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운임제 일몰 앞둔 위기의 화물연대, 결국 파업
국토부 카드 없어…"'사흘 예고' 작년보다 피해 클 것"
수익 늘고 과로 줄었는데…"물류비 부담" 화주에 막혀
"시장 기능 잃어 정부 개입 불가피…플랫폼 시도필요"
[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안전운임제 연장과 품목 확대를 주장하며 화물연대가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해 '물류대란'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안전운임제 논의에 개입이 어렵다고 선을 긋고 있는 상황에서 법 개정을 논의할 국회는 원 구성부터 난항을 겪고 있어서다. 물류대란으로 이어질 경우 산업 전반에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시장 운임이라는 명목 아래 책임을 회피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의왕=뉴스핌] 윤창빈 기자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안전운임 일몰제 페지, 기름값 급등에 따른 생존권 보장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7일 오후 경기 의왕시 의왕ICD 제1터미널에 컨테이너들이 쌓여있다. 2022.06.07 pangbin@newspim.com |
◆ 사흘 예고했던 화물연대, 올해는 무기한 파업…"국토부 입장 내야" 일몰 앞두고 결국 실력 행사
8일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7일 0시부터 시작된 민주노총 화물연대 총파업 첫날엔 대규모 물류대란을 피했다. 국토교통부는 부산항을 비롯한 전국 12개 항만 모두 출입구 봉쇄 없이 정상 운영되고 있고 항만별로 수용 가능한 물량 대비 컨테이너가 보관된 비율을 나타내는 장치율도 오후 5시 기준 68.8%로 평시(65.8%)와 유사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정부가 이번 파업을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물류체인 마비의 여파로 벌어진 '요소수 대란'이 파업의 원인이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안전운임제 문제가 파업으로 이어졌다. 요소수는 중국에 묶였던 원료(요소)가 점차 풀리고 가격 급등이 해소되기 시작하며 어느정도 해결됐다.
지난해에는 사흘 간 예고 파업을 벌일 만큼 사안의 중대성도 상대적으로 무겁지 않았다. 과거 화물연대가 무기한 총파업으로 실력을 행사했던 것과 비교하면 온건한 투쟁이었다는 평가다. 반면 올 연말 안전운임제 일몰을 반년 앞두고 화물연대가 다시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피해 우려가 커졌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작년 파업과 비교해 파장이 클 수밖에 없는 방식"이라며 "파업이 얼마나 지속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장기화할수록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올 연말 안전운임제 일몰을 반년 앞두고 파업이 벌어지며 피해 우려가 커진다. 특히 화물연대는 국토부가 정부 차원에서 안전운임제 연장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국토부는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첨예한 문제에 대해 개입이 어렵다며 대응을 최소화하고 있어서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국토부는 사태를 진화하겠다며 화주, 운송사, 화물차주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TF)를 구성하고 안전운임제 일몰 연장 여부를 논의한다는 방침이지만 화물연대는 정부가 입장을 먼저 정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일몰 연장 여부의 열쇠를 쥔 국회 역시 논의 테이블이 열리지 않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2월 안전운임 성과 평가 연구용역 결과를 받아보고도 4개월 넘게 국회 보고조차 못했다. 대선과 지방선거 국면이 이어진 데 이어 최근에는 국회 원 구성에 난항을 겪고 있어 일정을 잡을 간사 접촉도 어렵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결국 안전운임제 일몰을 반년여 앞두고 위기에 몰린 화물연대가 실력 행사에 나선 셈이다.
◆ 과로·과속 순기능 인정, 화주 반대에 막혀…"주선사 등 사라지고 플랫폼 전환할 시점"
전문가들은 안전운임제의 순기능을 고려할 때 연장할 필요가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연구용역 결과 저운임에 시달리던 차주의 수익이 늘고 과로는 줄었다는 점은 국토부도 인정한다. '과로' '과속' '과적'을 방지해 교통사고 사망 비중이 높은 화물차 안전문제와 차주들의 생계 부담을 동시에 해결하는 대안이라는 점은 어느정도 확인됐다는 취지다.
하지만 한국무역협회를 비롯한 화주단체들의 반대가 문제로 꼽힌다. 물류비 부담 가중으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며 안전운임제 일몰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CJ대한통운, LX판토스, 현대글로벌로지스, HMM 등 굴지의 운수사와 대기업의 지난해 실적이 고공행진한 점을 감안할 때 '엄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업이익률이 20%에 육박하는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이익률을 달성하는 기업이 안전운임제로 인한 육상물류 비용 부담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대로 부담이 적은 편이라면 원가 수준을 반영하는 게 어렵다는 건 엄살이라는 논리다. 반면 고유가 부담을 떠안은 차주들은 차량 할부금을 못내 허덕이고 있다는 게 화물연대의 주장이다.
이렇듯 화주들의 반대를 넘어 안전운임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정책운임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은 박정희 정부부터 1990년대까지 컨테이너 운임에 한해 인가제와 신고제를 운영해왔다. 당시에는 지금과 반대로 수출기업들의 물류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운임 상한을 정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동시에 화물차 공급을 늘리기 위해 수십대 차량 보유를 의무로 한 운송사업면허 기준을 낮추면서 운임이 추락했다. 이후 2003년 화물연대의 운송거부를 계기로 번호판 발급을 중단하며 공급을 멈췄다. 하지만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시장 불균형은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시장 기능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취지다.
궁극적으로는 화주, 운송사, 주선사, 지입사, 용차사, 차주로 이어지는 다단계(지입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포스코의 물류를 총괄하는 자회사 포스코플로우가 물류 생태계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시도가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구교훈 배화여대 국제무역물류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주선사를 비롯해 중간 단계 회사들의 역할이 있었지만 플랫폼 시대가 도래한 지금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영역이 있다"며 "네이버 등 대표 플랫폼사들이 중간 수수료로 수익모델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화주사들이 자발적으로 차주와 연결되는 모델을 발굴하고 2자물류 회사들이 3자물류로 영역을 확장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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