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상온·상압 환경에서의 초전도성 물질 구현을 한국의 한 민간 연구소가 해냈단 소식에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관련주는 급등했고 유튜브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전례없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폭주하고 있다.
민간 연구회사 퀀텀에너지연구소의 이석배 대표와 김지훈 연구소장 등은 지난 22일 사전 논문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e)에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연구 논문 두 편을 게재했다.
아카이브는 동료 검토(peer review) 등 검증을 거치지 않은 논문을 누구나 게재할 수 있는 사이트여서 객관적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사상 초유의 상온상압 초전도성 물질 발견에 세계 각국의 연구진이 검증에 뛰어들고 있다.
[사진 = 셔터스톡] |
◆ 초전도체가 뭔데?...상온상압 검증시 '노벨상감'
같은 전압(V)에 전기저항(R)이 낮다면 큰 전류(I)가 흐른다. 반면 저항이 높다면 송전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스마트폰, PC를 오래 사용하면 기기에 발열이 있는 이유도 이 전기저항 때문이다.
만일 이 저항이 '0'이라면? 이론상 전류는 무한으로 흐를 수 있다. 송전효율 100%의 에너지가 바로 '초전도체(超傳導體·superconductor)'다.
1911년 네덜란드의 카메를링 오너스란 과학자가 액체 헬륨을 이용한 극저온 실험에서 헬륨의 액화온도인 4.2k(섭씨 영하 269도) 근처에서 수은의 전기저항이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 최초다. 이는 저항이 특정 낮은 온도에서 0이 되는 임계 온도를 발견한 것인데,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수은 의외의 금속에서도 초전도 현상을 관찰했다.
문제는 임계 온도가 낮아도 너무 낮다는 것. 예컨데 액체 수소나 질소를 사용해 전기저항을 0으로 만드려면 영하 230~250도의 환경을 계속 유지해야 해 실제 사용하기에는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지 않다. 이상기체 방정식에 따라 임계 온도를 높이려면 기압을 올려야 한다. 그러나 현대 기술로 수천~수만 파스칼이란 극압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극저온 환경 형성보다도 어렵다.
이에 세계 과학계는 지난 수십년간 좀 더 높은 온도에서의 초전도성을 구현하는 연구에 힘을 쏟아왔다. 지난 2019년에 수소화란타넘(LaH10)을 활용해 영하 23도로 임계 온도를 끌어올린 초전도체 연구가 나왔지만 역시나 문제는 대기압의 170만배에 달하는 기압이었다.
일본 야마나시현에 전시돼 있는 자기부상 고속열차 모델. [사진=블룸버그] |
그러니 상온(대체로 20°C ~ 30°C 사이의 온도)과 상압(보통 대기압) 환경에서의 초전도성 물질이 '꿈의 물질'로 불리고, 이 물질이 발견된다면 '노벨상감'이라고 불릴 만하다.
인류는 핵융합발전 등으로 무한 전력을 누릴 수 있다. 초전도체는 양자컴퓨터, 인공지능(AI) 모델 등 첨단 기술에도 적용할 수 있다.
초전도성 물질이 자기장을 밀어내 부상하는 이른바 마이스너 효과(반자성)란 성질을 이용한 초고속 자기부상 열차 등 혁신 교통 수단 제작도 가능하다. 상온상압 초전도체는 21세기 최고의 발명이란 것에 반박할 과학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 연구진 검증 일주일째...초기 반응은 긍정적
국내 연구진의 상온상압 초전도체 논문이 세상에 나오고 약 일주일 후부터 해외 외신에 핫토픽으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해외 연구진은 연구 논문상 내용을 구현하기 위해 일주일째 고군분투 중이다.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의 시네드 그리핀 연구원은 지난달 31일 처음으로 'LK-99'의 초전도성이 '이론상 가능하다'는 논문을 아카이브에 발표했다.
그가 한국 연구진이 공개한 LK-99의 구조 토대로 전자의 이동 경로를 슈퍼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해봤더니 "초전도성이 나올 수 있는 경로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시뮬레이션을 분석한 결과이지 실험을 통한 검증으로 보긴 어렵다.
또한 그리핀 연구원은 "LK-99의 적절한 구조를 합성하면서 대량 생산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가장 최근인 2일 중국 화중과학기술대학교의 연구팀은 중국판 유튜브인 빌리빌리에 "LK-99 재현에 성공했다"는 동영상을 올렸다.
중국 화중과기대 연구팀이 2일 중국판 유튜브에 게시한 'LK-99' 재현 동영상 캡처. 영상 속 물질은 마이스너 현상으로 추측되는 현상으로 서있다. [사진=빌리빌리 캡처] |
동영상 속 검은색 물질이 비스듬하게 공중에 뜨는 모습이 담겼는데, 연구진은 LK-99의 마이스너 현상은 확인했지만 전기저항이 상온에서 0이 됐는지는 검증하지 못했다며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고 알렸다.
반면 중국 베이항대 연구진, 인도 국립물리연구소 등은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아직 검증 초기 단계여서 섣부른 판단은 이르다.
국내에서도 한국초전도저온학회가 LK-99 검증을 위해 상온초전도 검증위원회를 꾸려 자체 판명에 나서겠다고 전날 밝혔다.
◆ "인산구리와 인 합성?" 회의론 여전히 커
전 세계가 LK-99에 기대를 걸면서도 동시에 회의론도 크다.
미 아르곤국립연구소의 마이클 노먼 재료과학부서 총책연구원은 사이언스지와 인터뷰에서 2편의 연구 논문의 내용을 보니 "진짜 아마추어 같다. 초전도성 개념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데이터 제시 방식도 수상쩍다"는 의견을 냈다.
실제로 두 편의 논문 길이는 수십페이지에 불과해 데이터가 태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먼 박사도 물질 재현에 착수했다며, 일주일 후 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다.
회의적 시선을 가진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는 또 있다. 상온상압 초전도체란 희대의 난제치고 너무도 간단한 제조 '레시피'다.
논문에 따르면 연구진은 산화납과 황산납을 섞은 뒤 725도에서 24시간 가열해 황산화납을 만들었다. 이어 구리와 인을 혼합해 550도에서 48시간 가열해 인화구리를 만들었다. 이후 환산화납과 인화구리를 1대1로 섞은 뒤 높은 진공 상태로 925도로 구워 LK-99를 제조했다.
노먼 박사는 "해당 물질은 금속이 아니라 전도성이 없는 광물"이라며 초전도체 제조에 적합한 재료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돌을 가지고 무엇을 해도 결국은 돌이다"라며 납 아파타이트에 구리 불순물을 추가한 레시피라고 해서 재료의 전기적 특성에 큰 영향을 끼칠 순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납의 원자는 매우 무겁기 때문에 물질의 음전자와 양전자의 전자쌍을 유도할 진동을 억제한다는 지적이다. 만일 LK-99가 초전도체라면 과학계의 상식을 깨는 일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화학자가 실험 연구를 하고 있다.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무관하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논문이 짧고 데이터가 많지 않아도 초전도성 물질을 재현할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에도 논문을 게재했다가 조작으로 드러나 철회한 사건이 여럿 있었기에 회의적인 시각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최근이자 유명한 사건은 지난 2020년 미국 로체스터대학의 랑가 디아스 기계공학과 교수팀이 대기압 100만배 압력에서 약 15도의 상온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발견했다는 연구 논문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했다가 데이터 조작이 확인된 바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어바나-샴페인 캠퍼스의 응집물질물리학자, 나드야 메이슨 박사도 논문상 데이터가 "약간 엉성하다"면서도 연구진이 제조 레시피를 자세히 공개해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증 결과가 어떻게 됐든 세계 과학계가 '상온상압 초전도체 재현'이란 숙제 하나로 뭉칠 수 있게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과학계 뿐만 아니라 지구촌이 한국의 연구진이 내놓은 이번 연구 검증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