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재완 기자 = "당헌을 고쳐 4·7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한 것 자체가 문제죠. 당헌은 그야말로 당의 기둥이에요. 기둥을 잘못 건드렸으니 당이 무너지는게 당연하죠."
며칠 전 식사를 함께 한 더불어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재보선 참패 요인을 이같이 분석했다. 듣고 있던 기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식사 내내 민주당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의 하면 불륜)'식 사고방식에 날을 세웠다. 본인은 애초 후보 공천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며 당헌 개정을 강행한 전임 지도부에 책임을 돌렸다.
대화 주제가 무료해질 즈음 화제를 전환했다. 최근 민주당에선 차기 대선후보 경선일정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통상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유력후보 측은 경선을 예정대로 치르자는 입장인 반면, 지지율을 끌어올릴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 주자들은 경선 연기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 의원은 'SK계(정세균계)'로 분류된다. 그에게 경선연기론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경선요? 당연히 연기해야죠."
"대선후보를 너무 일찍 선출하면 후보가 지친다" "코로나19 집단면역이 형성될 때까지 후보 선출을 늦춰야 한다. 그 사이 손실보상 소급적용 등 민생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 "대선 6개월 전 후보를 선출한 전례가 없다"는 등의 이유가 따라붙었다.
민주당 당헌 88조는 대선 후보 선출일을 선거일 전 180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다만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 당무위원회 의결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가 달려있다. 어디까지나 예외조항이다. 이 조항에 명시된 '상당한 사유'는 불가항력적 상황일 터다. 경선룰을 바꾸지 않고선 대선을 치르기 어려울 정도의 중대한 상황으로 해석된다. "대선후보가 피곤해져서" "후보를 일찍 선출한 전례가 없어서" 등을 상당한 사유로 받아들일 유권자가 몇이나 될까. 경선룰을 바꾸면 당헌 논란이 재점화될 수 밖에 없다.
불과 3분 전 '기둥 수리'의 위험성에 대해 진지한 열변을 토했던 그였다. 기자가 물었다. "당의 기둥을 손보면 위험하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경선룰을 바꾸는 것은 당헌이 아니고 당규이지 않나요? 기둥까진 아닌데…."
일단 팩트부터 틀렸다. 경선룰은 당규가 아닌 당헌에 명시돼 있다. '당헌은 안 되지만, 당규는 고쳐도 된다'는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이 상황이 낯설지 않다. 지난해 민주당은 재보선 후보 공천을 위해 당헌을 고쳤다. 개정 전 당헌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중대한 잘못으로 직을 상실했을 경우 재보선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중대한 잘못'의 범위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민주당은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했다.
선거에서 유권자들로부터 직접 심판 받는 것이 공당의 책임이라는 이유를 들어 결국 후보를 냈다. 이 의원의 지적대로 당의 기둥에 손을 댔고, 돌아온 것은 민심의 역풍이었다.
재보선이 끝난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이젠 정치권도 학습이 돼있다. 재보선 패인이라는 입력값을 넣으면 내로남불이란 출력값이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내로남불 태도를 성찰하겠다고 한다. 그러고선 이렇게 물어본다. '그런데 로맨스와 불륜의 차이가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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