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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이젠 계획생육] 산아제한 역사속으로... 14억 인구대국, 인구결핍에 신음

기사입력 : 2019년01월28일 10:26

최종수정 : 2019년02월12일 16:34

1949년 이후 신생아 수 최저, 산아제한 정책 무용론 확산
출산독려부터 산아제한까지, 70년 역사 회고

[편집자] 이 기사는 1월 25일 오후 4시43분 프리미엄 뉴스서비스'ANDA'에 먼저 출고됐습니다. 몽골어로 의형제를 뜻하는 'ANDA'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과 도약, 독자 여러분의 성공적인 자산관리 동반자가 되겠다는 뉴스핌의 약속입니다.

[서울=뉴스핌] 이미래 기자 = 2016년 중국은 인구를 늘리기 위해 40년 가까이 지켜온 한자녀 정책을 폐지하고 두 자녀까지 허용하는 정책을 도입했지만 출산율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2018년 신생아 수는 1523만 명으로, 1960년과 1961년 두 해를 빼고 역대 최저로 줄었다. 이에 따라 출생률도 인구 1000명당 신생아 수 10.94명으로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1949년 건국 초기 중국 당국은 '인구가 국력'이라며 출산을 장려했다. 이후 식량 문제와 도시인구 압력에 직면, 강력한 지화성위(計劃生育, 한자녀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했다. 최근 들어서는 인구 증가율이 급감하고 저출산 노령화, 노동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해지자 한자녀 정책 전면 폐지를 검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건국 이후 70년간 중국의 시대별 인구정책 변화를 살펴본다.

◆1단계: 1949~1953년 '多産 애국' 피임약 수입엄금, 낙태 금지

1949년 신중국 수립 직후 중국 당국은 ‘사람의 노력은 대자연도 이긴다’는 뜻의 ‘런딩성톈(人定勝天)’ 구호와 함께 출산을 독려했다. 정부는 “믿을 수 있는 건 사람뿐” “기적은 사람이 이룬다” 등을 제창했다.

특히 중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오쩌둥(毛澤東)은 “사람이 많아야 국력도 강해진다(人多力量大)”며 다산을 적극 권장했다. 이에 따라 중국 위생부(衛生部)는 피임약 수입 금지령을 내리는 것은 물론 낙태를 법으로 엄격하게 단속했다.

‘사람의 노력은 대자연도 이긴다’는 뜻의 ‘런딩성톈(人定勝天)’ 출산독려 포스터 [사진=바이두]

출산독려 정책에 따라 1953년 중국 인구는 6억200만 명을 기록, 정부 예상치를 뛰어넘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 경제사회는 생산력이 낙후된 결과 빠르게 늘어나는 인구를 포용하지 못했고 의식주 의료 교육 취업 등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2단계: 1954~1977년 '오락가락 흐지부지' 인구 급증

급격한 인구 증가로 식량난 등 사회 문제가 대두되자 인구 통제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서서히 제기됐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신인구론(新人口论)을 통해 인구 조절의 필요성을 주장한 전 베이징대학교 총장 마인추(馬寅初)다. 마인추 총장은 식량 증산이 인구 증가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계속 인구가 늘어나면 민생경제는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며 모택동 다산 정책에 문제를 제기했다.

인민일보 1957년 7월 5일자에 실린 마인추의 신인구론 [사진=바이두]

마인추 총장의 주장이 나온 후인 1954년 12월 중국은 첫 인구 및 가족계획 좌담회를 열어 산아제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뜻을 모은다. 중국 공산당은 1956년 9월 8차 전국대표대회(全國代表大會)에서 산아제한 방침을 공식 제시했다.

1957년 2월 마오쩌둥도 “인류는 자기 자신을 컨트롤 해야 한다”는 구호아래 '계획적인 인구 증가'를 주장하며 무조건 다산이 중요하다는 종전 입장에서 한발 물러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1958년 대약진(大躍進, 노동력 집중화 산업을 통한 경제성장)운동이 시행되면서 산아제한 인구 통제 정책은 다시 흐지부지됐다. 대약진운동으로 철강사업 등 노동력 집중 산업이 강조 됨에 따라 인구 증가를 제한해야 한다는 마인추 총장의 주장은 “당 정책에 반하는 이론”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농촌이 부자가 되려면, 아이를 많이 낳아 씨앗을 많이 심고 뿌려야 한다'는 내용의 출산독려 포스터 [사진=바이두]

하지만 대약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고 이후 3년 동안 수천만 명의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하면서 또다시 산아제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대약진 실패로 마오쩌둥이 권력 일선에서 물러나고 류샤오치(劉少奇)주석이 집권했던 1962년 12월 국무원(國務院)은 ‘산아제한 관련 통지문’을 내놨다. 이어 1966년 1월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산아제한 문제 관련 통지문’을 발표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극화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마오쩌둥이 다시 권력 1선에 등장한 시기 인구 증가율은 다소 하락세를 보였다. 문화대혁명 말기인 1975년 기준 일반 도시의 인구 증가율은 1%(1000명당 10명) 수준으로, 농촌은 1.5%(1000명당 15명) 수준으로 하락했다.

당시 중국 사회에 나돌았던 얘기, ‘하나도 적은 건 아니지만, 둘은 딱 좋고, 셋은 많다(壹個不少, 兩個正好, 三個多了)’는 구호는 인구문제및 출산정책에 대한 관점을 잘 보여준다.   

1973년 12월 중국 당국은 ‘전국 계획생육 활동 대회’에서 ‘완 시 샤오(晚稀少)‘ 원칙을 강조하며 산아제한 정책을 설파했다. 완(晚, 늦다)은 남자 25세 여자 23세가 넘어 결혼해야 한다는 뜻을, 시(稀, 드문드문)는 출산과 임신은 4년 정도 간격을 둬야 한다는 뜻을, 샤오(少, 적다)는 최대 2명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당국은 한자녀정책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사진=바이두]

부분적으로 산아제한 정책이 시행되긴 했지만 전체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덩샤오핑(鄧小平)이 집권한 1978년 중국 인구는 약 10억 명으로, 1954년 대비 3억5000만 명이 증가했다. 지방정부가 초과 출산 케이스를 일부 누락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만큼 실제로는 더 많았을 가능성이 크다.

학자들은 “당시 마오쩌둥이 마인추의 주장을 좀 더 새겨들었다면 인구가 10억 명까지 늘어나진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첫째는 출산, 둘째는 중절수술과 5000위안 벌금, 셋째는 2만 위안 벌금 [사진=펑황왕]

◆3단계: 1978~2013년 초강력 '산아 제한', 초과출산 발각시 마을전체 중절 수술

당시 중국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후폭풍으로 의식주(衣食住) 및 경제발전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인민공사(人民公社, 농촌행정 및 경제조직 일체화) 실패 등의 이유로 당시 중국의 농업 생산율은 저하됐고 만성적인 식량 공급 부족에 시달렸다. 1976년 문화대혁명 종결 이후 경제에 주력했지만 경제개발에 필요한 외화가 너무 적어 이 또한 역부족이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당국은 초강력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하고 나선다. 

'첫째는 출산, 둘째부터는 중절수술과 벌금' 내용을 담고 있는 벽화 포스터 [사진=바이두]

1978년 10월 중앙정부는 관련 보고서를 통해 “가임기 여성당 1명, 일부 소수민족의 경우 많아야 2명까지만 낳을 것”을 권고한다. 별다른 효과가 없자 1980년 2월 신화사(新華社)는 ‘중국 인구 100년 전망 보고서’를 인용 “이대로 가면 2050년 중국 인구는 40억 명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1980년 9월에는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부부 당 자녀 1명만 낳을 것을 제의한다.

그리고 1982년 9월 ‘한 자녀 정책’은 공산당 제12기 중앙위원회 보고서에 채택, 그해 12월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됐다. 이전까지 ‘권고’ 수준에 그쳤던 산아제한 정책이 법안으로 성립되면서 강제성을 띠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이 초과출산하면 마을 전체가 중절수술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산아제한 포스터 [사진=바이두]

초강력 산아제한 정책은 중국사회에 태풍같은 변화를 몰고 왔다. 비인권적인 낙태와 자녀 유기는 물론 출생 신고를 못하고 비호적 유민을 양산하는 등 커다란 사회적 부작용이 초래됐다.  

중국 당국은 한 명의 자녀만 낳은 가정에는 ▲직장 승진 기회 ▲급여인상 ▲생필품 지원 등의 혜택을 줬다. 반면 규정을 따르지 않은 가정에는 사회적인 불이익과 징벌이 뒤따랐다.

벌금은 부부의 가처분소득에 따라 산정됐다. 2014년 중국 유명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는 한 여성과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로 아이 3명을 낳았다는 사실이 적발돼 벌금으로 748만7854위안(약 13억 원)을 선고받았다.

벌금을 내기 어려운 가정을 중심으로 영유아 유기 심지어는 인신매매도 이뤄졌다.

지방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에 따른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주민의 낙태 및 불임수술을 강제로 주도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산아제한 정책을 어긴 7개월 된 임산부를 공무원들이 끌고 가 강제로 낙태시킨 일이 알려져 전 세계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산아 제한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차오성유지두이(超生遊擊隊)’ 가정 [사진=바이두]

임신한 산모가 강제 낙태를 피해 산속으로 도망을 가는 ‘차오성유지두이(超生遊擊隊)’도 크게 유행했다. 공무원은 임신 적령기 여성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지 여부를 감시했으며 이웃집이 허락없이 임신을 하는지 감시하기 위한 5호담당제도 시행됐다.

뿐만 아니라 벌금을 내기 어려운 농촌 지역에서는 아이를 낳고도 호적에 올리지 않고 몰래 키우는 ‘헤이하이즈(黑孩子, 검은 아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호적이 없는 이들은 정규 교육을 받을 수도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다. 당시 호적에 못 올린 이런 헤이하이즈가 1억명에 육박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후커우(戶口, 호적)를 원합니다' [사진=상하이하이야오(海摇)로펌]

산아제한 정책 도입 초기 주민의 반발이 커지고 각종 사회 문제가 발생하자 중국 정부는 개선책을 제시한다. 중국은 1984년 19개 성(省)을 대상으로 첫째가 딸이면 둘째를 낳을 수 있게 하는 ‘1.5 자녀 정책’을 펼쳤다. 2002년 9월에는 인구 및 산아제한 법 규정을 개선, 부모가 모두 외동일 경우 2명까지 낳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산아제한 정책이 시행되는 동안 중국의 합계 출산율은 1973년 4.54명에서 1990년에는 2.3명, 2000년에는 1.22명까지 하락했다. 중국 국무원은 “산아제한 정책으로 신생아 수가 4억 명은 줄었다”고 평가했다.

위) 돼지는 많이 키우고 자녀는 적게 낳자 아래) 가난을 끝내는 중절, 부자가 되는 피임 [사진=바이두]

◆4단계: 2014년 이후 '인구 절벽'

시대가 변하면서 저출산 고령화가 큰 사회문제가 됐다.  인구절벽 경고음에 중국 당국이 단계적인 두 자녀 정책을 내놓았지만 역부족이었다. 40년 가까이 실시해온 산아제한 정책에 신생아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2014년 중국 당국은 부모 중 한 명이 외동일 경우 둘째 출산을 허용했다. 일부에서는 두 자녀 정책 전면시행 주장이 나왔지만, 이럴 경우 1년에 4700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나 다시 인구 폭발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주장에 일단 두자녀 전면 허용은 유보됐다.  

그러나 2015년 예상과는 다르게 중국 신생아 수는 1687만 명에 불과, 예상보다 32만 명 적었다.

저출산 노령화로 노동 가능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2016년 한 자녀 정책을 폐지하고 전면적인 두 자녀 정책 시행에 나섰다.

시행 첫해인 2016년 신생아 수는 1786만 명(2011년 이후 최고치)까지 늘어났으나, 2017년에는 1723만 명을 기록해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2018년 중국 본토의 신생아 수는 1523만 명으로 전년보다 200만 명 감소했다. 이는 1960년과 1961년을 제외하고 최저 수준이다. 전망치가 1400~1500만 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최악은 면했지만 하락세에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전문가들은 특히 총인구 수 감소에 우려를 보이고 있다. 2018년 중국의 총인구는 13억9538만 명으로 전년 말 대비 530만 명 증가했다. 2017년(737만 명) 대비 인구증가율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것.

두 자녀 정책 설명 팜플렛 [사진=바이두]

앞서 사회과학원(社會科學院)은 중국 총인구가 2027년 14억4000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를 보일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속도면 2027년 이전에 감소세로 전환될 것”이라며 “런커우훙리(人口紅利, 인구보너스, 인구 증가로 인한 노동력 증대가 가져오는 이익)가 이제 끝났다”며 경제 하락을 예고했다. UN 보고서는 2029년에 가면 중국이 인도에 지구촌 1위 인구대국의 지위를 넘겨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leemr@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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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회장, 시흥R&D캠퍼스 첫 방문 [서울=뉴스핌] 김아영 기자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해 5월 공식 출범한 한화오션 사업장을 처음 찾았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이 20일 '한화오션 중앙연구원 시흥R&D캠퍼스'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김승연 회장(가운데)이 한화오션 시흥R&D캠퍼스를 방문해 임직원들과 오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현장을 둘러본 김 회장은 미국 등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한 초격차 기술경쟁력 확보를 강조했다. 해양 탈탄소 시대를 선도할 그린십(Green Ship) 기술과 방산 기술 혁신으로 조선·해양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글로벌 강자로 자리매김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이사, 손영창 한화오션 제품전략기술원장도 참석했다. 김승연 회장과 김동관 부회장이 한화오션 시흥R&D캠퍼스의 상업용 세계 최대 공동수조를 방문해 시연을 지켜보고 있다.[사진=한화그룹] 한화오션 시흥R&D캠퍼스는 상업용 세계 최대 규모의 공동수조와 예인수조, 국내 유일의 음향수조 등 첨단 시험 설비를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조선·해양·방산 분야 친환경 초격차 기술 개발을 선도하는 핵심 연구 거점이다. 기술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김승연 회장이 시흥R&D캠퍼스를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김승연 회장은 먼저 공동수조(Cavitation Tunnel)를 방문해 연구진의 시연을 지켜봤다. 상업용 세계 최대 규모의 한화오션 공동수조는 길이 62m, 높이 21m의 대형 터널로, 최대 출력 4.5MW 모터와 3600톤의 물을 통해 최대 15m/s의 유속을 형성할 수 있다. 특히, 선박의 추진력을 높이고 수중 방사 소음을 줄이는 연구 성과는 함정의 은밀성과 생존성을 강화하는 방산 기술 개발에도 활용되고 있다. 예인수조를 방문한 김 회장은 임직원들과 함께 수조 내 모형선을 끄는 예인전차에 탑승해 고품질 선박 성능 시험을 참관했다. 한화오션의 예인수조는 길이 300m·폭 16m, 담수량 3만3,600톤으로 세계 최대 규모 최신 시설을 자랑한다. 상선, 함정 등 다양한 선박의 저항, 운동, 조종 성능 등에 맞춤식으로 시험할 수 있다. 김승연 회장이 한화오션 시흥R&D캠퍼스 예인수조를 둘러본 후 임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김 회장은 이 날 임직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여러분은 한화그룹의 자산이자 대한민국 산업의 자산"이라며 "대한민국의 국익과 국격에 기여한다는 뜨거운 사명감을 갖고 연구에 임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더 밝게 빛날 한화의 미래에 조선해양 부문이 가장 앞에 서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한화 가족 모두는 우리 그룹의 일원으로서 함께 나아갈 한화오션의 미래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여러분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과 기술 역량으로 새 시대를 선도해 나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승연 회장은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동일한 형상으로 축소된 프로펠러 모형을 제작하여 다양한 성능을 예측·평가하는 모형제작워크샵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이곳에서 김승연 회장은 한화오션이 수출형 모델로 독자 개발한 2000톤급 잠수함 모형에 'K잠수함 수출로 글로벌 No.1 도약을 기원합니다'라고 적고 친필 서명하며 해외 수출 성공을 기원했다. 한화오션의 2000톤급 잠수함은 현존하는 디젤 잠수함 중 최고로 평가 받는 장보고-III 플랫폼에 기반해 자체 개발한 중형급 잠수함으로 최신 기술과 다양한 요구사항을 적용한 모델이다. 김승연 회장은 직원 식당에서 임직원들과 오찬도 함께 했다.  김승연 회장이 한화오션 시흥R&D캠퍼스를 방문해 임직원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김 회장은 이 날 한화오션 임직원들에게 "한화는 여러분들이 마음껏 연구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든든한 방파제가 될 것"이라며 굳건한 신뢰의 뜻을 전했다. 한화오션은 시흥R&D캠퍼스의 첨단 인프라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해양 솔루션을 개발하고 미래 해양 산업의 변화를 주도하는 글로벌 오션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도약하기 위한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aykim@newspim.com 2024-11-2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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