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내부, '직선제' 요구 시위 속 "미래 희망 없다" 지적
中 본토 "新 선거제도, 홍콩 장기 발전 수호"
[서울=뉴스핌] 홍우리 기자 = 8일 치러진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스트롱맨'으로 불리는 강경 친중 인사 존 리(중국명 리자차오) 전 정무부총리가 당선됐다. 1461명의 선거인단 중 1428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1416표, 99.2%의 지지율을 얻었다.
리 후보는 당선 연설에서 "법치주의를 견지하고 홍콩을 대내외적 의협으로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리 후보는 오는 7월 1일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일에 정식으로 취임하게 된다.
[신화사=뉴스핌 특약] 8일 치러진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스트롱맨'으로 불리는 강경 친중 인사 존 리(중국명 리자차오·리자차오) 전 정무부총리가 당선됐다. |
◆ 홍콩 시민 관심 최저...또 다른 '반정부 항쟁' 가능성도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판공실은 존 리 후보 당선에 대해 "존 리 후보가 높은 득표율로 행정장관에 당선된 것은 홍콩 사회의 높은 공감과 긍정을 반영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보안 장관 출신에 정무부총리를 역임한 인물로 경험이 풍부하고 실행력이 강하다"며 "여론은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과정에서 확고한 태도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 중"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와 리 후보에 대한 중국 당국의 이 같은 평가는 홍콩 내 여론은 물론 외부의 시선과도 상반된 것이다.
먼저 이번 선거에 대한 관심은 역대급으로 저조했다는 분석이다. 과거 2007년과 2012년 행정장관 선거 당시에는 민주 진영 후보가 출마하거나 친중 진영에서도 후보가 다수 나오면서 뜨거운 관심 속에 선거가 치러졌지만 이번 선거에는 리 후보가 단독 출마했다.
중국이 홍콩 선거제도를 '애국자'만 출마할 수 있도록 개편한 뒤 실시된 첫 행정장관 선거인 데다가 지난해 9월 꾸려진 선거위원회마저 친중 진영이 장악하면서 다른 후보자가 나오지 않았다. 홍콩 명보(明報)는 선거 유세 기간 구글 내 '존 리' 검색량이 최고 33% 기록에 그쳤고 선거 직전에는 6%대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홍콩 내부에서는 선거 결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우세하다. 역대 최고 득표율은 홍콩 선거위원회가 베이징의 '눈치'를 본 결과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홍콩 이공대 사회정책연구센터 정킴화(鐘劍華) 주임은 "높은 득표율은 베이징이 선거를 잘 '통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높은 득표율이 자신감을 주었다는 리 당선인의 발언에 대해) 이런 선거로 자신감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은 바보거나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지지표는 (존 리)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베이징이 그에게 준 것"이라며 "무엇이 그로 하여금 더욱 자신감을 갖게 하는가? 스스로 능력이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정 주임은 이어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서는 앞으로 사회를 효과적으로 이끌기 매우 힘들 것이다. 특히 경제·금융·무역·복지·민생·부동산·의료·노동·교육 등 경험이 전무한 그"라며 "계속해서 시민 사회를 억압한다면 홍콩 상황은 계속해서 어려울 것이고 심지어는 인재와 자금 이탈 현상까지 심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 주임은 심지어 리 당선인 취임 후의 홍콩에서 '희망은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내놨다. 그는 "존 리는 홍콩에 어떤 희망도 주지 못할 것이다. 환상조차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며 홍콩인들은 그에게 어떤 희망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홍콩침례대학교 정치국제관계학 황웨이궈(黃偉國) 전 교수는 "존 리의 행정 우위는 공안과 경찰 권한을 남용하고 백색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라며 "중앙이 불만을 갖거나 중국 본토 정국에 극단적 변화가 생길 경우 대 홍콩 정책에도 중대 변화가 생기면서 중도에 인물이 교체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황 교수는 특히 존 리 임기 내 '제3차 반(反)정부 시위가 일어난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그는 "주요 민주주의 운동가들이 이미 흩어지고 투옥됐지만 정치적 탄압이나 체제 부패는 더욱 심각해지고 경제 위기 역시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며 "항쟁의 토양이 젊고 홍콩 본토인 중심이던 틀을 초월해 사회 계층·연령을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홍콩에서는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선거 당일인 8일 오전 범민주 진영의 사회민주연선(사민련) 회원들이 '소그룹 선거'라는 구호를 외치며 선거가 열리는 홍콩 컨벤션&전시 센터로 전진하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천바오잉(陳寶瑩) 사민련 의장은 "단일 후보가 출마한 이번 선거는 홍콩에 서러운 일이자 대퇴보한 사건"이라며 "시위를 한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그렇다고 쥐죽은 듯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적당한 때에 누군가는 나와 시민 사회의 의견을 나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만 행정원 공식 기구로 양안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대륙위원회는 홍콩 선거 결과 확정 뒤 성명을 발표하고 "차기 홍콩 행정장관은 민의(民意)를 경청하고 홍콩인들이 민주적 권리를 추구하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며 "홍콩의 자유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촉구했다.
[신화사=뉴스핌 특약] 홍콩 행정장관 선거 투표 현장 |
◆ 中 당국 "新 선거 제도, 홍콩 상황에 맞는 좋은 제도"
중국 본토에서는 리 후보 '띄우기'가 한창이다.
홍콩 행정장관 선거 결과가 확정된 직후 중국 당국은 당선인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다. 국무원 홍콩·마카오 판공실은 8일 홈페이지를 통해 "관심을 모았던 홍콩특별행정구 제6대 행정장관 선거가 무사히 치러졌다"며 "존 리 후보의 당선을 축하한다"고 밝혔다.
판공실은 "홍콩의 새로운 선거 제도가 성공적으로 실행됐다. 새로운 선거제도는 일국양제(一國兩制)에 부합하고 홍콩 상황에 맞는 우수한 제도임이 증명됐다"면서 "이번 선거는 혼란스러웠던 홍콩이 안정을 찾아가는 중대 전환 이후 치러진 첫 번째 선거로서 그 의의가 중대하고 각 분야의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리 후보 당선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애국자가 통치하는 홍콩이 실현됐다"고 전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9일자 낸 칼럼에서 "이번 선거는 홍콩특별행정구 선거제도 완비 후 치러진 첫 번째 행정장관 선거"라며 "'애국자가 홍콩을 통치한다'는 원칙을 전면 실현한 새로운 실천으로서 홍콩의 장기적인 번영과 안정을 수호하는 데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신화사(新華社)는 홍콩 선거를 둘러싼 외부의 우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매체는 8일 밤께 사설을 통해 "미국 등 서방의 주류 매체들은 이번 선거에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가지며 부정적인 보도를 통해 이번 선거를 공격하고 먹칠을 했다. 또한 행정장관 인선의 과거 경력을 고의로 왜곡했다"며 "선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구미의 일부 정치인들이 튀어나와 시비를 전도하고 이목을 현혹시킴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분개하게 했다"고 비난했다.
매체는 그러면서 "미국 등 서방이 이토록 홍콩 선거에 먹칠을 하는 것은 '홍콩 카드'로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고자 하는 망상 때문"이라며 "먹칠을 하고 폄훼하는 것은 그들이 늘 해왔던 일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리 후보는 1977년 경찰에 입문해 2017년 보안장관에 임명됐다. 2019년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서 중국 정부의 눈에 들어 지난해 6월 중국 정부에 의해 정무부총리로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