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요청에 마약 구입·사진 전송 뒤 폐기
"수사기관 지시로 인식…법 위반 고의 없어"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외국인들의 마약 거래를 경찰에 제보했다가 관련 증거를 확보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마약을 구입한 제보자에게 마약류 매매에 따른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윤강열 부장판사)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카자흐스탄 국적 한인 교포 A(40)씨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12일 밝혔다.
경찰로고 [사진=뉴스핌DB] |
A씨는 지난 2018년 10월 19일 B씨에게 현금 5만원을 주고 신종 합성 대마인 일명 '스파이스'를 구입해 향정신성의약품을 매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피고인이 타인의 범행에 관한 증거 수집 목적으로 마약 매매행위를 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의 지시나 위임을 받지 않고 매매행위에 나아간 이상 마약류 매매 범행의 범의가 인정된다"며 A씨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A씨는 이에 "수사기관 요청으로 마약류 매매 증거를 확보해 제출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스파이스를 구입해 사진을 촬영한 다음 폐기했으므로 마약류관리법 위반죄의 고의가 없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앞서 A씨는 경찰에 주거지 인근 외국인들의 마약 거래 관련 제보를 했으나 담당 경찰관은 러시아어 통역인을 통해 '제보만으로는 명확하게 조사할 수 없으니 사진 등 증거자료를 확보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A씨는 스파이스 사진을 찍어 담당 경찰관에게 전송한 뒤 화장실 변기에 버렸고 경찰은 A씨의 제보와 수사협조를 토대로 8명의 마약사범을 구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항소심은 A씨에게 마약류 매매에 관한 고의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 판단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통역인을 통해 담당 경찰관으로부터 마약류 거래 증거자료 확보를 요청받았을 뿐 아니라 스파이스 매수 직전 마약류 매수 예정 사실을 통역인에게 보고하기까지 했다"며 "피고인으로서는 수사기관의 구체적인 위임과 지시를 받아 스파이스를 매수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의 소변과 모발에서 메트암페타민(필로폰), MDMA(엑스터시) 성분이 검출되지도 않았다"며 "만일 피고인 자신이 투약하는 등 개인적인 목적으로 스파이스를 매수한 것이라면 매수 직전 통역인에게 보고하거나 매수 직후 사진을 촬영해 경찰관에게 전송할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