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 이어
제도를 세우는 말, 무너뜨리는 말
그러나 정치는 본디 말로 문제를 푸는 예술이다. 영국 웨스트민스터의 전통은 그 어떤 순간에도 토론과 설득의 형식을 유지한다. 격렬한 야유 속에서도 의장은 "Order"를 외치고, 의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문다. 의원들은 상대를 향한 인신공격 대신 논리와 유머로 승부한다. '내각을 저격할 수는 있어도 예절을 저버려선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오랜 금언이다.
영국 하원, 웨스트민스터의 회의장에서는 말이 곧 정치이며, 말의 절제가 곧 권위다. 전통적으로 상대 의원을 가리켜 이름을 부르지 않고 "존경하는 ○○ 지역 의원(the honourable member for ○○)"이라 호명한다. 이는 인신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자, 품격 있는 토론 문화의 기반이다.
예를 들어,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야당의 반대와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나는 반대의원들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그 걱정을 잘못된 해법으로 풀고 있을 뿐이다"라며 날카로운 비판을 품격 있게 포장했다. 이는 상대의 진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정책적 입장을 분명히 하는 모범적 태도였다.
또한, 2019년 브렉시트 토론 중 노동당의 힐러리 벤 의원은 정부안을 비판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의 제안은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그 질문에 우리는 정직하고 차분하게 답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쟁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문제입니다."
이와 같은 어조는 비판을 넘어서 설득을 시도하는 '책임 있는 말의 사용'의 한 전형이다.
웨스트민스터에서는 감정이 격해질 때일수록, 말은 더 명료해지고 어법은 더 정제된다. '내각을 무너뜨릴 수는 있어도 예절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격언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정치를 정치답게 만드는 핵심 원리다.
독일 연방하원에서는 장관 한 명이 하루 종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질문이 쏟아지고, 스웨덴 리크스다겐에서는 질문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흐르면 의장이 나서 토론의 수위를 조정한다. 미국 의회에서는 수백 페이지의 법안을 놓고 밤새 '필리버스터'가 이어지지만, 그 속에서도 정책의 정합성과 헌법 정신이 중심축으로 작동한다.
이들 정치 무대는 뜨거운 논쟁이 있는 곳이지, 말의 전쟁터는 아니다. 그곳의 말은 제도를 세우는 도구이며, 시민의 신뢰를 쌓는 벽돌이다. 반면, 한국의 국회는 '정쟁형 극장'에 가깝다. 고성은 웨스트민스터의 야유보다 거칠고, 손가락질은 독일 하원의 질문보다 더 직접적이며, 자료 대신 막말이 오가고, 숫자보다 낙인이 앞선다. 웨스트민스터에서는 언어로 품격을 다지고, 우리는 언어로 체면을 깬다. 스웨덴에서는 '정중한 긴장'이 흐르고, 한국에서는 '무례한 긴박감'이 휩쓴다.
정권 탈환의 언어, 전투가 된 정치
정치는 설득의 예술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인의 말은 설득이 아니라 소란이고, 설명이 아니라 선전이며, 연대가 아니라 증오의 호출이다. 오로지 정권 탈환이라는 전쟁의 언어가 정치인의 말을 지배하고, 모든 발언은 협치의 제안이 아니라 전투의 선언으로 기능한다. 상대를 동료가 아닌 적국의 장수로 간주하는 태도 속에서, 말은 논리보다 적개심으로, 합의보다 격돌로 흐른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에서처럼 말은 잘 사용하면 제도와 법을 튼튼히 하는 토대가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말은 곧 헌법을 망가뜨리고 국헌질서를 파괴하는 도구가 된다. 말이 세우는 나라는 민주주의이고, 말이 무너뜨리는 나라는 무정부다. 우리는 이제 말의 품격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질문해야 한다. 우리의 말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치의 말은 국민을 향한 것인가, 정적을 겨눈 것인가. 설득이 사라진 정치는 공포를 부르고, 혐오가 채운 언어는 민주주의를 좀먹는다.
다시, 말로 시작해야 한다
정치는 말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숨기지 않는 말, 진솔한 말, 거짓 없는 말, 상대를 인정하는 말, 때로는 스스로의 과오를 고백하는 말이어야 한다. 후려치고 끌어내리는 말이 아니라, 손을 내밀고 함께 걷는 말이어야 한다. 말은 흩어지는 바람이 아니라 머무는 숨이어야 한다. 말이 살면, 정치는 살고, 정치는 살아야 국민의 삶도 숨을 쉴 수 있다.
말로 설득하는 정치, 선택의 품격
대통령 선거는 국민 앞에 선택을 강요하는 절차가 아니다. 선택을 위한 정책과 비전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선택은 단지 목소리가 큰 이들을 따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책임을 함께 나누고, 어떤 말로 미래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물어야 한다. 국민은 격을 되찾은 정치를 애타게 원한다.
대통령 선거는 단지 한 사람을 선택하는 절차가 아니라,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대한 선택이다. 그것은 오늘의 만족이 아니라 내일의 비전을 향한 응답이며, 현재의 지지를 넘어 미래 세대—우리 자녀들의 삶을 위한 책임 있는 고백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무엇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더욱 합당한 것인지 깊이 듣고, 세계를 보고, 역사를 기억하며, 스스로 묻고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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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