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 딸 호텔 욕실서 질식사·익사로 숨지게 한 혐의
"피해자가 욕조서 미끄러져 쓰러졌을 가능성도 있어"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동거녀가 미워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친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중국인 남성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윤강열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중국 국적 장모(41) 씨에게 징역 2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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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2020.08.24 pangbin@newspim.com |
장 씨는 지난해 8월 서울 한 호텔 객실 욕실에서 당시 7살인 자신의 딸 A양의 목을 조르면서 욕조 물 안으로 눌러 경부압박 질식사 및 익사로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장 씨는 지난 2017년 전 부인과 이혼한 뒤 B(37)씨와 중국에서 동거를 시작했고 주말에는 A양과 여행을 가는 등 함께 시간을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B씨는 장 씨가 딸을 만난 후 자신과의 사이가 안 좋아진다고 생각했고 장 씨의 아이를 두 번 유산하자 그 이유도 장 씨의 딸 때문이라고 여겨 A양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검찰에 따르면 장 씨는 B씨가 극단적 선택 시도까지 하자 B씨를 위해 딸을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한중교류 무용공연에 참여할 예정이던 A양과 함께 지난해 8월 한국에 입국해 범행을 저질렀다.
장 씨는 재판 과정에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여자친구 B씨를 진정시키기 위해 호응하는 척했던 것이지 실제 딸을 살해하기로 공모한 사실이 없고 살해할 동기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장 씨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B씨에게 '오늘 밤 필히 성공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욕조에서 살해하는 방안에 대해 B씨와 의논한 사실 등을 볼 때 살해 공모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이 사건 부검을 담당한 법의관은 익사의 가능성이 고려된다고 하면서 타인의 개입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고 법의학자들은 피해자 사인에 대해 '익사에 더해 경부압박으로 인한 질식사'라는 일치한 부검 소견을 냈다"며 "피고인이 피해자를 사망하게 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항소심은 '형사재판에서 부검의 소견에 주로 의지해 유죄 인정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능한 사망원인을 모두 배제하기 위한 치밀한 논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며 이같은 원심 판단을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망 원인을 피고인이 손으로 피해자의 목을 조른 행위, 즉 액사(縊死)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단순 경부압박으로 인한 질식사 소견이 관찰되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액사에서만 특유하게 발생되는 소견이 확인돼야 한다"며 "피해자에게 나타난 점출혈은 심폐소생술로 인해 나타났을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피해자가 평소 욕조 안에서 놀면서 씻는 것을 좋아했던 점, 욕조 크기와 물의 깊이 및 피해자 키와 몸무게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욕조 안에서 미끄러져 쓰러지면서 욕조 물에 잠기고 목이 접혀 경정맥이 막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객실로 들어간 직후 의식이 없는 피해자를 발견하고 곧바로 호텔 프론트에 전화한 것으로 보이는 점 △ 현장 출동 119 구급대원들이 '피고인은 사고로 딸을 잃은 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였다'고 진술한 점 △피고인이 B씨에게 '오늘 필히 성공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직후 '이런 이야기 하지 말자', '우리 진정하자' 등 메시지를 발송한 점 등을 근거로 장 씨가 딸을 살해하기로 공모했거나 살해할 동기가 있었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다고 봤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