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의사결정' 두고 1·2심 판결 엇갈려
"사망 당시 상황 나빠져…급격한 증세 악화 때문으로 볼 여지 있어"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피보험자(보험대상자)가 우울증을 겪다 극단적 선택을 해 사망한 경우, 대상자의 면책사유를 판단하기 위해선 그의 우울증 진단부터 사망 때까지 상황 전체의 양상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A씨의 부모가 B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지급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A씨는 2019년 11월 극단적 선택을 해 사망했다. A씨의 부모는 그가 사망한 후 사망보험을 체결한 B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다.
법원에 따르면 관련 약관에는 '피보험자(보험대상자)의 고의'로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한 경우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나, 대상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헤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돼 있었다.
B사는 A씨가 심신상실 등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이에 A씨의 부모는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A씨의 부모 측 손을 들어줬으나 2심은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면서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A씨가 사망 직전 부모, 누나와 통화하며 '미안하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등 자신의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인식하고 있었고, 극단적 선택 방식 등에 비춰볼 때 행위가 충동적이거나 돌발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우울증을 겪고 있던 A씨와 그의 극단적 선택 사이의 연관성이 있었는지를 살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A씨는 9년 전부터 주요우울병 등의 진단 하에 진료를 받아오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1년 전에는 입원치료가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고, 우울증을 겪으며 반복적으로 죽음을 생각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할 무렵 신체·경제·사회적 문제로 상황이 지극히 나빠졌고, 특히 극단적 선택 직전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우울증세가 급격히 악화돼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우울증과 극단적 선택 사이에 관련성이 있어 보이는 경우,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그 무렵 A씨의 상황 전체 양상과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일련의 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hyun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