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학준 기자 = TV에도 출연했던 유명인 A씨 측으로부터 고소를 진행할 예정인데 기사화가 가능하겠냐는 문의를 받은 적이 있다. 평범한 사건이었지만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고소장을 경찰이 아닌 검찰에 접수하겠다는 대목이었다.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해도 결국 경찰로 이첩돼 경찰이 수사할 사건이었다. 뻔히 알면서도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자 "경찰을 믿지 못하겠다. 상징적인 면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유사 사건을 다수 수임했던 A씨 변호사 경험담도 들려줬다. 고소장을 받아본 경찰이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수사가 필요해 보이자 "처벌하기가 사실상 힘들다"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결국 변호사는 고소장을 수정했다. '귀찮고 힘든 수사'가 요구되는 부분은 아예 고소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알려져서 좋을 것 없는 송사를 기사로 써달라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언론을 통해 사건이 보도되면 경찰이 조금이라도 더 신경 써서 수사를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 아니었을까.
이학준 사회문화부 기자 |
최근 비슷한 전략이 맞아 떨어진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 숨진 채 발견된 고(故) 손정민 씨 사건이다.
손씨는 지난달 24일 오후부터 반포한강공원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 실종됐다. 경찰이 손씨를 찾지 못하자 가족들은 같은달 28일부터 인터넷 블로그와 전단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다.
언론도 손씨 사건 알리기에 합세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고, 시민들 제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손씨는 실종 엿새 만에 경찰이 아닌 민간 구조사 차종욱 씨에게 발견됐다.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 서초경찰서는 여론을 의식했는지 휴일에도 손씨 친구 휴대전화 수색에 나섰고, 실종 장소 인근 폐쇄회로(CC)TV 54개와 154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가족은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경찰에 보완지시를 내려달라는 진정서를 지난 4일 검찰에 제출했다. 경찰이 손씨 친구 휴대전화를 일주일이 지나서야 찾기 시작했고, 손씨 친구 주변인에 대한 기록을 살피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민들도 경찰을 믿지 못하겠다며 언론과 유가족이 공개한 자료나 정황 등을 토대로 추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각종 추측과 의혹들이 난무했고, 손씨 친구 집안에 유력인사가 있다는 유언비어부터 손씨 친구를 피의자로 전환하라는 '수사 지시'까지 나왔다.
경찰을 신뢰하지 못하고 음모론이 난무하는 상황에 화가 났는지 한 경찰관은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뭐 이리 대한민국에 '방구석 코난'들이 많은지 (모르겠다)"며 "언론에 나오는 게 다 진실일 것 같냐"고 비꼬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경찰관이 해당 글에서 "차라리 언론에 안 타면 사건이 묵히기 쉽다"고 썼다는 점이다. 힘 없는 일반 시민들 사건이나 대중적 관심도가 떨어지는 사건은 언제든 방치될 수 있다는 세간의 의심이 사실이라고 확인해준 셈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손씨 사건을 두고 달린 댓글 하나가 있다. 네이버 아이디 'hong***'을 쓰는 네티즌이 작성한 것으로 지난 18일 기준 추천 422개를 받을 만큼 공감을 얻고 있다.
"경찰의 사건 처리에 대해 평소 국민의 신망이 두터웠다면 애초에 공론화될 필요조차 없었을 겁니다. 음모론이 나올 정도로 국민의 뿌리 깊은 불신을 받고 있다는 현실부터 겸허하게 되돌아보셔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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