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행 출시 원유선물 연계 파생금융상품 손실 눈덩이
중국 주요 은행 유사 원유 투자 상품 출시,추가 피해 예상
[서울=뉴스핌] 강소영 기자=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 출현에 중국 금융 재테크 시장의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저점매수 투자' 개념으로 섣불리 원유 선물 상품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투자 실패 충격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단체 소송 및 항의가 이어지는 등 이번 사태가 사회 문제로 확대되자 중국 금융 감독 당국이 개입에 나섰다.
최근 문제로 떠오른 원유 선물 투자 파생상품은 중국 4대 국유 상업은행 중 한 곳인 중국은행이 2018년 1월 출시한 '위안유바오(原油寶)'이다. 중국은행이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설계한 '재테크 상품'으로 중국 국내외 원유 선물 거래 가격과 연계된 것이 특징이다. 마이너스 거래가를 기록한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등 국제 원유의 비중이 높다.
◆ 원물선유 재테크, 개인 투자자 총손실 최소 1조 5000억원
'위안유바오' 사태의 시작은 20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WTI 가격이 배럴당 -37.63달러를 기록하면서다. 21일 중국은행은 '위안유바오' 투자자들에게 추가 증거금 납입(마진콜)을 요구하며 관련 계좌 자금을 동결했다.
'위안유바오'에 투자한 6만 여명의 투자자들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투자 손실률이 300%에 달하고, 총 손실 규모는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90억 위안(약 1조 5600만원)을 넘어섰다. 손실 규모가 최고 300억 위안(약 5조 2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투자자들은 퇴직자, 교사, 대학원생, 직장인 등 고액 자산가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 대부분이다.
'위안유바오'는 개인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는 ETF 혹은 ETN 상품은 아니다. 원유 선물 거래를 참고하는 복잡한 금융 파생상품이다. 원칙적으로 개인투자자들은 '시장 조성자'인 중국은행과 거래하는 개념으로 설계됐다. 이론적으로 고객이 수익을 실현하면 중국은행이 손실을 보는 구조다.
다만, 중국은행은 사전에 마련한 헷징(리스크 회피) 장치를 통해 손실을 방어할 수 있다고 중국 매체는 소개했다. 레버리지 상품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 매체 차이신(財新)은 '위안유바오'의 설계 특성으로 인해 연계된 국제 원유 거래가가 마이너스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연출되면서 결과적으로 레버리지가 무한대로 커지는 '악효과'가 발생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위안유바오' 상품에 납부한 증거금은 총 42억위안이다. 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증거금 전액이 손실로 넘어갔다. 여기에 중국은행에 납부해야 할 추가 증거금이 58억 위안 수준이다.
투자자들은 원금 손실도 모자라 추가 자금을 납부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이미 중국은행을 대상으로 집단 소송을 준비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차이징(財經)의 보도에 따르면, 25일 '위안유바오' 투자 피해자 모임 SNS에 한 투자자가 손실 규모를 감당하지 못해 푸젠성(福建省)의 모 병원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내용의 동영상이 전해졌다. 실제로 이 동영상에서 거론된 병원에서 같은 날 투신 사고가 확인됐지만, 극단적 선택의 이유가 '위안유바오' 투자 실패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차이징은 보도했다.
이 밖에도 투자 실패로 "이혼 위기에 처했다","절망한 나머지 자꾸 나쁜 생각을 하게 된다"라며 고통을 호소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은행 측은 투자손실의 책임이 개인 투자자에게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중국은행의 투자위험 등급 설정에 문제가 있고, 투자자들에게 해당 상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위안유바오' 상품의 투자 위험 등급은 C3~4로 책정됐다. 중국의 금융 투자 상품은 크게 △ 수익형(낮은 수익과 낮은 리스크) △ 성장형(고위험 고수익) △ 균형형(중간 정도의 리스크와 수익)으로 분류되는데, c3~4는 균형형 투자자로 분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상품 가입을 위해 투자위험 성향 테스트를 받았던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50% 수준의 원금 손실 리스크를 수용할 수 있는 균형형 투자자'로 분류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위안유바오'는 원금 전액 손실과 더불어 추가 증거금까지 납부해야 하는 고위험 상품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중국은행이 중간에 최소 거래 단위를 상향 조정해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졌다. 대학원생인 샤오신(小新)은 메이르징지르바오(每日經濟日報)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몇 배럴 단위 거래가 가능했고, 수익도 실현했다. 그러나 은행이 최소 거래단위를 10배럴로 지정하면서 투자 단위도 커지게 됐다"라고 밝혔다.
상하이, 광저우 및 선전 등 중국 주요 도시에서 수만명의 투자자들이 중국은행 지점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미 수 천명의 피해자들은 법원에 중국은행을 재테크 상품 불완전 판매로 고소한 상태다.
투자자들은 정부가 △ 위안유바오의 상품 설계에 대한 재심사 △ 중국은행의 판매 행위의 위법성 △ 투자위험도 설정의 적합성 진단 △ 중국은행 상품 설계 문제로 인한 연대 책임 의무 규명 등에 나설것을 촉구하고 있다.
베이징 징스법률사무소 금융자본부 책임자인 장완(張婉) 변호사도 중국은행이 '위험 고지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았다과 지적했다.
◆ 중국 주요 은행 상황도 비슷, 원유 선물 투자 손실 규모 늘어날 듯
중국 금융 당국도 사건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베이징르바오(北京日報)는 '위안유바오' 피해자가 국가청원국(國家信訪局)에 피해자 구제 및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청원을 제출했고, 이미 해당 내용이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와 중국은행에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국가청원국에 접수된 사항은 60일 이내에 처리돼야 한다.
'투자자 위험감수' 원칙을 고수했던 중국은행은 금융 당국의 개입 소식이 전해진 후 증거금 강제징수를 보류하고, 투자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위안유바오' 사태는 중국 재테크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은행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 복잡한 금융상품을 '재테크 상품'이라는 명목으로 위험감수능력이 약한 개인 투자자들에게 쉽게 판매하는 관행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또한, 순금·주식 심지어 복잡한 선물 상품까지 가격이 하락하면 무조건 사고 보는 개인 투자자들의 '묻지마 투자'에도 경종을 울렸다.
복수의 중국 매체들은 중국은행 외에도 공상은행, 건설은행, 교통은행, 농업은행, 민생은행, 평안은행 등 중국의 주요 은행들이 모두 위안유바오와 유사한 원유 선물 투자 상품을 출시한 만큼 피해 규모는 앞으로 더욱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 은행 모두 원유 선물 투자 상품을 '낮은 리스크'의 보통 재테크 상품으로 분류해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js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