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임대주택법상 주택기금 융자·보증금 상한선 적용
"보증금 보호 최우선 목적"…전세사기는 보전 불가
주거권 보장 외 효과 없어…금융권 보전만 가능
"부도임대와 상황 달라" 국토부, 우선매수 기준 검토
[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세사기주택 우선매수가 전세사기 피해 지원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LH는 과거부터 매입임대주택제도를 활용했지만 2007년 제정된 부도임대주택법(부도공공건설임대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에 따라 민간 건설임대주택 사업자의 부도로 인한 피해 구제를 위해서만 우선매수청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당시 LH는 임차인의 보증금과 주택기금 회수를 위해 우선매수권을 활용했다.
이에 따라 이번 전세사기 사건에서는 피해자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쫓겨나지 않는 목표 외 효과가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금융권의 선순위 채권을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만큼 LH의 우선매수권 활용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방안 합동브리핑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김학선 기자] |
◆ LH 우선매수권, 부도공공임대 임차인 보증금 보전 최우선…전세사기는 불가
4일 국토교통부와 주택업계 등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자가 피해 주택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LH가 양도받아 공공임대로 제공하는 방안에 대해 피해자들의 반발이 커질 전망이다.
LH의 우선매수 대책은 과거 부도가 발생한 민간의 건설임대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제도와 유사하다. 2007년 제정된 부도임대주택법에 따라 LH는 임차인으로부터 양도받은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공공매입임대로 전환했다. 당시 주택기금을 활용한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이 잇따라 부도 처리되면서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였다.
하지만 이번 대책과 달리 당시는 임차인의 보증금 보호를 위해 LH 우선매수권이 활용됐다. 이를 위해 국토부와 LH는 공공임대주택을 담보로 한 주택기금 융자금과 임차인 보증금을 합한 금액을 상한으로 그 이하에서만 우선매수권을 행사한다는 내부 기준을 정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경매에서 주택기금과 임대보증금을 충족하는 금액으로 낙찰되면 임차인의 보증금 보전이라는 정책목표가 달성되기 때문에 민간에서 해당 가격으로 입찰이 들어오면 LH는 매입을 안한다는 내부 기준이 있었다"며 "해당 수준에서 낙찰이 안될 경우 LH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임차인 보증금을 돌려주고 공공임대로 전환해 장기 거주가 가능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임차인이 우선매수권으로 주택 매수를 원하지 않거나 시장에서 경매를 통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가격에 낙찰될 경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이하 가격에서는 LH가 우선매수권으로 매수한 뒤 임차인의 보증금을 우선 돌려줬다는 것이다. 당시 문제가 된 주택은 공공성이 높은 주택이었고 선순위가 주택기금이었기 때문에 세입자 보호를 최우선에 두고 제도를 설계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이번 전세사기 대책에 포함된 LH 우선매수권 활용은 상당수가 임차인의 보증금을 보전하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 전망이다.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사례의 경우 LH가 우선매수권을 써서 주택을 매입하면 낙찰액은 금융권 선순위 근저당에 먼저 배당되고 후순위인 세입자 몫은 거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서울 강서구 '빌라왕' 사건은 시장에서 진행되는 경매를 통해 보증금 상당부분을 회수할 수 있어 LH가 굳이 우선매수권을 활용할 이유가 없다.
◆ "이번 대책은 주거권 보장 목표" 고가매입 우려도…국토부, 행사기준 검토
정부는 이번 대책에 포함된 LH 우선매수권 활용은 피해자의 주거권 보장이 목표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주거권 보장만을 목표로 해당 주택의 적정가치를 판단하지 않은 채 우선매수권을 활용하면 LH가 고가에 공공임대를 매입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주거권 보장을 위해서라면 피해자들이 살고 있는 주택이 아닌 대체주택을 공공임대로 제공할 수도 있다. 우선매수권을 활용해 피해 주택을 매수하지 않고도 주거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만큼 LH가 우선매수권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다는 의미다.
반면 LH가 우선매수권을 활용할 경우 피해자들이 기존 주택에 살 수 있다는 장점 외 소득이 거의 없다. LH가 낙찰받은 금액 대부분은 선순위인 금융권의 채권을 보전하는 데 쓰인다. 미추홀구의 경우 피해주택 선순위 채권의 상당수가 제2금융권 등 부실채권(NPL) 매입기관으로 넘어간 상태다. 재정으로 해당 주택을 매입해야 할 이유가 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정부도 LH가 양도받은 우선매수권을 어떻게 행사할지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앞서 LH는 서울 강북구 '칸타빌 수유팰리스'의 고가 매입 논란 이후 준공주택매입은 원가 이하(토지비(감정가)+건축비(공공건설임대 표준건축비)-감가상각비)로 매입한다는 방침을 정한 바 있지만 이번에는 별도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게 국토부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해당 지역의 낙찰가율 등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이 또한 시점을 언제로 정할지 등에 따라 편차가 커져 기준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LH가 권리분석을 토대로 우선매수권을 어떻게 행사할지 여러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부도임대주택과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고 특별법이 통과되고 개별 경매가 진행되면 물건별로 판단해야 할텐데 어떻게 할지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소장은 "과거 부도임대주택의 경우 공적자금을 회수하고 임차인 보증금을 돌려주는 목적이 있었던 반면 이번에는 혈세를 투입해 금융권의 채권을 보전해주는 것 이상의 효과가 없고 후순위 임차인 보증금 보장을 위해 과도한 금액으로 낙찰받을 수도 없다"며 "LH가 선순위 채권자의 이익을 보전해주는 역할을 하는 게 맞는지, LH가 낮은 금액에 산다면 그것을 시장이 대처할 수 없는 게 맞는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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