 모기에 물렸다고 민원 넣는 이런 세상은 있을 수가 없다. 본인이 자식을 키우면서 아이 아기가 2명밖에 없어도 아기가 모기에 물리잖아요.
근데 20명 넘는 학생을 가르치는 그런 정도로 극단적인 이 교실이 돼 버렸거든요.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만 듣고 선생님을 신고해 버리고 그러다 보니까 그때 서이초에 비극이 생겼는데 그래도 우리 교총이 나름 좀 주도적인 역할을 많이 해서, 교권 5법을 통과시켜서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때에 비해서는 좀 선생님들에게 어떤 무분별한 민원이나 아동학대 신고 여부로부터 조금 어느 정도는 방어를 가질 수 있는 좀 상황을 만들었거든요.
그리고 행정 업무도 지금 많이 경감을 시키는 쪽으로도 많이 좀 발전이 됐습니다. 교원의 처우 개선들도 지금 담임 수당, 부장 수당도 좀 오르면서 개선이 되고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성과를 이루었다고 봐요.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국민의힘에 영입이 되는 또 이유 중에 하나였거든요.
-(신 기자)
지금 교육위에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가장 크게 좀 중요하게 보시는 부분은 어떤건지
▲(정 의원)
첫째는 이제 교권 회복에 대한 부분. 대책이 좀 더 실효성 있게 될 수 있도록 좀 더 현장에 와닿을 수 있도록 더 꼼꼼히 챙겨야 되는 상황이고요.
지금 현재로서 좀 중요한 거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통합 이 부분도 앞으로 좀 갈 길이 있습니다. 더 준비가 잘 돼야 되고요.
요즘 또 문제가 되는 게 고교 학점제입니다. 듣기는 좋죠. 고교 학점제 이러니까 대학교처럼 고등학교도 학점이 있으면 학생이 과목을 선택하고 자기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는 이런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굉장히 현장에 지금 많은 혼란을 주고 있고 어려움을 주고 있어요.
선생님들이 고교 학점제 과목이 많아지니까 본인이 가르치는 과목 말고 다른 과목을 가르쳐야 되는 일인데 이게 전공을 했다기보다는 좀 부전공이라든지 또는 학교 선생님이 되고 나서는 좀 이 과목만 가르치면 되니까 안 가르쳤던 과목들을 갑자기 가르쳐야 되는데 선생님 한 분이 두세 과목을 가르치는 일이 이제 일상화돼 버린 거예요.
그런데 그게 상당히 어려운 게 가르치는 것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면 수행평가도 해야 되고 지필평가도 해야 되고 관리도 해야 되는데 얼마나 많은 일이 생기겠습니까? 상담도 또 얼마나 많아지겠습니까? 이런 문제부터 시작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또 학생이 최소 성취 기준을 이렇게 도달하지 못하면 유급 제도가 있어가지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을 유급한다는 게 이게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게 과연 진로와 적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취지하고 좀 다르죠.
그래서 성취 기준을 도달을 못하는 학생을 보충 지도를 해야 되는 이 부담까지 선생님들이 있는 거예요. 이런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어서 지금 우리 국회 교육위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해결을 이제 해야 되는 교육부와 함께 개선하고 획기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되는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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