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소음 피해…고소·고발전으로 갈등 격화하기도
조롱·모욕을 위한 집회에…인권위 긴급구제 조치도
"저격하고 모욕하는 문화가 집회 형태로 발현…사회적으로 접근해야"
[편집자]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집회에 이은 윤석열 대통령 자택 앞 '맞불집회'로 집회 문화가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호 비방과 공격, 맞불 형태의 집회 등은 표현의 자유를 무색케 할 만큼 정치적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20년 수요집회에서 본격화된 맞불집회는 이후 조국 사태와 검수완박법, 차별금지법 등 주요 법안 제정 과정 등에서 진보와 보수간 이념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뉴스핌은 최근 집회문화 변질 배경과 원인을 짚어보고 집회자유 보장 및 향후 바람직한 집시법 개정 방향 등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자 3회에 걸친 기획물을 보도한다.
[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 =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우리말샘'을 보면 맞불집회를 '반대편의 집회에 대응해 벌이는 집회'로 정의한다. 맞불집회 성격상 상대편의 집회에 대응하려는 목적이 크다 보니 집회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나 집회의 목적성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상대를 적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윤석열 대통령 자택 앞 맞불집회도 비슷한 양상이다. 진보 성향의 유튜브 채널 '서울의 소리'는 지난 14일부터 서울 서초구 윤 대통령 자택 앞에서 확성기와 스피커를 동원한 맞불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경남 양산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보수단체들이 고성과 욕설을 동반한 집회를 이어온 것에 반발하며 보복성으로 집회를 연 것이다.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는 "우리가 이런 시위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며 "양산에서 보수단체가 시위를 중단한다면 우리도 멈추겠다"고 말했다.
이에 반발해 보수 성향의 단체 '신자유연대'는 서울의소리 집회지로부터 불과 10여m 떨어진 인도에서 '맞맞불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서울의소리가 집회를 멈출 때까지 집회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 주변 소음 피해…고소·고발전으로 갈등 격화하기도
맞불집회의 양측은 모두 법에 명시된 집회의 자유를 주장한다. 문제는 맞불집회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 자택 앞 시위가 연일 이어지자 아파트 단지 앞에는 '조용한 시위를 부탁드립니다! 수험생들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집회 소음으로 아기가 잠을 못 자고 울고 있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렸다.
윤 대통령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집회 소음으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는 진정서로 제출할 계획이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14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자택 앞인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앞에서 진보 성향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가 문재인 전 대통령 양산 사저 일대 악성집회 대응 맞불집회를 연 가운데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2022.06.14 pangbin@newspim.com |
갈등이 고소·고발전으로 악화되는 사례도 있다. 지난 4~5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두고 열린 찬반 맞불집회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갈등이 빚어졌다. 특히 이재명 민주당 의원 지지자들이 모인 '밭갈이운동본부'가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수시로 검수완박 지지 집회를 열자 일부 보수 유튜버 등 단체는 이를 방해하는 맞불집회를 잇달아 열었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 간 욕설과 고성이 오가면서 일부 집회 참가자는 상대방을 모욕과 일반교통방해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소·고발하는 일도 발생했다.
밭갈이운동본부 관계자는 "집회라는 게 목적성이 있어야 하는데 무작정 반대하기 위해 스피커로 욕설을 틀어 놓고 갈등을 부추기더라"며 "상대방이 고소·고발한 것만 8건가량 돼 아직도 조사를 받고 있다"고 피해를 호소했다.
◆ 조롱·모욕을 위한 집회에…인권위 긴급구제 조치도
맞불집회가 조롱이나 모욕을 하는 데 이용된다는 지적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월 일본군 '위안군' 피해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정기 수요시위 방해에 대한 긴급구제 조치를 내렸다. 수요시위에 방해가 되지 않게 반대집회 측에 집회 시간과 장소를 달리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고했다.
만약 두 집회가 같은 장소 혹은 인접한 장소에서 이뤄지더라도 ▲반대 집회에서 지나친 스피커 소음으로 수요시위를 방해하는 행위 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한 수요시위 참가자에 대해 명예훼손이나 모욕 행위를 하지 않도록 현장에서 중지 권유 또는 경고하고 ▲피해자 측에서 처벌을 요구할 경우 적극적으로 제지하고 수사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인권위는 수요시위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우리 시민사회가 그 책임을 묻는 세계사적으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운동"이라며 "1992년 1월 이후 30년간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이뤄진 세계 최장 집회"라는 점을 들었다.
이 때문에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두 개의 집회가 같은 장소에서 이뤄지는 문제가 아니라 수요시위를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설명이다.
수요시위 주최 측인 정의기억연대 관계자는 "여전히 반대 단체들이 집회를 먼저 신고해 시위를 방해하고 있다"며 "상대방을 괴롭히려는 목적으로 시위를 하는 주체에 대해서는 제한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도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있지만 그 자유를 행하는 데 있어 욕설을 내뱉거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름을 적시하는 행위는 범죄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 "저격하고 모욕하는 문화가 집회 형태로 발현…사회적으로 접근해야"
랑희 경찰개혁네트워크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는 맞불집회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띤다고 지적한다.
그는 "과거에는 중복집회라 하면 노동자들이 회사나 대기업을 상대로 집회를 하려 할 때 기업 측에서 장소를 선점하기 위한 형태로, 이른바 '유령집회'라고 불리며 실제로 집회는 하지 않으면서 집회 장소를 빼앗으려는 수단"이었다며 "이에 반해 최근에는 적대하는 세력들이 상대편의 집회를 못 하게 하거나 방해하는 식의 의사 표현을 하기 위한 형태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상대방을 저격하고 적대한다거나 모욕하는 문화가 늘어난 것 같다"며 "이런 문화가 집회라는 형식을 띠고 노골적으로 증가한 것이지, 집회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유튜브, 정치권에서도 이 같은 현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의 맞불집회로 인한 갈등은 집회의 문제가 아니라 집회의 형식을 빌린 사회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heyj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