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구금 상태에서 가혹행위...증거능력 인정할 수 없어"
유가족 "사필귀정...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할 것"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통일혁명당(통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고(故) 박기래 선생이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지난 1974년 사형선고를 받은지 48년 만이다.
서울고법 형사12-1부(김길량 진현민 김형진 고법판사)는 27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고(故) 박기래 선생의 재심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적법한 영장 없이 보안사로 연행돼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음이 인정되고 그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볼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며 "피고인이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 한 진술은 임의성 없는(증거능력이 없는) 자백이라고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이어 "형사소송법상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집되지 않은 증거는 원칙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원심에서 유죄 판단의 근거로 사용한 증거물들은 피고인이 임의제출한 것으로 기록돼있지만 실제로는 피고인이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강제로 수집한 증거라고 봄이 타당하다"며 원심과 달리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국가의 존립이나 안보 및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었다거나 국가에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에 대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어 "선고가 많이 지연돼 정말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사진=뉴스핌DB] |
판결 직후 방청석에서는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취재진을 만난 유가족 측은 "방대한 기록을 면밀히 파악하고 현명한 판단으로 무죄 선고를 내려주신 재판부에 정말 감사드린다"며 "이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판결로서 사필귀정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이 땅에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후속조치가 신속하게 이뤄지길 바란다"며 그 일환으로서 검찰이 상고를 하지 않는 것, 형사보상 절차가 신속히 진행될 것,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 등을 제시했다.
박 선생은 지난 1974년 통일혁명당 재건을 기도한 간첩단으로 지목돼 보안사에 끌려간 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1983년 무기징역, 1990년 징역 20년으로 두 차례 감형됐다가 1991년 석가탄신일 특사로 가석방됐다. 출소 이후 통일운동가로 활동하던 박 선생은 지난 2012년 사망했다.
박 선생의 유족들은 지난 2018년 12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 2020년 5월에 재심개시가 결정됐다. 당시 법원은 재심을 결정하면서 군 보안사의 불법수사와 고문·가혹행위에 의한 허위진술 등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검찰이 재심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무기징역을 구형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편 통혁당 재건위 사건은 민주수호동지회를 결성해 활동했던 재일교포 진두현 씨와 박기래 선생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보안사령부로 강제연행해 고문한 사건이다.
jeongwon10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