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금융투자업계 관계자와 식사를 하던 도중 "기자님은 퇴직연금 어디에 주로 투자하고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간 퇴직연금과 관련한 이런 저런 기사를 많이 썼지만, 부끄럽게도 개인퇴직연금 계좌를 꼼꼼히 점검해 보지는 않은 터였다. "아직 고민 중입니다"라며 얼버무린 뒤 나중에 계좌를 열어봤다. 수익률은 고작 1.3% 수준. 퇴직연금 대부분이 원금보장형 상품에 들어가 있는 탓이었다. 다행히 DC형 퇴직연금에 가입된 덕분에 부랴부랴 여러 펀드에 분산해 투자하도록 은행 측에 운용지시를 내렸다. 더 빨리 퇴직연금을 들여다봤다면 좋았을 것을 후회했다.
[서울=뉴스핌] 임성봉 금융증권부 기자 |
근로자가 사실상 방치해두고 있는 퇴직연금을 알아서 운용하도록 하는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 문제를 두고 금융투자업계가 시끄럽다. 금투업계는 원금보장형 상품을 제외한 디폴트옵션으로 잠자는 퇴직연금을 깨워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반면 은행과 보험업계 등이 디폴트옵션에 원금보장형 상품을 포함해야 한다고 맞서면서 정치권에서도 지루한 공방만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월급쟁이의 노후를 지탱해야 할 퇴직연금은 사실상 수익률 제자리걸음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4월 발표한 '2020년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1.68%로 집계됐다. 반면 비교적 적극적인 투자 상품에 들어간 실적 배당형 퇴직연금은 수익률 10.67%를 기록했다. 원리금보장형의 경우, 수익률이 전년보다 0.09%p 줄어든 반면 실적 배당형은 4.29% 늘었다.
문제는 DC형 퇴직연금 적립금의 83%가 원리금 보장상품에 가입돼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기준 당장 1년 간 원리금보장형과 실적 배당형의 수익률 차이가 무려 9%p 수준이다. 10년 또는 20년 뒤 실제 퇴직 시기를 맞이했을 때 수익률 차이는 이보다 더 벌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퇴직연금은 주택 구매 등의 이유가 아닌 한 통상 정년 때까지 들고 가는 목돈이다. 장기투자에 적합한 자금이라는 뜻이다. 전설적인 투자의 대가 켄 피셔는 자신의 저서 '주식시장의 17가지 미신'을 통해 30년간 주식에 투자하면 연평균 수익률은 무려 11.2%, 표준편차는 1.4%라는 사실을 실증했다. 이는 30년간 투자했을 경우 대부분의 경우 10% 이상의 수익을 얻는다는 의미다.
대부분의 노후 연금은 3개로 이뤄진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사적연금. 이 가운데 국민연금은 근로자라면 누구나 가입하고 있지만, 국가에서 전문가들에게 운용을 맡기니 개인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사적연금은 비교적 여유가 있는 근로자들만 가입할 수 있다.
남은 건 퇴직연금이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든 없든 근로자 대부분이 가입해 있지만 국가에서 운용해주지는 않는다. 쉽게 말해 방치된 돈이다. 만약 근로자가 퇴직연금 운용에 손을 놓고 있다면 자동으로 이를 '적격상품'에 투자해 퇴직금을 불려줄 여지가 생긴다. 투자 사전에 100%는 없는 탓에 여지가 생긴다고 표현했지만, 적어도 원리금보장형보다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다. 발 빠른 사람은 퇴직연금을 굴리면서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퇴직연금이 1%대 수익률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고생 끝에 퇴직연금을 받는 그날 이 중 통장 계좌를 열었을 때 웃는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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