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피의자 아닌 자'를 조사한 전문증거"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진술분석관이 피해자와 면담한 내용을 녹화한 영상녹화물이 증거능력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친족관계에의한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 등에게 징역 3년 6개월에서 징역 8년을 선고하고, B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21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이번 사건에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은 총 4명이다. A씨는 피해자의 친모이며 B씨는 계부, C·D씨는 A씨의 지인들이다.
A씨는 2012년 2월부터 같은해 4월까지 4회에 걸쳐 딸인 E양 앞에서 C씨와 성관계를 하고, 2018년 2월부터 2020년 8월까지 E양을 신체적·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B씨는 2018년 11월 및 2019년 2월 당시 10~11세 여아인 피해자 E양을 강간하고, 그의 앞에서 A씨와 성관계를 하는 등 정서적으로 E양을 학대행위를 한 혐의를 받았다.
아울러 검찰은 C씨와 D씨가 공모해 2021년 4월과 같은해 5월 E양에게 유사성행위를 한 혐의를 적용했다.
수사과정에서 대검찰청 소속 진술분석관은 검사로부터 성폭력처벌법 제33조에 따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여부에 대한 의견조회를 받고, 자신이 피해자와 면담하는 내용을 녹화했다. 검사는 그 영상녹화물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이번 사건에선 이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이 쟁점이 됐다.
1심은 "영상녹화 CD는 증거목록 기재와는 달리 검사 또는 검찰수사관이 아니라 '대검찰청 소속 진술분석관'이 피해자를 면담하면서 이를 영상녹화한 것"이라며 "대검찰청 소속 진술분석관이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당 영상녹화 CD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 이외의 수사기관이 피고인 아닌 자의 진술을 촬영한 영상물에 해당한다"며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아닌 수사기관이 피의자 아닌 자를 조사한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에 관해 형사소송법 312조에서 규율하고 있지 않으므로, 위 영상녹화 CD는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증거란 직접 경험한 사람의 진술이 아닌 그 대체물인 진술 또는 서류에 해당하는 증거를 의미한다.
그러면서 1심은 A씨에게 징역 10년, B씨에게 무죄, C씨에게 징역 7년, D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2심도 "이 사건 영상녹화물은 '수사과정에서 작성된 영상녹화물'에 해당하므로 수사과정 이외에서 작성된 진술서 등을 대상으로 하는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이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은 A씨와 D씨의 형량을 줄여 이들에게 각각 징역 8년과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으며, B씨와 C씨에 대해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도 1·2심과 같이 해당 영상녹화 CD의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고인이 아닌 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제작한 영상녹화물은 공소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독립적인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제작한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 내지 증거로서의 사용 범위를 다른 전문증거보다 더욱 엄격하게 제한하는 판례의 취지 등에 비춰보면, 수사기관이 아닌 자가 수사과정에서 피고인이 아닌 자의 진술을 녹화한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도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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