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현민 기자 = "서울에 집을 사둬야 오르죠. KTX 타면 부산까지 3시간도 안 걸리는데, 굳이 지방에서 집 살 이유가 없어요."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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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개통 21주년. 하루 평균 23만명이 이용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속 교통수단이다. 천안, 대전, 포항은 물론 부산까지도 3시간 이내로 연결한다. 시간의 장벽을 허문 교통혁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교통혁명이 수도권 집중을 더욱 가속화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지방에 머무를 이유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출퇴근이 가능해졌으니 집은 서울에, 일터는 지방에 두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KTX 요금이 부담되더라도 서울 집값 상승분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 세종 등 지방에 근무지를 둔 공무원 상당수가 서울이나 수도권에 아파트를 매수해 놓고 고속열차로 출퇴근하고 있다. 여의치 않을 경우엔 직장 인근 원룸에서 평일을 보내고, 주말에 서울로 올라가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도시 간 '기러기 가족'처럼 말이다.
교통망이 좋아졌지만 오히려 사람과 자본은 수도권으로만 몰리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전국을 빠르게 잇는 인프라가 지방 소멸을 앞당기고 있는 셈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기업 유치, 관광 개발, 청년 인구 유입 등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정부도 초광역권 조성, 공공기관 이전 같은 균형발전 정책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인구절벽과 고령화라는 근본 문제는 여전히 벽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다.
이 와중에 '하이퍼튜브' 같은 차세대 교통수단 개발도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를 'K-하이퍼튜브'의 원년으로 삼고, 자기부상과 추진 기술 등 핵심 연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시속 1000km에 달하는 이 열차가 상용화된다면 국토는 더 작아지고 삶의 반경은 더욱 넓어진다.
문제는 좁아진 국토가 수도권 중심으로만 수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지방 곳곳은 미분양의 늪에 빠져 있다. 고속 교통망만 확충된다면 국토 균형 발전이 아니라,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서울과 지방의 거리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의 격차를 줄이는 일은 더 절실하다. 교통망 확충이 균형발전의 열쇠가 되려면 서울과 지방 간 집값과 일자리의 불균형 해소가 선행돼야 한다.
min7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