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제국 유산이 獨 나홀로 정책 초래
獨 "국방예산 규모 아닌 평화·다자기구 지원에 대한 노력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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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세원 기자 = 독일의 외교정책이 전 세계의 비난에 직면했다. 최근 유럽은 유럽연합(EU)의 분열을 시도하는 중국과 동유럽부터 시리아, 예멘, 리비아 갈등까지 개입하려는 러시아, 미국과 깊어지는 갈등을 놓고 시끄럽다. 여기에 극우 민족주의 세력까지 유럽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독일이 나홀로 노선을 걸으며, 점차 유럽에서 고립되어가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3일(현지시간) 비중 있게 보도했다.
먼저 독일은 주변국의 거센 반발에도 러시아 우스트라가에서 발트해를 가로질러 독일 북동부 그라이프스발트를 잇는 가스관 공사인 '노드 스트림2'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노드 스트림2 프로젝트는 독일을 통해 러시아 천연가스를 유럽 각국에 판매하려는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등의 동유럽과 EU 회원국, 미국이 노드 스트림2 사업에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고 있지만 독일은 사업 추진을 이어가고 있다.
독일은 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위비 분담과 관련해서도 동맹국의 공격을 받고 있다. 나토 회원국들은 2014년 국내총생산(GDP)의 최소 2% 이상을 방위비로 지출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현재 독일의 경우 목표치에 미치지 못하는 GDP의 1.24%를 방위비로 지불하고 있으며, 정당한 몫을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독일은 오는 2024년까지 GDP의 1.5%를 국방비로 지출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이마저도 여전히 목표치에 이르지 못하는 수준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이달 2일 백악관에서 옌스 스톨텐버그 나토 사무총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회원국의 방위비 증액을 촉구하며 "독일의 분담금은 GDP의 1%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은 그간 방위비를 증액하면 균형예산과 복지에 집중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왔다. 하지만 독일이 국제·군사 문제에서 책임지기를 회피하면서 이제는 구두쇠라는 꼬리표까지 따라붙은 상태다.
이와 관련해 미국 소재 싱크탱크 독일마샬펀드의 선임연구원 얀 테쇼는 "독일인은 무임승차자가 아니다. 우리는 단순히 몇 유로를 아끼기 위해 이러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더 깊은 이유가 있다"면서 독일의 이런 행보의 원인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국기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제3제국 유산이 獨 나홀로 정책 초래
테쇼 선임 연구원은 "제3공화국(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죄책감이라는 감정 하나가 아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신뢰 부족을 낳았다"며 "야심찬 국가적인 프로젝트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역사에 기록될만한 문명대파괴라는 결과가 초래됐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이어 "다른 국가들과 다르게 우리는 우리의 선한 의도도 신뢰하지 못한다"고 부연했다. 과거 나치 정권에 대한 경험과 부채의식을 바탕으로 생겨난 본능이 독일의 평범한 유권자는 물론 지도자들 마음 속에 깊숙이 박히게 됐으며, 이후 서독의 발전을 목격하면서 이런 인식이 더 강해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이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독일은 "외교정책의 억제가 성공의 모델이라는 점을 깨달았다"며 "독일은 부유해졌고, 통일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비슷한 의견은 외교관 토마스 버거가 최근 발간한 에세이에서도 드러난다. 토마스 바거는 독일의 역사적인 경험이 독일을 민족주의적 정치 부활에 부적합한 장소로 탄생시켰다고 주장한다. 이는 최근 유럽에서 민족주의 부활 바람이 부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그는 냉전이 끝나고, 1989년 통일된 이후 독일이 "마침내 역사의 옳은 편에 서게 됐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적었다. 마침내 자유 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믿은 독일인들은 이제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러시아와 중국 등의 권위주의적 국가를 포함해 전 세계가 독일의 전철을 밟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자신들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유럽 동맹국 사이에서 우파 권위주의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외톨이 신세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이다. 토마스 바거는 유럽 국가들이 과거 외교 정책으로 회귀하고 있지만 독일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오늘날 독일의 주류는 다자주의"라고 강조했다. FT는 이러한 이유로 독일이 현재 시대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주례 내각회의에 참석했다. 2019.04.03. [사진=로이터 뉴스핌] |
◆ 獨 "국방예산 규모 아닌 평화·다자기구 지원에 대한 노력도 중요"
독일은 러시아와 중국의 부상이 아닌 기후변화와 사회적 긴장, 경제 불안정 등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FT는 최근 진행된 한 설문조사에서는 독일 국민이 중국이나 러시아보다도 미국을 전 세계 평화에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경계감을 드러내는 유럽 국가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안보 상황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런 인식이 모든 사회에서 폭넓게 공유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FT는 이 같은 인식이 결국 독일 내부에서 방위비 증액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들었으며, 무기 수출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취하게 돼 영국과 프랑스와의 갈등을 유발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독일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이후 실행한 사우디 무기수출 금지 조치를 여섯 달 연장하기로 결정해 동맹국의 반발을 샀다.
반면 일각에서는 정치경력 황혼기에 접어든 메르켈 총리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한다. 독일의 한 고위 관리는 최근 들어 메르켈 총리가 "피해 최소화 모드"에만 집중하며, 세계 문제에 있어 적극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옆 나라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EU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비전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을 때, 메르켈 총리는 침묵만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국제사회에서만 침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국민의 생각을 돌리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독일의 생각은 유럽과 다르다. 독일의 관리들은 자국을 향한 비난이 부당하다고 강조한다. 독일 당국자들은 국방 예산이 국제적인 기준에서 볼 때 낮을지는 모르지만 최근 들어 크게 늘어났다고 주장한다. 또 단순히 GDP의 2%라는 서류상의 목표치만 달성하는 동맹국들과는 다르게 독일은 동맹의 군사력 강화에 기여를 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 배치된 독일연방군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말한다.
사회민주당(SPD)의 닐스 안넨 의원은 "독일은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우리는 리투아니아에 탱크를 두고 있으며, 초신속합동군(VJTF)을 이끌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10여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관리들은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은 단순히 국방 예산 규모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안정화 노력, 다자기구에 대한 재정 지원,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 등 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의 난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등의 외교적인 노력도 평가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러한 요소들도 고려된다면 독일의 리더십이 더 인상적으로 보일 것이라고 반박했다.
saewkim9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