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보호자의 폭행·협박 시 진료 거부
응급의료자원 부족해도 수용 거부 가능
의료계 "오히려 진료 거부 못 하게 돼"
진료 거부 수준과 주체 없다는 우려도
[세종=뉴스핌] 신도경 기자 = 정부가 응급실에서 환자·폭행 또는 의사 인력이 부족할 경우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했지만 의료계는 구체적인 기준과 주체가 없어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1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응급의료종사자가 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담은 '응급의료법상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을 의료기관에 배포했다.
응급의료법 제6조는 응급의료기관 등에서 근무하는 응급의료종사자가 업무 중에 응급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의료를 실시하는 내용을 담는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면 안 된다는 내용도 적혀있다.
복지부는 응급의료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응급의료법 제6조에 근거한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를 구체화했다. 먼저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행위를 방해할 경우 응급의료종사자는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 폭행, 협박, 위계, 위력 그 밖의 방법으로 구조·이송·응급처치·진료를 방해한 경우가 해당한다.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기관 등의 응급의료를 위한 의료용 시설·기재·의약품 또는 그 밖의 기물을 파괴·손상하거나 점거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의료인에 대해 모욕죄, 명예훼손죄, 폭행죄, 업무방해죄에 해당될 수 있는 상황을 형성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의료인의 치료방침에 따를 수 없음을 밝힌 경우도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 특정 치료의 수행이 불가하거나 의료인으로서 양심과 전문지식에 반하는 치료방법을 의료인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해당된다.
불가피하게 적절한 응급의료를 행할 수 없는 경우도 정당한 진료 거부 사유로 인정된다. 통신·전력 마비, 화재·붕괴 등 재난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경우다.
응급의료자원이 부족한 경우도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 시설, 장비뿐 아니라 인력이 부족해 환자에게 적절한 응급의료를 할 수 없는 경우다.
[서울=뉴스핌] 이호형 기자 = 지난 13일 정부가 추석 연휴 기간 전국 409개 응급실 중 407개 응급실이 매일 24시간 운영된다고 비상진료 대응을 밝힌 가운데 17일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 응급실 센터 입구에 엠블런스가 대기하고 있다. 2024.09.17 leemario@newspim.com |
의료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한 의료진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응급의료법상 같은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적용된다.
정통령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폭행과 부적절한 진료 요구로부터 의료진을 보호하기위해 만들었다"며 "필요한 진료를 즉시 받을 수 있게 해 응급환자도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선 복지부의 지침이 오히려 현장에 있는 응급의료종사자의 환자 진료 거부에 대한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응급의료 자원에 대한 사유의 경우 정도와 판단 주체가 빠져 구체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수용 거부 사유를 법에 명시할 경우 그 경우를 제외하고 다 받아야 한다"며 "의료현장은 정부의 지침이 뜬금없다는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환자가 폭력 행사를 예고하고 오는 것은 아니다"라며 "폭력 상황이 생긴 이후 진료 거부가 크게 의미 있지 않다"고 했다. 이어 그는 "시설이 얼마나 부족한지, 인력이 얼마나 부족하면 거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도 없다"며 "누가 판단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쓰여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어떤 식으로 합의하더라도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정당한 사유가 아니면 거절하지 못한다는 응급의료법 제6조가 필요한 법은 아니다"라고 전망했다.
sdk199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