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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선언 1년] ⑫개성공단 기업인의 한숨 "시설 점검 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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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최동진 디엠에프 대표 인터뷰
"공단 폐쇄 결정 하루 전에 통보...공단 내 물건도 못 들고나와"
"절박한 상황...10원도 대출 안 해줘 재가동하더라도 재입주하기 어려워"
"지난해 판문점 선언, 여러 정상회담은 희망고문...시설점검 위한 방북만 허용해주길"

[편집자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두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MDL)을 넘나들었던 지난해 1차 남북정상회담을 기억하시나요.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 정상이 첫 발걸음을 뗐던 순간이었습니다. 남북 정상은 회담의 결과물인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그간의 전쟁위험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고 ‘한반도 평화의 봄’을 위한 여정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뉴스핌>은 4.27 판문점선언 채택 1주년을 맞아 1년 동안의 성과와 또 아직 남아있는 과제를 짚어보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서울=뉴스핌] 민경하 기자 ="지난해 판문점 회담이 끝나고 금새 재가동이 될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저희에게 돌아온 것은 세 차례의 방북 신청 거절 뿐입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최동진 디엠에프 대표의 하소연이다. 최 대표는 지난해 4.27 판문점 회담 이후의 1년에 대해 '희망 고문의 연속'이었다고 표현했다.

지난 26일 만난 최 대표는 지난 2008년 개성공단에 입주한 의류 제조 전문업체 '디엠에프'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6년 2월 공단이 폐쇄되면서 최 대표는 25명이었던 근무자를 16명으로 줄였고, 공장도 베트남에 40만 달러를 투자해 새로 지었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 대표는 수 십억원 대의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막심한 손해를 입은 최 대표에게 제일 힘들었던 것은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였다. 인터뷰내내 최 대표는 그간 정부가 개성공단에 대해 보여온 대처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개성공단 입주부터 판문점 회담 1주년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개성공단 입주기업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동진 디엠에프 대표 [사진=디엠에프]

다음은 최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맨 처음 개성공단에 입주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한다면.

▲이전까지 국내에서 공장을 가동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다보니 인건비가 저렴한 베트남 진출을 고민하던 때였다. 당시에 정부에서 홍보하던 개성공단에 대한 정보를 얻게되었고, 인건비·물류·의사소통 등 모든 면에서 베트남보다 개성이 낫다고 판단했다. 정부도 공단부지를 분양하면서 남북경협이라는 틀 속에서 기업활동을 안전하게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우리도 4대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입주 이후 지난 2016년 2월 공단 폐쇄까지 어려움은 없었나.

▲공단 폐쇄가 한번 더 있었다. 2013년 4월부터 9월까지 약 6개월간 공단이 중단됐었다. 일시적으로 방북을 막거나, 신규 투자를 금지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그렇게 장기간 공단이 멈춘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당시에 우리 회사가 입은 피해만 30억원 가까이 된다. 업체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설비가 100% 개성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피해가 더욱 컸었다. 이후 대통령이 어떠한 정치적 상황에도 개성공단을 멈추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면서 다시 공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난 2016년 2월 11일 개성공단 전면 폐쇄.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면.

▲2016년 2월 9일날 오후 2시경에 우리 기업협회 임원진 한 20여명에게 문자가 왔다. 통일부에서 곧 중대발표가 있을 예정이니 2월 10일 오후 2시에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긴급한 회의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임원들끼리는 "아무리 그래도 폐쇄나 중단을 한다는 말은 안하겠지" 했다. 다음날 오후에 남북회담본부로 찾아가보니 통일부 차관이 "2월 11일 오후 5시에 개성공단 전면중단 한다는 발표를 하겠다"고 말했다. 처음에 그걸 들었을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다.

기업인들은 함께 있던 통일부 장관(당시 홍용표 장관)에게 그럼 공단에 있는 원부자재와 생산품이라도 가져가겠다고 했다. 당시 장관은 "북한과 협의를 해서 원부자재를 꺼내오는 날짜를 별도로 주겠다"고 했다. 다음날 오전에 보니 기업 1개당 1인 1트럭으로 들어가라는 메시지가 왔다. 우리를 포함해 많은 제조업체들이 가져올 원부자재와 재고가 참 많은데, 정말 1개 기업마다 직원 1명씩만 보냈다. 와중에 오후 4시에 북한이 자산 동결처리를 하는 바람에 4시 이전에 나온 업체를 제외하고는 모두 들고 나오던 것을 뺏겼다. 결국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공단이 폐쇄되고 아무것도 가져오지도 못한채 3년이 흘렀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인턴기자 =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개성공단사업 제재 예외 청원 기자회견에서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04.08 alwaysame@newspim.com

-폐쇄 이후 지난 3년간 회사 상황은 어땠나.

▲아마 모든 제조업체가 공감하겠지만, 공장을 짓고 설비를 가동해서 정상적인 수익구조가 나려면 약 3~4년이 걸린다. 우리 회사의 경우, 2009년 정상 가동을 시작하고, 4년이 되던 2013년에 한 번 중단을 겪고, 또 다시 3년이 되던 2016년에 중단을 겪어서 수익구조가 엉망이 됐다. 개성공단에 인프라를 완벽하게 구축했는데, 중단이 됐으니 소용이 없는 것. 중단 직후 베트남에 공장을 세워 이제 겨우 적자를 면하는 수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가 개성공단 기업인들에게 5500억원을 지원해줬다고 알고 있지만, 이것은 지원이 아닌 대출이다. 재가동이 되면 모두 돌려줘야 하는 돈이다. 그나마도 지난 3년간 계속된 적자에 대출금도 전부 사용하고, 지인·가족들에게까지 돈을 빌리면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신용등급이 점점 낮아지고, 개성에 자산이 있다는 이유로 은행에서 대출도 잘 안나온다. 이미 2개 기업이 도산한 것으로 알고 있고,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 기업인도 있다. 정말 절박한 상황. 재가동이 될때 재입주를 한다면 기업이 일단 살아야 하는데 10원도 대출을 안해준다.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선언 당시 기억을 떠올린다면.

▲아침 새벽에 청와대에서 출발하는 대통령을 환송했다. 그날 입주기업인들은 대통령에게 개성공단 꼭 신경써달라고 부탁하고,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 위치한 협회 사무실로 가서 TV로 판문점 선언 전 과정을 지켜봤다. 굉장히 들뜨고 환희에 찬 기분으로 있었다. 이후 센토사회담(제1차 북미정상회담), 하노이회담(제2차 북미정상회담), 평양 남북정상회담때도 다 똑같은 기분이었다. 회담 개최때는 금방 재가동되겠지 하는 기대감이 크고, 또 이후에는 실망하고 그런 희망고문의 연속이었다.

-판문점 선언 1주년이 됐다.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판문점 회담 직후 금방 열릴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실망도 컸지만, 정치적인 논리로 인해 열리기 어렵다는 것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해는 한다. 단지 기업인들이 간곡히 원하는 거슨 시설 점검을 위한 방북을 허용해 달라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정부 자산이 아닌 개인 자산이고, 정부의 지원은 1원도 받지 않은 순수한 중소기업들의 개인자산으로 남북경협사업이 이뤄진거다. 정부가 기업을 앞세워 대북사업을 열었는데 이제와서는 책임을 안지는 모양새다.

판문점회담 이후 세 차례를 포함해 우리가 지금까지 8번의 방북신청을 했지만 한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는 30일 또 다시 방북 신청할 예정이다. 개성공단이라는 존재에 UN의 논리가 있고, 미국의 논리가 있고, 우리 정부의 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재가동은 그 논리를 모두 이해시킬때 이뤄지겠지만, 시설점검을 위한 방북은 우리 정부 논리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시설점검을 하는 이유는 지난 3년간 방치된 설비의 상태를 점검하고 언젠가 이뤄질 재가동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다른 정치적인 일로 방북을 할 때는 2,300명씩 데리고 가면서 우리 122개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자산을 확인하러 가는건 못하게 한다. 기업인들이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것은 정말 절박해서다. 정부에서 우리 입장을 좀 더 들어줬으면 좋겠다. 

 

204mk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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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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