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의 압력으로 대권 포기했다는 분석 팽배
불출마 선언했지만, '베이징'의 보복 본격화 조짐
[서울=뉴스핌] 강소영 기자=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궈타이밍 훙하이그룹(鴻海集團) 전 회장이 '베이징'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대권 야망은 일단 접었지만, 대중사업 비중이 높은 훙하이그룹과 궈 전 회장의 입장이 매우 난처한 상황이다. 궈 전 회장이 총통 선거 출마 이후 보여온 발언과 행보가 중국 정부와 중국인들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중국 매체에선 이미 '베이징'의 궈 전 회장에 대한 '처벌'이 시작됐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훙하이그룹에 대한 중국의 보복성 조치가 노골화되고 있다. 궈 전 회장이 '베이징의 분노'를 어떤 식으로 잠재울지 관심이 쏠린다.
궈타이밍 훙하이그룹 전 회장 <사진=바이두> |
이번 달 8일 상하이증권거래소는 후강퉁(滬港通 상하이-홍콩 주식 교차 거래) 거래 명단에서 훙하이그룹 산하 상장사인 푸즈캉(富智康)을 제외한다고 밝혔다.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인 9일 홍콩거래소에선 푸즈캉의 주가가 장중 한때 5% 넘게 하락하는 등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아이폰 주요 공급사인 훙하이그룹의 또 다른 자회사 폭스콘도 악재에 부딪혔다. 폭스콘 정저우 공장이 중국 노동법 위반 혐의로 적발됐다. 중국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폭스콘에 투입된 중국 정부의 비밀 요원이 위장취업을 통해 위법 사항을 적발해 냈다. 임시직 직원의 규모가 전체의 10%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중국 노동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주요 혐의다.
중국 언론들도 궈타이밍 전 회장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궈 전 회장이 대만 총통 선거에 참가하기 위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부인하고, 대만 독립을 사실상 지지했다며 이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친 중국적 성향의 국민당 소속으로 총통 선거 출마를 선언했던 궈 전 회장은 대만 현지에서 줄곧 민감한 질문 공세에 직면해왔다. 양안관계와 정치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친 중국적인 궈 전 회장이 총통 당선될 경우, 대만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 있다는 일부 유권자들의 우려에 궈 전 회장은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명쾌한 입장을 밝혀왔다.
중국 당국은 궈타이밍 전 회장이 양안간 92컨센서스(92共識)로 합의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부인했다며 궈 회장을 압박하고 있다. 92컨센서스는 1992년 11월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와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가 합의한 내용으로, '하나의 중국(一個中國)'을 인정하되, '하나의 중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해석에 따르기로 한다(一中各表)는 원칙이다.
중국은 92컨센서스가 국가 대 국가 간의 협의가 아닌 국가 중국과 중국의 일부 대만 지역 간의 약속으로 취급한다. 반면 대만은 컨센서스에서 언급한 '하나의 중국'을 중국 본토가 아닌 중화민국(대만의 정식 명칭)으로 보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 대만의 집권당인 민진당은 이러한 절충안이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92컨센서스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궈 전 회장이 총통 출마를 선언한 후 가장 먼저 직면한 질문도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입장 표명이었다. 이에 대해 궈 전 회장은 '하나의 중화민족의 틀에서, 하나는 중화민국, 하나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대답, 중국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자신의 친 중국적 성향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궈 전 회장은 이후에도 '과감한' 발언과 행보를 이어갔다. 중국 정부의 위협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현재 중국에 있어 안정적인 경제 발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우리 폭스콘은 중국에서 엄청난 취업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폭스콘을 필요로 하는 것은 중국이다. 만약 중국에서 나가라고 한다면 생산공장을 다른 나라로 얼마든지 옮길 수 있다"라고 답해 다시 한 번 '베이징'과 중국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달 초부터 훙하이그룹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복성 조치가 가시화됐다. 그리고 16일 궈 회장이 돌연 불출마 선언을 발표하면서 그의 '기권'이 베이징의 압박에 의한 것이라는 견해가 힘을 얻게 됐다.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전 총통도 궈 전 회장의 불출마 원인을 '시진핑 정부'로 지목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14일 커원저(柯文哲) 시장 부부와 긴 대화를 나눴다. 커 시장은 궈 회장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점쳤지만, 내 판단은 달랐다. 난 결국 궈 회장이 '기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궈 전 회장이 불출마를 선언한다면 그것은 중국 시진핑이 지시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한편, 궈타이밍 전 회장의 불출마로 대만 정계의 대선 구도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궈 전 회장의 불출마가 대만 제2의 도시 가오슝 지역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유력한 대선 후보로 부상한 한궈위(韓國瑜)에 유리한 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친 중국파인 국민당 소속인 한궈위 후보는 궈 회장의 출마 선언과 홍콩 사태로 최근 상승세가 한 풀 꺾인 상태였다. 홍콩 사태를 목도한 대만 국민들의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면서 대만 독립파인 민진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지는 조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당 당내 경선에서 실패한 궈 전 회장이 국민당을 탈당하면서 한 후보에 대한 표가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국민당 내부에서 확산되고 있었다.
국민당을 탈당한 궈 전 회장을 자기 진영으로 끌이들이려 했던 커원저 타이베이 시장도 상황이 머쓱해졌다. 중도파 정치인으로 주목받은 커 시장은 최근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어 새로운 동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각 후보가 '결정적인 한 방'이 절실한 상황에서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대선 구도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궈 전 회장이 불출마를 결정한 날 부총통을 역임했던 뤼슈롄(呂秀蓮)이 대선 참가를 선언했다.
js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