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세 차례 의결권 행사 설명회 개최
KT·우리금융지주 등 대표 선임 건 등 설명無
"국민연금, 관치 논란 피하기 위한 노력 필요"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 국민연금이 올해 정기 주주총회 기간을 앞두고 투명성 제고를 목적으로 상장사들을 대상으로 의결권 행사의 구체적 사례, 세부 기준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최대 관심인 '지배구조' 관련 언급은 전혀없어 알맹이 빠진 설명회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통한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는 과정에서 '과도한 경영 개입', '관치' 논란 등을 낳고 있다. 특히 KT, 포스코, 금융지주 등 대주주가 없는 소유분산기업을 대상으로 지목하고, 이들 기업의 CEO 선임 또는 연임 절차에 적극적으로 목소리고 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KT 차기 대표 이사 선임 과정이 백지화 되면서 이를 바라보는 기업들의 긴장감은 점차 고조되는 상황이다.
◆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정치적 목적 아냐" 해명...객관적 기준 설명은 없어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지난주 국내 주식 위탁운용사(13일), 의안 분석 자문기관(16일), 상장사협의회 회원사(17일) 등 각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총 3차례에 걸쳐 설명회를 진행했다.
기금운용본부는 앞서 이번 행사에 대해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수탁자책임활동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 이동섭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수탁자책임실장이 17일 서울 마포구 상장회사회관에서 한국상장사협의회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사례 및 표준정관 개정 내용 해설 설명회에서 발언중이다. [사진=이윤애 기자] 2023.02.17 yunyun@newspim.com |
하지만 얼마나 기업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수탁자 책임활동의 투명성을 강화했는지는 물음표로 남았다. 위탁운용사와 의안분석 자문기관 대상 설명회는 비공개였고 상장협의회 회원사인 기업 대상 설명회는 공개로 진행됐는데 최근 가장 논란이 되는 '지배구조' 관련 언급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관련해서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은 17일 설명회에서 발제를 시작하면서 이동섭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수탁자책임실장이 "(의결권 행사에 대해) 많은 분들이 정치적 목적에 현혹됐다. 기업 옥죄기라고 오해하는데 전혀 아니다"며 "국가재정법에 근거해 의결권을 행사한다"고 언급한 정도다. 그는 "국민연금 가입자 및 수급자의 이익과 기금 자산의 안정적인 증식을 위한 목적이지 다른 목적이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구현모 KT 대표의 연임에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며 강하게 반대한 건과 우리금융지주 손태승 회장의 연임 포기 및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의 선임 등 일련의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민간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것 아니냐는 관치 논란에 대한 해명으로 보인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개요 ▲의결권 행사 현황 ▲의안별 사례 등이 소개됐다. 이중 의안별 사례에서 최근 현대백화점 지주회사 설립 무산과 관련된 '분할·합병', '이사·감사 선임' 등에 대한 것도 포함됐지만 CEO 선임 관련 내용은 들을 수 없었다.
이 실장은 이후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질문 전에) 소속을 밝히지 않으면 답을 하지 않겠다", "강연한 내용에 한해서만 질문해달라"며 예민한 모습을 보였다. '지배구조' 관련 질문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 국민연금 이지분율 5% 이상 보유한 국내 기업 '264곳'..."나 떨고 있니"
"우리(회사는) 2대 주주인 국민연금에 관심이 많습니다."
질답 시간에 5~6가지 질문을 쏟아낸 한 기업의 실무 담당자가 많은 질문량이 머쓱한 지 질문 말미에 덧붙인 말이다.
국민연금공단 본사 전경 [사진=국민연금공단] 2023.01.06 kh99@newspim.com |
국민연금이 2대 주주이고, 국민연금의 결정에 촉각을 기울이는 기업은 비단 이곳 만은 아닐 것이다. 2021년 말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율 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264곳이다. 2022년 4분기 기준 국민연금 지분율이 10% 이상인 기업은 36곳이나 된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개별 기업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의 기업 견제는 필요하지만 객관적 기준,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자칫 '기업 흔들기'가 될 것이란 우려가 높은 이유다.
실제 국민연금은 지난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의결권 행사 안건 수와 반대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 안건 수는 2018년 2864건에서, 2019년 3278건, 2020년 3397건, 2021년 3378건, 2022년 3459건 등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반대 비중도 18.8%(539건)에서 19.1%(625건), 15.7%(535건), 16.3%(549건), 23.3%(803건) 등 큰 폭으로 늘었다.
관심이 집중된 구현모 KT 대표이사 연임 논란에서는 국민연금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언급하며 적극적으로 반대표 행사를 시사했지만 정작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투명성'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는 최근 'KT 이사회의 대표이사 선임 재추진 결정 관련 논평'에서 "KT 이사회가 구현모 대표이사 연임을 결정하자 곧바로 서원주 기금이사(기금운용본부장)가 입장을 발표했다"며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과거 국민연금 기금이사가 특정기업의 의사결정에 대해 이런 식의 비판을 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어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이 연이어 소유가 분산된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언급하고 있고 우리금융지주에 손태승 전 회장이 연임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결정된 것을 보더라도 국민연금이 낙하산 인사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은 올해 더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예고했다.
이 실장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2018년 도입하고, 이듬해 관련 지침을 마련한 이후 2020년부터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면서 "해외주식 투자로 전체적으론 국내주식에 대한 비중이 줄었지만 기금 운영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지분율 등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올해도 의결권 행사가 예년보다 더 늘거나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확대는 주주가치 제고 및 기업의 투명 경영을 유도하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것"이라면서도 "국민연금을 활용한 정부의 관치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투명하고 독립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yuny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