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협박에 CCTV 사생활 간섭까지
보육교사 62% "괴롭힘으로 진료 필요"
괴롭힘에 적극적 대응 23% 불과
"관련 법 시행됐지만 현실은 그대로"
[서울=뉴스핌] 이학준 기자 = # 서울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주임교사로 일하고 있는 여성 A씨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개원 준비 과정에서 횡령이 있었다는 제보로 구청 감사가 들어오자 원장이 A씨를 제보자로 지목하고 감금 등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A씨는 자신이 제보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원장은 시말서를 쓰도록 요구했다. A씨가 잘못한 게 없으므로 시말서를 제출하지 않겠다고 하자 원장은 A씨를 교실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감금했다. 원장은 다른 교사에게 A씨를 감시하도록 했고, A씨는 하루종일 교실 안에 있어야만 했다. A씨는 두려움에 다음날 출근하지 못했다.
◆ 갑질 가해자 60%는 원장...감금·협박까지 피해 수준 심각
8일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119가 현직 보육교사 8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전체 57.3%였다. 이중 원장 또는 이사장 등 어린이집 대표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60.7%에 달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원장들의 괴롭힘 수준은 협박에서 사생활 감시까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 소재 민간 어린이집 원장은 퇴사하고 싶다는 B씨에게 "이력서랑 교사 자료들을 다른 원장들한테 다 보여주면서 너는 뽑지 말라고 할 거다"고 협박했다. B씨는 재취업 과정에서 해당 원장이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 다른 어린이집 원장들에게 소문을 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울산 소재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은 폐쇄회로(CC)TV를 통해 실시간으로 교사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모니터에 특정 교사가 안 보이면 바로 원장실로 오도록 했다. 보육교사들은 원장에게 호소했지만 원장은 "내가 아동학대로 끌려가는 것보다 CCTV로 감시하다가 잡혀가는 게 낫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한 보육교사 448명 중 70.9%는 '괴롭힘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61.6%는 괴롭힘으로 인해 의료적 진료나 상담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진료 및 상담을 받은 비율은 8.7%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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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을 '참거나 모르는 척 했다'고 답한 사람은 50.9%로 가장 많았고, 회사를 그만뒀다는 비율은 29.2%로 그 뒤를 이었다. 괴롭힘 피해자 대부분이 괴롭힘을 참거나 아예 회사를 그만두는 길을 택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항의하거나 동료들과 집단 대응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한 비율은 23.2%였다.
소극적 대응 이유에 대해 응답자 73%는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라고 했고, 38.3%는 '향후 인사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 갑질방지법·감정노동자보호법 있지만..."현실은 여전하다"
어린이집 등 직장 내 괴롭힘이 여전한 만큼 관련 법률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감정노동자보호법에 실효성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으로 직장에서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해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 등을 금지하도록 한 법이다. 지난해 7월 16일부터 시행돼 곧 시행 6개월을 맞이한다.
2018년 10월 18일부터 시행된 감정노동자보호법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으로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근로자의 건강 장해를 예방하고자 만들어졌다.
설문에 참여한 보육교사 69.7%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 괴롭힘이 줄었다는 응답은 22.2%에 불과했다. 오히려 괴롭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63.5%에 달했다.
응답자 44.7%는 감정노동자보호법 존재 여부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보육교사가 해당 법에 따라 보호 대상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비율은 24.4%에 그쳤다. 해당 법 시행 이후 어떠한 예방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78.3%에 달했다.
일각에서는 해당 법들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사내 교육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육교사 중 관련 교육을 받았다는 응답은 31.5%에 그쳤다.
hak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