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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청송 60대 배추농꾼, 애써 가꾼 '1등배추' 모두 뽑아버린 까닭은

기사입력 : 2024년05월17일 16:40

최종수정 : 2024년05월17일 16:40

'9000평 봄배추 수확 포기' 박씨 "내라도 폐기해야 농민들이 좀 나아지지 않겠니껴"
"정부 비축량 방출 확대·할당관세 수입에 억장 무너져"
"비룟값·인건비 치솟는데 농민엔 들어오는 돈 없어...유통구조 등 농정정책 개선돼야"

[청송=뉴스핌] 남효선 기자 = "비료값, 인건비 오른 건 생각안하고 농민들 죽어라 지은 배추값 1000원 오른다고 정부가 하루에 배추 1000톤씩 방출한다는 뉴스듣고 화가치밀었니더. 내라도 혼자서 폐기해야 농민들이 좀 나아지지 않겠니껴."

"유통업자만 살리는 거고. 방송에서 그렇게 떠들어버려서 안팔려요. 농민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이 없는데. 배추농사짓는 사람은 농민 아닙니까. 왜 배추농사꾼한테는 비료 한포대 값도 지원안합니까."

출하를 앞두고 9000평 규모의 애써 가꾼 봄배추를 절박한 심정으로 일일이 손으로 뽑아 폐기했다는 한 배추농꾼을 만나러 가는 길에 진한 아카시 향내가 코끝을 찌른다.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마평리. 이차선 도로 양쪽에 사과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시큼하면서도 농익은 거름냄새가 훅 끼친다.

연한 검은빛의 거름더미가 도로 한 편에 가지런하게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청송=뉴스핌] 남효선 기자 = 농작물 유통구조 등 농정정책 개선을 요구하며 출하시기를 앞두고 애써 가꾼 9000평 규모의 친환경 배추를 일일이 자신의 손으로 뽑아버리며 수확을 포기한 경북 청송군 마평리의 한 봄배추밭 고랑에 잘 여문 배추들이 뿌리를 드러내고 도열하듯 누워있다. 2024.05.17 nulcheon@newspim.com

굴삭기가 세워져 있는 거름더미 너머로 통통하고 실한 봄배추가 뽑혀져 밭고랑에 뿌리를 허옇게 드러내고 도열하듯 널려있다.

"왜 폐기했냐고요? 속이 상했니더. 내일모레가 출하시긴데. 이렇게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배추를 왜 뽑았겠니껴?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내라도 희생해야 우리 농민들이 좀 나아지지 않겠니껴."

평생 흙을 뒤지며 농꾼으로 살아왔다는 박 모씨(65, 지체장애 4급)가 담담하게 입을 연다.

목소리에 결기가 묻어 나온다.

박씨는 농산물 정책도 강하게 비판했다.

"일년에도 몇 번씩 농관원이다, 군청이다, 정부에서 농삿꾼들을 찾아다니며 농작물을 조사하고 해도 무신 소용이 있니껴? 비료값에다, 약값에다 인건비는 하늘보다 높게 치솟는데 배추값 좀 올랐다꼬 정부가 하루에 1000톤씩 비축 배추 방출한다면 우리 농삿꾼은 죽으란 것밖에 더되니껴."

박씨는 봄배추 출하시기를 앞두고 시중가격이 조금 올랐다해서 정부가 농촌지역의 배추 생산 농가 실태는 전혀 고려치 않고 불쑥 '1일 1000톤 방출'을 발표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고 항변한다.

그러면서 박씨는 "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가) 배추 비축량 방출을 확대하고, 배추에 할당관세를 적용해 수입하기로 한 것에 억장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농가 지원체계의 모순도 조목조목 짚었다.

"가격 안정을 위해 다른 농산물에 대해서는 지원도 되던대 배추 재배 농가에는 지원이 전혀 없니더. 그 흔한 비료 한포대도 지원못받았니더."

그러면서 박씨는 현행 유통체계 불합리성도 강하게 지적했다.

"배추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현재 유통구조가 개선안되면 농민들 생활은 나아지는 게 전혀 없니더. 뼈 빠지게 일하면 뭐 합니까.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질 않는데."

그러면서 박씨는 "현재 봄배추가격이 소비자들에게는 비쌀지 모르지만 도매시장에서는 가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정작 생산 농민들이 받는 가격은 엉망이다"면서 "나 혼자라도 수확을 포기해 농민들이 가격을 제대로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이라며 깊은 숨을 내쉰다.

농산물 유통구조 등 농정정책 개선을 요구하며 출하를 앞두고 9000평 규모의 봄배추를 일일이 제손으로 뽑아버리며 수확을 포기했다는 박씨가 폐기하기 전에 동영상에 담은 봄배추밭.[사진=동영상캡쳐] 2024.05.17 nulcheon@newspim.com

박씨는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출하를 앞둔 배추를 일일이 손으로 뽑기 전에 찍은 '1등배추' 모습이라며 자신이 찍었다는 동영상을 보여준다.

동영상 속에는 박씨의 말처럼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봄배추'가 흡사 넘실대는 파도처럼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지체장애(4급)를 가진 박씨는 지난 3월 봄배추를 파종했다.

9000평 규모 배추밭에 양질의 거름을 빈틈없이 깔았다. 소비자의 몸에 유익한 건강한 배추를 생산하기위해서라고 박씨는 강조했다.

[청송=뉴스핌] 남효선 기자 = 농산물 유통구조 등 농정정책 개선을 요구하며 출하를 앞두고 애써 가꾼 봄배추를 제손으로 모두 뽑아 수확을 포기했다는 박씨는 오로지 양질의 거름으로 토양을 살리며 농약 한번 치지 않고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1등 배추'로 키웠다며 산더미처럼 샇여 있는 거름더미를 가리킨다.2024.05.17 nulcheon@newspim.com

박씨는 건강한 봄배추 생산을 위해 굴삭기를 들여 양질의 퇴비를 깔고 비닐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수 일간 약 60여명의 인력을 투입했다.

또 파종한 봄배추 모종을 이식하는데 약 나흘간 50여명의 인력이 추가 투입됐다.

박씨는 불편한 몸에도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 그 흔한 농약 한번 치지 않았다고 했다.

박씨는 오로지 양질의 거름으로 토양을 살리며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1등 배추'로 키웠다며 "출하를 앞두고 자식같은 배추를 내 손으로 뽑아버리는 심정이 오죽하겠느냐"며 배추밭 고랑에 맥없이 널브러져 있는 배추를 가리킨다.

 

 

[청송=뉴스핌] 남효선 기자 = 봄배추 출하가 마무리되면 후속작물로 가꿀 계획이던 '대파 모종'이 농사 포기로 바짝 타들어가고 있다.2024.05.17 nulcheon@newspim.com

박씨는 봄배추를 출하하고 후속작물로 '대파'재배를 할 계획이었다며 배추밭 한 쪽에 파종한 대파모종밭을 손으로 가리킨다.

"봄배추 출하하고 다시 비닐을 걷어내고, 퇴비를 넣고,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 모종해 놓은 대파를 심을 계획이었는데... 이제는 대파 모종에 물도 안주니더. 대파 농사 지으면 뭣합니까? 또 대파값 오르면 정부는 수입대파를 방출할낀데..."

박씨가 가리키는 길다란 대파모종밭이 턱턱 골이 패져있다.

박씨가 '봄배추 방출' 소식을 듣고 애써 가꾼 봄배추 9000여평을 일일이 제 손으로 뽑아 없앤 후부터 물한방울 공급않고 그대로 버려뒀기 때문이다.

박씨는 "현재 배추가격이 소비자들에게는 비쌀지 모르지만 도매시장에서는 가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배추 생산 농민들이 받는 가격은 엉망이다"면서 "나 혼자라도 수확을 포기해 농민들이 가격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청송=뉴스핌] 남효선 기자 = 출하시기를 앞두고 애써 가꾼 봄배추를 일일이 제 손으로 뽑아 수확을 포기한 배추밭에 거름을 넣던 굴삭기 한 대가 작업을 멈춘 채 뎅그마니 세워져 있다.2024.05.17 nulcheon@newspim.com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봄배추 사전 정부 수매로 여름철 배추 수급 불안 대비에 나선다고 이달 16일 밝혔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7월부터 9월까지는 폭염 폭우 등 이상기후에 의한 가격 급등락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시기로 올해 여름배추의 경우 재배 의향 면적이 지난해보다 4.6%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따라 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5월 생육기 중에 6000톤을 사전 수매하고 추후 수급 상황을 주시하며 추가 수매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또 생산자들에게도 정부 비축 규모를 미리 공유해 하절기까지 안정적인 배추 공급이 이뤄지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nulcheo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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