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전 이미 고어라운드…조종사는 먼저 움직였다
랜딩기어, 의도적으로 내리지 않았을 가능성 있어
조류 관리 책임 공항에…콘크리트 구조물 피해 키워
[서울=뉴스핌] 김아영 기자 =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와 관련해 일각에서 제기된 '조종사 역량 부족' 지적에 대해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현장 영상 분석과 전문가 진단을 종합하면, 사고 당시 조종사는 최선을 다해 비상 상황에 대응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조류 충돌과 관련해선, 공항 측의 관리 책임이 강조되고 잇다.
◆급박한 순간 판단…"조종사 최선 다해"
23일 KBS 시사기획창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2216편 사고 당시 조종사는 조류 충돌 전 이미 복행(고어라운드)을 결심하고 엔진 출력을 높인 정황이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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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항공기. [사진=제주항공] |
영상 분석 결과 기존에 알려졌던 것과 달리 여객기는 충돌 직전 급상승을 시작했으며 이후 하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조종사가 대규모 조류를 회피하려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충돌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조종사의 복행 시도 판단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선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전승준 청주대 항공운항과 교수는 "보잉 매뉴얼에도 조류 충돌 즉시 착륙하라는 의무 조항은 없다"며 "상황에 따라 권고되는 절차일 뿐 고정된 규범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당시 제주항공 조종사가 조류와 충돌 직전부터 이미 '풀 파워'를 넣어 고어라운드 절차를 밟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고어라운드 결정은 충돌 이후가 아니라 이전에 이미 내려진 상태였다"며 "엔진 출력이 들어간 상태에서는 비행기의 관성 때문에 바로 상승하지 않고 일정 궤적을 그리며 올라가게 되므로 다시 급강하해 착륙하는 건 오히려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착륙 당시 랜딩기어를 내리지 않은 점도 논란이 있지만, 전 교수는 조종사가 추락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잔여 추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플랩과 랜딩기어를 내리면 항력이 급격히 늘어 속도가 떨어진다"며 "조종사는 '이 상태로 활주로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어 "조종사는 처음 활주로 접근 시도 때는 랜딩기어를 내렸지만, 복행하면서 이를 다시 올렸고 이후 동체 착륙을 감수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급박한 당시 상황에서 조종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조류 관리, 공항 역할…시스템 개편돼야
이번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조류 충돌과 관련해선 공항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항공기 착륙 경로는 사전에 지정돼 있어 조종사가 임의로 회피 기동을 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조류 감지와 제거는 공항의 몫이라는 지적이다.
보잉은 항공기 운항 매뉴얼에 공항 인근 조류 관리의 일차적 책임이 공항에 있다고 명시했다.
전 교수는 "보잉 매뉴얼에는 새 떼와 관련된 모든 책임이 공항에 있다고 명시돼 있다"며 "항공기가 항로를 임의로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조류 감시와 관리 책임은 전적으로 공항에 있다"고 강조했다.
사고 당시 충돌한 새는 겨울 철새인 가창오리로 밝혀졌다. 이 야행성 조류는 밤에 먹이를 찾아 이동하고, 아침엔 해변 근처에서 쉬는 습성이 있다. 항공업계는 이처럼 대규모 새 떼는 수일 전부터 공항 주변을 반복해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국내 항공사 한 관계자는 "그 정도 규모의 새 떼가 주변을 비행했는데 몰랐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결국 조류 탐지와 퇴치 활동이 미흡했다는 근거"라고 비판했다.
사고 피해를 키운 또 다른 요인으로는 활주로 끝단에 매설된 콘크리트 구조물이 지목된다.
국내 항공사 소속 기장 A씨는 "그 구조물의 존재를 알고 있는 조종사는 아무도 없었다"며 "충돌할 때 충격이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항공업계에서는 공항 주변 조류 감지·제거 시스템을 전면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히 눈에 띄는 새를 쫓는 수준을 넘어 계절별 이동 경로 분석과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드론이나 레이더 기반의 조류 탐지 기술을 공항 반경 내에 도입해 사전에 새 떼 접근을 차단하자는 구체적인 제안까지 나오고 있다.
항공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공항 운영 주체가 '기준엔 문제가 없었다'는 식의 태도를 고수한다면 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될 것"이라며 "조류 감지 체계, 활주로 안전 설비, 비상 대응 매뉴얼 등 전반에 걸쳐 실효성을 기준으로 철저한 점검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y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