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정치 통일·외교

속보

더보기

쿠바 수교를 '체제경쟁 승리'로 몰고가는 정부

기사입력 : 2024년02월16일 10:08

최종수정 : 2024년02월16일 10:11

대통령실 "쿠바 수교는 역사의 대세 보여준 것"
여당 "반미연대 무너뜨린 윤석열 외교 성과"
쿠바 수교에 정치적, 시대착오적 의미 부여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1990년 9월 구 소련의 외교장관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는 3개월 뒤 소련이 한국과 수교할 것이라는 사실을 북한에 전하기 위해 평양을 찾았다. 셰바르드나제는 북한을 설득할 논리를 치밀하게 준비했지만 예정보다 단축된 이틀 간의 방북 일정은 끔찍한 경험으로 점철됐다.

북한에게는 존망이 걸린 중대사였다. 김영남 외무상은 소련의 결정에 격렬히 반발하며 셰바르드나제를 협박하는 언사를 거침없이 내뱉었다. 김영남은 소련이 한국과 수교하면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모색하는 중앙아시아, 발트해 연안 국가를 모두 독립국으로 승인할 것이며, '우리가 희망하는 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에도 얽매이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셰바르드나제는 김일성 주석을 만나지도 못한 채 서둘러 짐을 꾸려 평양을 떠나야했다. 이 일로 한국과 소련의 수교는 오히려 앞당겨졌다.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고 동구권 공산국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던 시기 한국은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처하기 위한 '북방외교'를 추진했다. 소련, 중국과 수교하고 동구권 국가들과도 외교적 관계를 잇달아 성사시켰다. 북방외교는 탈냉전 시대 외교전략를 표방했지만 사실 이념을 완전히 초월한 것은 아니었다.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었다.

실제로 북한은 중국, 소련이 한국과 수교함으로써 국가적 위기를 맞게 됐다. 결국 북한이 위기 탈출을 위해 핵무기 개발을 선택함으로써 한반도 정세가 한국의 의도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당시 북한이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정부가 북한의 '형제국'이라고 표현되던 쿠바와 수교하기로 합의한 사실을 공개한 다음날인 15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쿠바와의 수교는 대(對) 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이어 "역사의 흐름 속에 대세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며 "북한으로서는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은 "반미·사회주의 연대의 중심축을 무너뜨리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적 성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마치 한·소 수교로 북한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과거의 승리감을 되새기는 듯한 느낌이다.

지금 북한은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틈을 타 중국,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미국 주도의 세계패권에 맞서고 있다. 쿠바는 국제무대에서 북한과 이념적으로 동조하는 관계이나 군사적, 경제적으로 북한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물론 북한으로서는 한국과 쿠바의 수교로 심리적, 상징적 타격을 받을 수 있지만 과거 탈냉전 시기와 같은 위기 의식을 느낄만한 사안은 아니다.

한국이 중남미 유일의 미수교국이던 쿠바와 정식 외교관계를 맺게된 것은 틀림없이 외교적 성과다. 하지만 북한을 고립시켰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중남미 외교에서 중대한 전기가 마련됐다는 의미에서 성과다. 한국은 그동안 쿠바와 다양한 교역을 통해 경제, 문화적 접촉을 늘려왔고 인적 교류도 상당한 편이다. 정식 외교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쿠바와 비공식 접촉이 커지는 것은 여러가지 위험을 수반한다. 수교는 이같은 위험을 막을 수 있는 안전한 제도적 장치다. 경제, 민간교류 확대 등 협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이같은 실질적인 측면에서 쿠바 수교의 의미를 찾지 않고 '북한 고립'과 철 지난 '체제 경쟁 승리'에 가장 큰 의미를 두려는 정부 여당의 인식은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쿠바와의 수교를 정치공세로 연결하기도 한다. 정부 관계자들은 쿠바 수교를 보수 정부의 외교 성과로 포장하면서 은근히 문재인 정부가 북한을 의식해 쿠바와의 외교 관계 수립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드러내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강력히 드라이브를 걸었으나 문재인 정부는 손 놓고 방관했으며, 이어 윤석열 정부가 등장해 완결을 지었다는 식이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과 쿠바의 수교 협상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과 쿠바의 관계'다. 미국은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 이후 쿠바에 대해 '봉쇄와 고립'으로 일관했다. 당시 한국은 쿠바와의 외교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다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쿠바와 국교를 재개하고 우호적 관계를 맺기 시작하자 박근혜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최초로 쿠바를 방문해 양자 외교장관회담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정부의 쿠바 정책을 모조리 뒤집었다. 쿠바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각종 제재를 가하는 적대적 정책을 폈다. 문재인 정부가 쿠바와의 관계에서 멈칫한 것은 북한의 눈치를 본 것이 아니라 쿠바에 적대적인 미국을 의식한 결과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국내정치적 이유로 쿠바를 다시 끌어안지는 못하고 있지만 쿠바와 관계를 조금씩 재설정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쿠바 수교 협상이 다시 탄력을 받게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과의 수교 이후에도 쿠바는 여전히 북한과 우호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평양의 외교사절이 모두 철수한 이후 쿠바가 중국, 몽골에 이어 3번째로 평양 주재 대사를 다시 파견한 것만 봐도 북한과 관계를 멀리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쿠바가 한국과 손을 잡은 것은 북한과 멀어지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한국과의 공식관계 수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거의 세계 모든 나라와 국교를 맺고 있다. 수도 아바나에 있는 재외공관만 100개가 넘는다. 쿠바는 한국과의 경제협력, 교류확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수교한 것이지 정치적 이유로 남북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쿠바는 이제 남북한과 모두 수교를 한 150여개국 중 하나가 됐을 뿐이다. 트럼프 시대가 다시 열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쿠바를 한국과의 수교 협상에 적극 나서게 했을 가능성도 있다.

쿠바와의 수교를 체제 경쟁의 차원에서 평가하는 정부 여당의 인식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더구나 수교를 위한 공한을 교환하자마자 쿠바와의 수교가 '역사의 대세'이며 북한은 더욱 고립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은 어렵게 결단을 내린 외교 상대국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어서 쿠바 외교가 출발점부터 엇나갈 위험성이 있다.

한국은 오랜 외교적 숙원을 해결했지만 쿠바와의 외교는 이제 첫 발을 뗄 준비를 했을뿐 아직 갈 길이 멀다. 사회주의 국가 체제의 까다로운 절차와 미국의 경제제재로 금융거래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국내 기업이 진출하는데는 많은 현실적 장벽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장이어서 여러가지 기회도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쿠바가 한국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렵게 이뤄낸 외교적 결실을 북한과 연결시켜 이념 대결로 몰고 가려는 정치공세는 이제 그만 접어두고 신중하고 정교한 대(對) 쿠바 외교전략을 고민하길 바란다. 

opento@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구름 많고 낮 더위...서울·경기 오전 소나기 [서울=뉴스핌] 박우진 기자 = 화요일 10일 전국은 대체로 구름이 많거나 흐리다가 낮에는 무더운 날씨가 나타나겠다. 중부지방과 충남은 오전 한때 소나기가 내리겠다. 기상청과 케이웨더에 따르면, 이날 전국은 서해상에 위치한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겠으나 제주도는 남쪽 해상을 지나는 기압골의 영향을 받겠다. 전국이 구름이 많거나 흐리겠다. 서울과 경기, 강원영서, 충남북부에는 오전 한때 소나기가 오겠다. 예상 강수량은 5~15mm다 아침 최저기온은 17~21도, 낮 최고기온은 22~33도가 되겠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봄비가 내린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우산을 쓴 시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기상청은 이날 전국에서 봄비가 내리며 영남은 최대 80㎜, 수도권은 최대 50㎜에 달하는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2025.04.22 yooksa@newspim.com 지역별 아침 최저기온은 ▲서울 20도 ▲인천 15도 ▲춘천 18도 ▲강릉 22도 ▲대전 20도 ▲대구 20도 ▲부산 20도 ▲전주 19도 ▲광주 20도 ▲제주 19도다. 낮 최고기온은 ▲서울 26도 ▲인천 20도 ▲춘천 26도 ▲강릉 31도 ▲대전 29도 ▲대구 33도 ▲부산 26도 ▲전주 30도 ▲광주 29도 ▲제주 26도다. 미세먼지 농도는 오전에 세종, 대전, 충북에서 '한때 나쁨'을 기록하겠고, 그 밖의 지역은 '보통'을 나타내겠다. 오후에는 전국이 '보통'이다. 바다의 물결은 동해상에서 0.5~1.5m, 서해와 남해상에서 0.5~1.5m로 일겠다. krawjp@newspim.com 2025-06-10 06:22
사진
민정수석에 검찰 출신 오광수 변호사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이재명 대통령은 8일 검찰개혁 과제를 수행할 민정수석으로 검찰 특수부 출신의 오광수 법무법인 대륙아주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18기)를 임명했다. 오 수석은 제28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18기를 수료했다. 이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 등과 동기다. 26년 동안 검찰에 재직한 특수통으로 꼽힌다. 오광수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 [사진=대통령실] 오 수석은 부산지검에서 첫 근무를 시작해 대전·서울·수원지검을 거쳐 1999년 대검 검찰연구관을 역임했다. 2001년 부부장검사로 승진해 제19대 광주지검 해남지청장을 지냈으며 서울지검 부부장검사, 인천지검 특수부 부장검사, 대검찰청 중수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장검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12년부터는 대구·청주에서 검사장을 지낸 뒤 2015년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근무를 끝으로 26년 간의 검찰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했다. 2020년부터는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대표 변호사로 활동해왔다. 검찰 재직 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분식회계 사건, 한보그룹 분식회계 사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 비리사건,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수사했다. 여권 일각에서 당초 오 수석이 검찰 개혁을 추진할 적임자인지 의문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같은 특수부 검사출신인데다 2013년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 대구고검장으로 재직할 당시 대구지검장을 지낸 이력 때문이었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이 대통령은 정치 검찰의 가장 큰 피해자"라며 "오 수석의 사법 개혁 의지도 확인했다. 일부 우려하신 분들 걱정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1960년 전북 남원 ▲전주고 ▲성균관대 법학 학사 ▲성균관대 대학원 공법 박사 ▲사시 28회 ▲사법연수원 18기 ▲광주지검 해남지청장 ▲인천지검 특수부 부장검사 ▲대검 중수2과 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장검사 ▲대전지검 서산지청장 ▲수원지검 안산지청장 ▲청주지검장 ▲대구지검장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법무법인 대륙아주 대표변호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opento@newspim.com 2025-06-08 11:15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