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의 김성식 감독이 올 명절 출사표를 던졌다.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그는 이번 영화로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본다'는 각오다.
김성식 감독은 10년 간의 연출부 생활을 거쳐 장편 데뷔작을 내놓는 감격스런 소감을 털어놨다. 입봉작에 업계 최고의 배우 강동원, 허준호, 이동휘, 이솜이 든든하게 함께했다는 사실은 그에게 그야말로 꿈만 같은 일이다.
"고등학교 때 '살인의 추억' 보면서 감독을 꿈꿨는데 워낙 만화를 좋아해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어요. 졸업하고 외주업체에서 일해보니 시스템이 척박했죠. 당시 선배들이 '영화를 하는 게 낫겠다'고 조언해줬고 연출부를 해보자 해서 '설국열차' 제작 소식에 겁도 없이 시나리오를 막 써서 봉준호 감독님을 찾아갔어요. 관객과의 대화에서 시나리오와 편지를 드렸는데 '왜 이런 걸 주냐. 모르는 사람 갖다주면 안돼요' 하셨죠. 두 달 후 조감독한테 연락왔는데 영어 할 줄 아냐더군요. 못한다니까 안되겠다 다음에 연락 드리겠다고. 하하. 이후에 곽경택 감독님 '해무' 연출부에 있다가 다시 뵀어요. 저를 알아보셨고 그 인연으로 '기생충' 조감독을 할 수 있었죠. 이후에 '헤어질 결심'도 했고요. 절박해서,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 설경의 비밀'의 김성식 감독 [사진=CJ ENM] 2023.09.26 jyyang@newspim.com |
'천박사'의 주연이 강동원이라는 것 다음으로, 김성식 감독과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봉준호, 박찬욱의 인연이 화제가 됐다. 실제로 봉준호, 박찬욱 키즈라고도 불리는 것은 물론, '천박사'에는 두 감독과 조감독 시절 함께 작업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김 감독은 박찬욱 감독을 아버지 같은 느낌이라며 그들에게 배운 점들을 얘기했다.
"박찬욱 감독님에게는 영화와 역사와 품위, 영화란 이런 것이다 하는 걸 많이 배웠어요. 배우 디렉션, 연기에 어떻게 강세를 어디 줘야하는지, 배우를 다루는 법들도요. 봉준호 감독님은 봉테일이라 불리시잖아요. 디테일, 사전 준비, 소품 하나까지도 신경쓰시죠. 프레임 하나에 이 소품과 동선의 이유를 다 부여한다는 걸 보고 배웠죠. 고등학교 때 '살인의 추억'을 너무 좋아해서 50번도 넘게 봤어요. 송강호 선배 대사도 막 외우고요. 송강호 선배가 VIP 시사 때 입봉 축하한다고 인사를 해주셔서 감동적이었죠. 추석에 동시개봉을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신인 감독인 그에게 강동원은 선뜻 출연을 결정함과 동시에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판타지 액션을 구현하는데 작업 과정에도 큰 도움을 줬다. 그는 "처음 본 느낌이 동공이 정말 예쁘시네, 투명하시네. 순수하고 맑구나. 다른 종족이시구나 했다"면서 웃었다.
"애초 시나리오 쓸 때부터 각색 과정에서 강동원 씨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강동원 캐스팅 안되면 조감독 다시 하러 가야겠다.(웃음) 날 잊지 않으셨겠지. 강동원 씨랑 만화 좋아하는 취향이 겹치기도 해서 은근슬쩍 통한 것 같아요. 축구도 좋아하고요. 사실 봉 감독님이랑도 영화 얘기보다 축구 얘길 더 많이 해요. 손흥민 골 넣을 때마다 같이 얘기하고. 다들 아시다시피 박감독님은 축구를 안 좋아하세요. 그분께는 위스키를 배웠어요. 비싼 술을 그때 처음 먹어봤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 설경의 비밀'의 김성식 감독 [사진=CJ ENM] 2023.09.26 jyyang@newspim.com |
기획 단계부터 추석 시즌을 겨냥하고 만든 영화인 '천박사'에는 우리 나라의 무속신앙을 소재로 삼은 이색 퇴마 판타지다. 김 감독은 애니메이션 전공자답게 범상치 않은 상상력과 방대한 자료 조사로 영화 속 장면들의 설정을 빚어냈다. 강력한 부적인 설경의 디자인부터, 설경의 내부 마치 멀티버스처럼 존재하는 우주의 풍경 등이 모두 그의 상상력에서 나왔다.
"마법진 같은 건 어릴 때 '그랑죠'를 워낙 좋아했어요. 동양적인 문화는 산스크리트어 기반의 만트라 문양들, 동양의 기원을 이룬 문화를 많이 참조했죠. 그 기원을 많이 찾으려고 애썼고 칠성검도 금속인데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나오죠. 농경시대부터 무당들이 농사가 잘 짓게끔 기도를 많이 하면서 철에 축복을 주고 불에 축복을 주는 그런 기원에서 많이 가져왔어요. 한국의 무속신앙을 찾아가는 계기가 됐죠. 시즌2에 대한 아이디어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칠성검을 왜 갖고 있을까.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게 무당의 일인데 저승과 이승의 힘을 맞추고 귀신을 보내주고 나쁜 귀신은 퇴치하라는 의도로 저승에서 보내준 게 아닐까 정도의 생각을 해봤죠."
가장 공을 들였던 설경 디자인부터 임권택 감독의 '안개마을'을 떠올리며 연출한 영화 속 마을 풍경, '닥터 스트레인지'나 '콘스탄틴'의 어떤 설정과 장면들은 김성식 감독의 방식대로 영화에 녹아들었다. 그야말로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모두 해본 작업이었고 시작이 좋은 만큼 향후 그의 구상을 펼쳐낼 후속작에도 기대가 쏠린다.
"'마리아 랙스' 사진집 이미지들을 좀 떠올리며 작업하기도 했고 과거 영화 프로그램에서 봤던 설정들, 토굴 같은 건 '인디아나 존스'도 생각나죠. 개인적으로 시간 여행과 자연 환경에 대한 이야기, 지구가 살아 숨쉰다는 가이아 이론 같은 데 관심이 많아요.고등학교 때 만화같은 이야기를 생각했는데 부엉이가 점점 환경이 변하면서부터 인간과 융화하고 관찰하고 인간의 습성을 따라하고 인간 사회에서 자연의 메시지를 주는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작업하면서 힘들면 봉 감독님, 박 감독님은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요. 그럼 어려운 결정을 할 때 확실히 도움이 되고 냉정해지기도 해요. 선배 감독님들이 한국 영화의 토양을 잘 발전시켜주셨으니, 후배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토대를 이어가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 나가야죠. 지금 조감독 하는 친구들도 하나씩 데뷔하고 다양한 작품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