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옴메 이것이 뭣이당가. 이런 거 하는 사람이 제일 싫은디!!! 그게 내 손주였네. 아이고 못 살겠다."
왼쪽 팔에 꽃 무늬 문신을 새긴 전기자가 할머니에게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강렬한 샤우팅으로 혼나고 있다. 사진을 찍는다고 하자 다소곳하게 자세를 고쳐 앉으시고 혼내셨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8.23 kh10890@newspim.com |
단전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분노를 곽일순(92) 여사는 참을 수 없었다. 인생을 살아보니 사람은 비슷한 것 같아도 다 다르다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던 할머니는 문신을 하고 온 기자의 팔을 보고는 이것만큼은 다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항상 우리 손주 왔냐고 반겨주던 할머니의 모습은 어느새 찌푸린 모습이었다. 그래도 나를 반겨주는 건 촉새(반려견 이름) 뿐이었다. 내 문신한 팔을 보기 전까진.
반려견 촉새가 문신을 보자마자 보인 격한 반응. 제일 좋아하는 소고기로 유혹해봐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평소엔 먹기 바빴으면서.[사진=전경훈 기자] 2021.08.23 kh10890@newspim.com |
평소라면 봉지에서 소고기를 꺼내는 바스락 소리에도 뛰어왔을 녀석이 손에 든 고기를 보고도 경계에 들어갔다. "많이 본 얼굴인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아저씨 같기도 하고 일단 먹고 볼까"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으르렁 짖고는 기자의 손에 쥐어진 고기를 쟁취했다.
◆ '유교 보이'의 선입견을 깼다
30년 인생 동안 문신(타투)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던 기자가 호기심을 가진 건 반쪽짜리 눈썹 때문이었다.
중간부터 뚝 끊긴 반쪽짜리 눈썹은 모나리자를 연상케 했다. 늘 사진을 찍을 때면 앞머리로 눈썹을 가려야 했다. 어쩌다 앞머리를 위로 올릴 때면 있어야 할 곳에 비어있는 초라한 눈썹에 새 생명을 심어줄까 시술을 고민하곤 했다.
타투 스티커만 봐도 무섭다면서 제일 열심히 붙여주고 있는 전기자의 어머니 [사진=전경훈 기자] 2021.08.23 kh10890@newspim.com |
가격은 얼마나 나오는지, 혹여나 짱구 눈썹으로 오히려 망치지는 않을까 시술을 잘하는 곳을 찾아보던 중 흉터가 난 곳에 타투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눈썹 문신 외에는 그다지 유쾌한 시선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유교 보이'의 선입견을 깨부수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그저 콤플렉스인 부위를 가리기 위해 타투를 했을 뿐이었다. 기자가 반쪽짜리 눈썹을 가리고 싶었던 것처럼.
물론 흉터가 있는 사람 모두가 타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불순한 이유로 타투를 하는 사람들도 많은 걸 안다. 그래도 이들이 평소 어떤 시선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해보고자 했다.
그렇다고 진짜 타투를 할 용기는 없고 했다가 지우는 것도 비용과 고통이 만만치가 않다고 했다. 그래서 타투 스티커로나마 체험해보기로 했다. 가격도 1800원이라 저렴했다.
◆ '용', '꽃' 무늬 타투를 골랐다
'용' 무늬로 타투 하고 싶었는데 붙이는 데 실패했다. 어릴 때 껌 판박이를 얼마나 긁어봤는데 그 경력으로도 혼자 붙이는 건 쉽지 않았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8.23 kh10890@newspim.com |
기왕 하는 거 눈에 확 튀는 타투를 해보려고 용과 꽃 무늬 타투를 골랐다. 방법은 간단했다. 스티커를 물에 불려서 팔에 붙이기만 하면 됐다. 그러고는 어릴 적 껌 판박이를 붙이던 것처럼 살살 문지르고 떼면 몸에 착 달라붙는 방식이었다.
한쪽에는 용, 남은 한쪽 팔에는 꽃 무늬 타투를 새겨 넣고 다니려고 했는데 용 무늬 타투는 물에 덜 불린 탓에 부착에 실패했다. 용 얼굴이 팔에 안 붙고 스티커에 그대로 남아있는 탓에 오히려 우스꽝스러워져서 때밀이로 없애버리고 꽃 무늬 타투로만 체험했다.
슬리퍼 차림의 편한 운동복과 일상복 두 가지 복장을 번갈아가며 하루를 보냈다. 복장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질지 궁금해서였다.
밥 먹고 핸드폰 보는 조폭 형님이 아닌 전기자 [사진=전경훈 기자] 2021.08.23 kh10890@newspim.com |
타투를 하고 처음으로 향한 곳은 식당이었다. 심장이 괜히 쿵쿵거렸다. 직원은 서빙을 할 뿐이었지만 괜히 흉측스럽게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시선에 익숙해지자 공원으로 향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걷는 곳마다 모세의 기적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걸었다.
나쁜 사람 아니라고 씨익 웃어보려고 해도 마스크 때문에 표정을 읽을 수도 없어선지 얼굴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다만 미세하게 들리는 수군거림은 느껴졌다.
타투 한 모든 사람이 운전 중 한쪽 팔을 내미는 건 아니지만 팔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타투 한 사람들이라 따라해봤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8.23 kh10890@newspim.com |
일상복 차림에선 어떤 반응일지 궁금했다.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돌아다닐 때와는 달리 카메라까지 들고 있는 기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폭처럼 바라보는 시선도 아녔고, 그저 지나가는 시민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카페도 가봤다. 복도 쪽 자리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가면 바로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처음엔 시선이 부끄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예술가로 보여서 쳐다보는 건가 위안을 삼았다.
카메라와 노트북을 펼쳐 놓으니 예술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8.23 kh10890@newspim.com |
◆ 눈썹 문신 1300만명 시대...타투는 여전히 불법
2018년 문신염료 제조사 '더스탠다드' 발표 자료에 따르면 약 1300만명이 눈썹, 입술 등 반영구 화장 또는 타투 시술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국민 4명 당 1명이 타투를 한 셈이다.
문제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투 대부분이 불법 시술이라는 점이다. 눈썹 문신은 합법이고, 팔과 등에 하는 타투는 불법이라는 말이다.
타투의 합법화 논란은 30여 년째 논쟁이 되고 있다. 지난 1992년 대법원은 타투 시술을 '의료 행위'로 판단, 의사 면허가 없는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을 사실상 불법화했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12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에서 참가자들이 손 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캠페인에는 타투이스트들이 참여해 타투를 할, 받을, 작업할 권리와 자유 보장을 촉구했고 타투이스트를 일반직업화 할 것을 호소했다. 2020.07.29 alwaysame@newspim.com |
이 때문에 길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타투 작업실은 대부분 불법인 것이다. 문제는 타투이스트들이 '부정 의료행위'를 한 죄로 법정에 서기도 한다는 거다.
올해 4월에만 타투이스트 2명이 각각 징역 1년 6개월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또 브래드 피트와 영화 미나리의 주인공 스티븐 연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먼저 찾는 세계적인 타투이스트인 김도윤 씨도 재판에 넘겨졌다.
김씨가 유튜브에서 한 연예인에게 타투를 그리는 모습을 본 네티즌이 불법 행위를 한다며 의료법 위반으로 신고를 당했다. 이에 검찰은 김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구형했다.
이 같은 문제들이 이어지자 최근에는 류호정 국회의원이 직접 타투 스티커를 등에 부착하고 타투 입법 제정에 나섰다. 홍준표 의원, 안철수 대표 등 대권주자들도 눈썹 문신을 하고 있는 만큼 타투업을 합법화 하자는 것이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타투를 한 등을 내보이는 드레스 시위를 한 것에 대해 "타투이스트 생존을 위해"라는 이유를 밝혔다.[사진=류호정 의원실] 2021.08.23 kh10890@newspim.com |
하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문신 합법화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화공 약품을 피부 안에 주입하는 것은 위험하며, 타투를 허용하면 무분별한 타투가 많아질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 편견 없이 바라봐 줬으면
의료계와 타투이스트들의 합법화 논란보다 가장 시급한 건 타투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평소와 달랐던 건 팔에 무늬 하나 그려졌을 뿐인데 거부감이 느껴지는 시선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타투를 바라보는 시선은 방송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SNS 등을 통해 타투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연예인도 방송에 출연할 때는 테이프, 파스 등으로 가린다.
잡아먹으려는 것 아니고 놀아주고 있는 모습이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8.23 kh10890@newspim.com |
미처 가리지 못한 타투는 담배나 흉기처럼 모자이크 처리된다.
이는 방송 심의 규정상 타투 노출이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이라는 점 때문이다.
때밀이 타월로 빡빡 문질러서 지우다 보니 결국 피났다. 나중에야 알게 된 거지만 클렌징 오일 등으로 지우면 잘 없어진다고 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8.23 kh10890@newspim.com |
에필로그(epilogue). 며칠 더 체험을 하려고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워서 결국 이날 저녁 하루 만에 타투를 때밀이 타월로 빡빡 문질러서 지웠다.
합법화 논란 이전에 다양성이 존중되는 현대 사회에서 타투를 한 이들을 마냥 조폭으로 보는 편견이 먼저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타투 스티커도 지우는 것이 힘든데 진짜 타투를 하려는 사람들은 혹시나 디자인이 마음에 안들어서, 다른 이유로 지워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으니 신중하게 했으면 했다.
kh1089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