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퇴임을 앞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9월 30일 부산을 방문해 이재명 대통령과 마지막 정상회담을 가졌다.
일본 총리가 양자 외교 목적으로 서울이 아닌 지역을 찾은 것은 21년 만이라는 점에서 더욱 상징성이 컸다. 일본 내 일각에서는 퇴임 직전 방문을 두고 '졸업 여행'이라는 냉소적 반응도 나왔지만, 한국에서는 국빈급 환대가 이뤄지며 대비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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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부산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이재명 대통령 페이스북] |
◆ 역대 일본 총리 중 가장 높은 호감도
이시바 총리는 역대 일본 총리들 중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호감도가 높았다.
한국갤럽이 지난 8월 실시한 조사에서 이시바 총리에 "호감을 갖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7%로, 2013년 조사 시작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응답은 51%로, 역시 2013년 이후 가장 낮았다.
이 같은 호감의 배경에는 이시바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고, 일본의 전쟁 책임을 언급하며 역사 문제에 있어 '온건파'로 평가받은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자민당 내에서 보기 드물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부정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의원 시절부터 "일본 정치 지도자의 야스쿠니 참배는 국제 사회의 신뢰를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또한 개인 블로그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일본은 전쟁 책임을 직시해야만 아시아 이웃과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고 언급해,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일본 언론들 역시 "아베 신조 전 총리나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에 대한 한국 내 호감도가 5% 안팎에 불과했던 데 비해, 이시바 총리는 역사 문제에 있어 합리적이고 온건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상대적으로 긍정적 이미지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한국 사회의 일본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도 이시바 재임기에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일본에 호감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38%로, 1989년 조사 시작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가장 높았던 수치는 동일본 대지진 직후인 2011년 41%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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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차기 총리 후보, 보수 색채 강화 전망
이시바 총리의 퇴진은 한일 관계에서 한 시대의 마무리를 의미한다. 그는 역사 직시를 강조하며 관계 개선의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이시바 총리의 퇴진 후에도 한일 관계가 개선 흐름을 이어갈지는 불투명하다.
차기 총리 유력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은 역사 문제와 안보 정책에서 강경한 보수 노선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또 다른 유력 후보인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역시 젊은 정치인으로 개혁 이미지를 갖고 있으나, 한일 역사 문제에서는 보수적 입장을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내에서는 이들이 집권할 경우, 이시바 시절의 '온건 기조'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다만 일본 내에서는 지나친 비관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양국 국민이 관계 개선을 원하는 기류가 이미 형성돼 있다"면서 "차기 총리가 보수 성향을 강화하더라도 안정적인 협력 관계는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는 한일 양국이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미국과의 동맹이라는 공통 기반 위에 서 있으며, 상호 전략적 필요가 분명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다가오는 일본 총리 교체는 한일 관계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한일 양국이 이시바 총리 시절의 개선 무드를 일시적 흐름으로 끝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국면으로 확장해 나갈 것인지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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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부산에서 만나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이재명 대통령 페이스북] |
goldendo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