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문제로 인한 '화' 참지 못해
청년·중장년층·노인 등 사회적 고립 매우 심각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최근 서울 곳곳에서 흉기 살인 사건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신림동의 한 건물에서 지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30대 여성이 구속됐다. 해당 여성은 피해자와 만난 뒤 지갑이 없어진 것과 관련해 다툼을 벌이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일에는 서울 숭례문 인근 지하보도에서 노숙을 하던 70대 남성이 환경미화원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해당 남성은 피해자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배정원 사회부 기자 |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신림동·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흉기 범죄가 계속되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경찰이 범죄예방대응 부서를 신설하고, 기동순찰대와 형사기동대를 출범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법부의 일벌백계(一罰百戒)도 경각심을 높이지 못했다.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피고인 조선과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피고인 최원종 모두 1·2심에서 무기징역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모방범죄는 줄어들지 않았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허황된 범행 동기를 갖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이들에게는 '사회적 고립'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조선은 코로나19로 구직활동이 어려워지자 주거지에서 종일 게임과 유튜브 시청만 하며 은둔 생활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최원종도 비정기적으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외에 특별한 직업은 없었으며 주변 사람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는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구속된 피의자들의 경우, 지인을 살해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소한 문제로 인한 화를 참지 못해 극단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을 갖는다.
전문가들은 최근 늘어나고 있는 흉기 범죄에 대해 사회적 고립의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및 현실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사람들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어려워진 탓이라고 진단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회에 따르면 국내 청년의 약 5%인 54만명이 주거지에만 머물며 가족 외 사람들과 전혀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는 고립·은둔 청년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도 없이 홀로 사는 노인과 중장년층의 사회적 고립 역시 매우 심각하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만큼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정부는 하루 빨리 소외된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jeongwon10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