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애슈빌서 도예 공부…뉴욕서 작품 활동
한국 귀국 2년 만에 '2022 공예트렌드페어' 참여
"공예 가치와 존중 생각해보는 기회되길"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10년 전 속세에서 벗어나고 싶어 훌쩍 떠난 하와이 생활이 그의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하와이 마우이섬에 이주하면서 그곳의 나무, 물, 흙, 돌, 빛을 온몸으로 느끼며 오감을 깨운 그는 '흙'을 빚는 도예가의 삶을 얻었다. '흙'으로 자연을 빚고 싶은 작가 서승준이다.
한국의 이천 '도자기마을'격인 미국 남부의 애슈빌에서 도자 기술을 연마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며 주목받는 도예 작가로 성장했는데,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심각해지면서 2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내서도 서울 통인갤러리, 갤러리 마롱, 갤러리 에이치오엠에 이어 최근 학고재 아트센터서 개인전 등을 선보이며 컬렉터와 만나고 있다.
서작가는 한국 컬렉터들과 한뼘 더 가까이 거리를 좁힐 준비를 마쳤다. 8일 서울 코엑스 C홀에서 개최되는 '2022 공예트렌드페어'에서 서 작가와 마주했다. 그는 국내 최대 공예 축제이자 박람회인 '공예트렌드페어'에 출사표를 던졌다. 올해 처음 참가한 '공예페어'에 긴장 반 설렘 반의 마음이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승준 작가가 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공예트렌트페어에서 뉴스핌과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12.08 pangbin@newspim.com |
"한국에 온지 2년밖에 되지 않아 '공예트렌드페어'가 어떤 곳인지 궁금했어요. 이 페어 참여는 처음이고 오늘은 첫날이라 낯설긴 합니다. 부스를 찾는 관람객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은 큽니다. 함께 공감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해요."
이번 페어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캐스캣' 시리즈와 'Birth(벌스)'와 회화작품이 함께하는 시리즈, '볼캐이노(volcano)' 시리즈다. '캐스캣'은 부드러운 곡선과 형태,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빛을 머금고 있는 듯한 도자다. 숲속에 두어도 이질감이 없을듯한 자연의 멋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돌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질감을 연출하기 위해 유약을 바르고 네번 가마에서 구워냈다. 보통 초벌, 재벌에서 끝나는데 두 배의 과정을 더 거친 거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사람에 대한 기억'을 하기 위해 기획돼 의미가 있다. '캐스캣'의 시작은 지난해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난 6명의 친구들을 추모하기 위함이었다. 이전 전시에서는 명주실을 천장에 달아 생명의 연장과 '연결'에 대한 의미를 담아 설치하기도 했다. 서 작가는 '캐스캣'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고 싶다고 전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승준 작가가 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공예트렌트페어에서 뉴스핌과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12.08 pangbin@newspim.com |
"한국에 오니 작품의 의도나 관련한 정보에 대한 관심보다 가격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큰 거 같아요. 제 작품을 보고 그냥 가격을 물어보시더라요. 사실 이 작품의 경우 세상을 떠난 제 친구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거예요. 그래서 머리처럼 둥근 형태이죠. 이 작품을 미국에서 전시했을 때 기획 배경을 들은 어떤 분은 자신의 남편의 이야기를 꺼내며 함께 우시더라고요. 저의 작품이 누군가와 공감하면 좋겠어요. 함께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는 도예 작가가 되기 전 한국에서 연극배우, 뮤지컬감독, 광고 아트디렉터 등 20여년간 연출계에 몸담았다. 이 이력은 전시장에서도 빛을 낸다. 페어 부스가 갤러리의 전시장과는 다른 공계적 한계가 있지만 작품을 보다 잘 보여주기 위해 조명과 공간 연출에도 신경 썼다.
그는 '공간의 힘'을 믿는다. 코로나19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국에서도 실내 인테리어와 미술 소품에 관심도가 높아졌는데, 미술품을 집에 둘 때 염두해 둬야 할 것이 있느냐고 물으니 공간도, 작품도 함께 사는 방향을 택하라고 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승준 작가의 작품. 2022.12.08 pangbin@newspim.com |
"미국은 집에 작품을 설치하는 문화예요. 벽이든 공간이든 어디든요. 그리고 홈파티 문화도 있기 때문에 작품과 소품을 많이 구매하는 편이죠. 한국은 코로나19 확산 이후로 '홈파티' 문화가 커졌습니다. 그래서 최근 미술 소품을 집에 두기 위해 소비하는 경향이 늘었다고 해요. 작품을 어떻게 설치해야 하느냐고 물어 보시는데, 본인이 좋아하는 물건을 원하는 공간에 두면 됩니다. 포인트는 작품도 공간도 돋보여야 하는 거죠. 예전에 제 작품을 어떻게 집안에 두면 좋겠느냐고 해서 직접 그분의 집에 가서 조언해드렸는데, 세 작품을 사려던 것을 한 작품만 사라고 권했어요. 그 공간엔 작품 하나만 둬도 충분하다고 봤거든요. 공간이 주는 힘이 있는데 이를 무시한다면 작품도, 공간도 안보이게 되기 마련이예요."
서 작가는 '공예'는 누군가의 손에서 태어난 결과물이라며 '공예'만의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아무래도 '공예'는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성이 있어 '오브제'로서의 가치를 간과하기 쉬운데, 노력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 필하다는 거다. 한국에서는 공예가 미술에 속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덧붙였다. 그는 한 사람이 한 작품을 세상에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공을 들인 과정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당부했다.
"한국에선 공예가 미술에 포함되지 않은 거 같아요. 공예가 생활에서 쓰인다는 이유로 기능성이 강조가 돼 오브제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사실 이는 문화와 인식의 차이에요. 미국의 경우 우스개 소리지만 정성스럽게 만든 것에 돈을 낼 준비가 돼 있어요. 기본적으로 애슈빌 관광객들은 머그컵 하나를 사려면 70불~100불을 낼 수 있다고 하거든요. 누군가의 손에서 태어난 것이고 그 노력의 가치를 인정하겠다는 거죠. 물론 한국에서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공예의 가치와 존중에 대해 생각해볼 시점이 아닌가 싶어요."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