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낯선 소재로 외면 받다 종영 즈음 관심 쏠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방영 중에도 나쁘지 않았지만, 종영 후에 더욱 화제다.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이 크나큰 울림을 안방에 선사하며 시청자들을 후회 아닌 후회에 빠뜨렸다.
사실 '녹두꽃' 외에도 이같은 경우는 왕왕 있었다. 최근 리메이크가 결정된 에릭과 정유미 주연의 '케세라세라', 스타작가 김은숙의 초창기 작품 '시티홀'이 그랬다. 방영 당시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드라마가 종영한 후 작품성을 인정받은 케이스다.
백이강 역의 조정석 [사진=SBS 금토드라마 '녹두꽃'] |
◆ "왜 지금껏 안봤지?"…전봉준의 죽창가에 오열한 시청자들
SBS에서 금토드라마 시간대에 전략적으로 편성하며 기대작으로 주목받았던 '녹두꽃'은 시청률 면에서 그리 좋은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전작 '열혈사제'가 20%를 넘기며 승승장구했지만 10%를 오가는 시청률로 고전 아닌 고전을 했다. 하지만 드라마의 진가는 시청자가 알아봤다.
무려 48부작으로 제작된 긴 호흡의 사극, 그리고 왕이 아닌 민초들의 이야기를 담았단 점이 '녹두꽃'의 차별점이자 맹점이었다. 익숙지 않은 장면과 호흡에 시청자들이 빠르게 공감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방영 내내 "어둡고 가슴아픈 내용이지만 꼭 한번 볼 만한 드라마"라는 호평이 따라다녔다.
'녹두꽃' 신경수 감독은 전라도 고부 지역을 배경으로 벌어진 '동학농민혁명'을 담기 위해 여느 사극에서 볼 수 없던 소박한 배경지를 찾아다니며 촬영했다. 실존 인물인 전봉준이 아니라 가상인물인 백이강, 이영 형제를 등장시켜 자유로운 해석을 가능케 한 점도 좋게는 "신선하다", 나쁘게는 "생경하다"는 평을 받았다.
전봉준 역의 최무성 [사진=SBS 금토드라마 '녹두꽃'] |
'녹두꽃'이 종영할 즈음, 고정 시청자들은 물론 새로이 유입된 시청자들은 "왜 이 드라마를 이제야 봤나"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SNS를 비롯한 온라인상에 "녹두꽃 종영이 너무 아쉽다. 동학농민운동은 폐정개혁안에 청상과부의 재가 허용이란 항목이 들어간 것부터가 인즉천을 뛰어넘었어" "죽창가를 들으니 처절하다. 얼마 전 종영한 SBS '녹두꽃'에서 전봉준과 휘하 의병장들이 처형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주루룩 흘렸다"는 감상을 남겼다.
심지어 네티즌들은 흥행과 화제성의 증거인 일명 '짤방'과 온갖 드립을 생성하며 '녹두꽃' 종영을 아쉬워했다. 극중 전봉준이 죽기 직전 마신 죽력고(대나무즙으로 만든 술)를 마시며 종영을 슬퍼하자는 글이 뜨거운 반응을 얻는가 하면, 심지어 조국 민정수석도 '녹두꽃'의 OST로 사용된 '죽창가'를 페이스북에 언급해 화제를 모았다.
배우 에릭과 정유미 [사진=뉴스핌DB] |
◆ 지금의 에릭·정유미 만든 '케세라세라', 김은숙 초기작 '시티홀'도 웰메이드 입소문
지난 2007년 방송한 MBC 드라마 '케세라세라'는 현재 영화, 드라마, 예능에서도 맹활약 중인 에릭과 정유미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다. 당시 가수에서 연기자로 전향한 지 얼마 안된 윤은혜가 물망에 오르면서 네티즌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한 등 방송가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기대작이었다.
하지만 막상 방영 중에는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비슷한 시기 대박을 친 '커피프린스 1호점'이 27%대의 시청률로 종영하며 화제가 된 것에 비해 시청률 9%대에 머무른 '케세라세라'는 성공작으로 꼽히지 못했다. 당시 한국과 우루과이의 축구 친선경기 중계 관계로 결방했던 것 역시 치명타로 작용했다.
반전은 종영 후에 일어났다. 에릭과 정유미의 신선한 로맨스 케미와 탄탄한 대본, 연출력이 입소문을 냈고 온라인상에서는 '케세라세라'의 마니아층이 생겨났다. 에릭, 정유미는 다양한 작품에서 호연을 펼치며 이 기세를 굳혀나갔고, '연애의 발견'에서 한 차례 더 연인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종영 후 더 뜨거워진 반응에 명작으로 남았던 '케세라세라'는 두 사람이 다시 한번 출연해 올 하반기 리메이크 제작까지 확정했다.
[사진=SBS] |
김은숙 작가의 2009년 작품 '시티홀'은 그의 작품이 늘 흥행 연타를 기록했던 것에 비해 대단히 화제작은 아니었다. 18.7%의 최고시청률을 기록하긴 했지만, '파리의 연인' '프라라의 연인' '시크릿 가든' 등과 비교할 때 방영 당시 주목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티홀'은 종영 이후 김은숙 작가의 시대정신이 녹아있는 웰메이드 작품으로 꼽힌다. 주연 차승원과 김선아의 호연은 덤이다. 재벌가 남자 주인공과 신데렐라형 여주인공 일색이던 그의 작품 리스트 가운데, 시청에서 일하는 여성 공무원과 여성 시장을 주인공으로 한 '시티홀'은 단연 특색있는 작품으로 남았다. 당시 시정에 관련된 소재 자체가 다른 드라마에 비해 주목도를 떨어뜨렸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