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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이젠 계획생육] 산아제한 역사속으로... 14억 인구대국, 인구결핍에 신음

기사입력 : 2019년01월28일 10:26

최종수정 : 2019년02월12일 16:34

1949년 이후 신생아 수 최저, 산아제한 정책 무용론 확산
출산독려부터 산아제한까지, 70년 역사 회고

[편집자] 이 기사는 1월 25일 오후 4시43분 프리미엄 뉴스서비스'ANDA'에 먼저 출고됐습니다. 몽골어로 의형제를 뜻하는 'ANDA'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과 도약, 독자 여러분의 성공적인 자산관리 동반자가 되겠다는 뉴스핌의 약속입니다.

[서울=뉴스핌] 이미래 기자 = 2016년 중국은 인구를 늘리기 위해 40년 가까이 지켜온 한자녀 정책을 폐지하고 두 자녀까지 허용하는 정책을 도입했지만 출산율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2018년 신생아 수는 1523만 명으로, 1960년과 1961년 두 해를 빼고 역대 최저로 줄었다. 이에 따라 출생률도 인구 1000명당 신생아 수 10.94명으로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1949년 건국 초기 중국 당국은 '인구가 국력'이라며 출산을 장려했다. 이후 식량 문제와 도시인구 압력에 직면, 강력한 지화성위(計劃生育, 한자녀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했다. 최근 들어서는 인구 증가율이 급감하고 저출산 노령화, 노동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해지자 한자녀 정책 전면 폐지를 검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건국 이후 70년간 중국의 시대별 인구정책 변화를 살펴본다.

◆1단계: 1949~1953년 '多産 애국' 피임약 수입엄금, 낙태 금지

1949년 신중국 수립 직후 중국 당국은 ‘사람의 노력은 대자연도 이긴다’는 뜻의 ‘런딩성톈(人定勝天)’ 구호와 함께 출산을 독려했다. 정부는 “믿을 수 있는 건 사람뿐” “기적은 사람이 이룬다” 등을 제창했다.

특히 중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오쩌둥(毛澤東)은 “사람이 많아야 국력도 강해진다(人多力量大)”며 다산을 적극 권장했다. 이에 따라 중국 위생부(衛生部)는 피임약 수입 금지령을 내리는 것은 물론 낙태를 법으로 엄격하게 단속했다.

‘사람의 노력은 대자연도 이긴다’는 뜻의 ‘런딩성톈(人定勝天)’ 출산독려 포스터 [사진=바이두]

출산독려 정책에 따라 1953년 중국 인구는 6억200만 명을 기록, 정부 예상치를 뛰어넘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 경제사회는 생산력이 낙후된 결과 빠르게 늘어나는 인구를 포용하지 못했고 의식주 의료 교육 취업 등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2단계: 1954~1977년 '오락가락 흐지부지' 인구 급증

급격한 인구 증가로 식량난 등 사회 문제가 대두되자 인구 통제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서서히 제기됐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신인구론(新人口论)을 통해 인구 조절의 필요성을 주장한 전 베이징대학교 총장 마인추(馬寅初)다. 마인추 총장은 식량 증산이 인구 증가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계속 인구가 늘어나면 민생경제는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며 모택동 다산 정책에 문제를 제기했다.

인민일보 1957년 7월 5일자에 실린 마인추의 신인구론 [사진=바이두]

마인추 총장의 주장이 나온 후인 1954년 12월 중국은 첫 인구 및 가족계획 좌담회를 열어 산아제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뜻을 모은다. 중국 공산당은 1956년 9월 8차 전국대표대회(全國代表大會)에서 산아제한 방침을 공식 제시했다.

1957년 2월 마오쩌둥도 “인류는 자기 자신을 컨트롤 해야 한다”는 구호아래 '계획적인 인구 증가'를 주장하며 무조건 다산이 중요하다는 종전 입장에서 한발 물러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1958년 대약진(大躍進, 노동력 집중화 산업을 통한 경제성장)운동이 시행되면서 산아제한 인구 통제 정책은 다시 흐지부지됐다. 대약진운동으로 철강사업 등 노동력 집중 산업이 강조 됨에 따라 인구 증가를 제한해야 한다는 마인추 총장의 주장은 “당 정책에 반하는 이론”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농촌이 부자가 되려면, 아이를 많이 낳아 씨앗을 많이 심고 뿌려야 한다'는 내용의 출산독려 포스터 [사진=바이두]

하지만 대약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고 이후 3년 동안 수천만 명의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하면서 또다시 산아제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대약진 실패로 마오쩌둥이 권력 일선에서 물러나고 류샤오치(劉少奇)주석이 집권했던 1962년 12월 국무원(國務院)은 ‘산아제한 관련 통지문’을 내놨다. 이어 1966년 1월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산아제한 문제 관련 통지문’을 발표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극화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마오쩌둥이 다시 권력 1선에 등장한 시기 인구 증가율은 다소 하락세를 보였다. 문화대혁명 말기인 1975년 기준 일반 도시의 인구 증가율은 1%(1000명당 10명) 수준으로, 농촌은 1.5%(1000명당 15명) 수준으로 하락했다.

당시 중국 사회에 나돌았던 얘기, ‘하나도 적은 건 아니지만, 둘은 딱 좋고, 셋은 많다(壹個不少, 兩個正好, 三個多了)’는 구호는 인구문제및 출산정책에 대한 관점을 잘 보여준다.   

1973년 12월 중국 당국은 ‘전국 계획생육 활동 대회’에서 ‘완 시 샤오(晚稀少)‘ 원칙을 강조하며 산아제한 정책을 설파했다. 완(晚, 늦다)은 남자 25세 여자 23세가 넘어 결혼해야 한다는 뜻을, 시(稀, 드문드문)는 출산과 임신은 4년 정도 간격을 둬야 한다는 뜻을, 샤오(少, 적다)는 최대 2명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당국은 한자녀정책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사진=바이두]

부분적으로 산아제한 정책이 시행되긴 했지만 전체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덩샤오핑(鄧小平)이 집권한 1978년 중국 인구는 약 10억 명으로, 1954년 대비 3억5000만 명이 증가했다. 지방정부가 초과 출산 케이스를 일부 누락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만큼 실제로는 더 많았을 가능성이 크다.

학자들은 “당시 마오쩌둥이 마인추의 주장을 좀 더 새겨들었다면 인구가 10억 명까지 늘어나진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첫째는 출산, 둘째는 중절수술과 5000위안 벌금, 셋째는 2만 위안 벌금 [사진=펑황왕]

◆3단계: 1978~2013년 초강력 '산아 제한', 초과출산 발각시 마을전체 중절 수술

당시 중국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후폭풍으로 의식주(衣食住) 및 경제발전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인민공사(人民公社, 농촌행정 및 경제조직 일체화) 실패 등의 이유로 당시 중국의 농업 생산율은 저하됐고 만성적인 식량 공급 부족에 시달렸다. 1976년 문화대혁명 종결 이후 경제에 주력했지만 경제개발에 필요한 외화가 너무 적어 이 또한 역부족이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당국은 초강력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하고 나선다. 

'첫째는 출산, 둘째부터는 중절수술과 벌금' 내용을 담고 있는 벽화 포스터 [사진=바이두]

1978년 10월 중앙정부는 관련 보고서를 통해 “가임기 여성당 1명, 일부 소수민족의 경우 많아야 2명까지만 낳을 것”을 권고한다. 별다른 효과가 없자 1980년 2월 신화사(新華社)는 ‘중국 인구 100년 전망 보고서’를 인용 “이대로 가면 2050년 중국 인구는 40억 명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1980년 9월에는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부부 당 자녀 1명만 낳을 것을 제의한다.

그리고 1982년 9월 ‘한 자녀 정책’은 공산당 제12기 중앙위원회 보고서에 채택, 그해 12월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됐다. 이전까지 ‘권고’ 수준에 그쳤던 산아제한 정책이 법안으로 성립되면서 강제성을 띠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이 초과출산하면 마을 전체가 중절수술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산아제한 포스터 [사진=바이두]

초강력 산아제한 정책은 중국사회에 태풍같은 변화를 몰고 왔다. 비인권적인 낙태와 자녀 유기는 물론 출생 신고를 못하고 비호적 유민을 양산하는 등 커다란 사회적 부작용이 초래됐다.  

중국 당국은 한 명의 자녀만 낳은 가정에는 ▲직장 승진 기회 ▲급여인상 ▲생필품 지원 등의 혜택을 줬다. 반면 규정을 따르지 않은 가정에는 사회적인 불이익과 징벌이 뒤따랐다.

벌금은 부부의 가처분소득에 따라 산정됐다. 2014년 중국 유명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는 한 여성과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로 아이 3명을 낳았다는 사실이 적발돼 벌금으로 748만7854위안(약 13억 원)을 선고받았다.

벌금을 내기 어려운 가정을 중심으로 영유아 유기 심지어는 인신매매도 이뤄졌다.

지방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에 따른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주민의 낙태 및 불임수술을 강제로 주도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산아제한 정책을 어긴 7개월 된 임산부를 공무원들이 끌고 가 강제로 낙태시킨 일이 알려져 전 세계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산아 제한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차오성유지두이(超生遊擊隊)’ 가정 [사진=바이두]

임신한 산모가 강제 낙태를 피해 산속으로 도망을 가는 ‘차오성유지두이(超生遊擊隊)’도 크게 유행했다. 공무원은 임신 적령기 여성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지 여부를 감시했으며 이웃집이 허락없이 임신을 하는지 감시하기 위한 5호담당제도 시행됐다.

뿐만 아니라 벌금을 내기 어려운 농촌 지역에서는 아이를 낳고도 호적에 올리지 않고 몰래 키우는 ‘헤이하이즈(黑孩子, 검은 아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호적이 없는 이들은 정규 교육을 받을 수도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다. 당시 호적에 못 올린 이런 헤이하이즈가 1억명에 육박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후커우(戶口, 호적)를 원합니다' [사진=상하이하이야오(海摇)로펌]

산아제한 정책 도입 초기 주민의 반발이 커지고 각종 사회 문제가 발생하자 중국 정부는 개선책을 제시한다. 중국은 1984년 19개 성(省)을 대상으로 첫째가 딸이면 둘째를 낳을 수 있게 하는 ‘1.5 자녀 정책’을 펼쳤다. 2002년 9월에는 인구 및 산아제한 법 규정을 개선, 부모가 모두 외동일 경우 2명까지 낳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산아제한 정책이 시행되는 동안 중국의 합계 출산율은 1973년 4.54명에서 1990년에는 2.3명, 2000년에는 1.22명까지 하락했다. 중국 국무원은 “산아제한 정책으로 신생아 수가 4억 명은 줄었다”고 평가했다.

위) 돼지는 많이 키우고 자녀는 적게 낳자 아래) 가난을 끝내는 중절, 부자가 되는 피임 [사진=바이두]

◆4단계: 2014년 이후 '인구 절벽'

시대가 변하면서 저출산 고령화가 큰 사회문제가 됐다.  인구절벽 경고음에 중국 당국이 단계적인 두 자녀 정책을 내놓았지만 역부족이었다. 40년 가까이 실시해온 산아제한 정책에 신생아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2014년 중국 당국은 부모 중 한 명이 외동일 경우 둘째 출산을 허용했다. 일부에서는 두 자녀 정책 전면시행 주장이 나왔지만, 이럴 경우 1년에 4700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나 다시 인구 폭발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주장에 일단 두자녀 전면 허용은 유보됐다.  

그러나 2015년 예상과는 다르게 중국 신생아 수는 1687만 명에 불과, 예상보다 32만 명 적었다.

저출산 노령화로 노동 가능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2016년 한 자녀 정책을 폐지하고 전면적인 두 자녀 정책 시행에 나섰다.

시행 첫해인 2016년 신생아 수는 1786만 명(2011년 이후 최고치)까지 늘어났으나, 2017년에는 1723만 명을 기록해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2018년 중국 본토의 신생아 수는 1523만 명으로 전년보다 200만 명 감소했다. 이는 1960년과 1961년을 제외하고 최저 수준이다. 전망치가 1400~1500만 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최악은 면했지만 하락세에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전문가들은 특히 총인구 수 감소에 우려를 보이고 있다. 2018년 중국의 총인구는 13억9538만 명으로 전년 말 대비 530만 명 증가했다. 2017년(737만 명) 대비 인구증가율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것.

두 자녀 정책 설명 팜플렛 [사진=바이두]

앞서 사회과학원(社會科學院)은 중국 총인구가 2027년 14억4000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를 보일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속도면 2027년 이전에 감소세로 전환될 것”이라며 “런커우훙리(人口紅利, 인구보너스, 인구 증가로 인한 노동력 증대가 가져오는 이익)가 이제 끝났다”며 경제 하락을 예고했다. UN 보고서는 2029년에 가면 중국이 인도에 지구촌 1위 인구대국의 지위를 넘겨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leemr@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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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m '고도제한' 양천구 울다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고도제한 기준 개정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갑작스러운 고도제한으로 재건축에 큰 제약을 받게 된 서울 양천구 목동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 그동안 대부분의 면적이 제한을 받던 강서구 주민들은 이번 조치를 환영하면서 서울시와 정부 모두 곤란한 상황에 처한 모습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공항 고도제한 국제기준 개정안 내용. [그래픽=김아랑 미술기자] ◆ "이제 재건축 막 올랐는데"… 90m 고도제한에 목동 주민들 뿔났다 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오는 4일 ICAO 국제기준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이에 따른 수혜 및 피해지역 간 온도차가 극명히 엇갈리고 있다. ICAO는 국제 민간항공 항공기술·운송·시설 등을 관할하는 유엔 산하 전문기구다. 올 4월 ICAO는 2030년 11월 시행을 목표로 고도제한 국제기준 개정안을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현재 일률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장애물 표면을 향후에는 침투금지표면과 평가표면으로 이원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공항 주변 지역은 '공항시설법'에 따른 장애물 제한 표면지역으로 설정돼 건축물을 높게 지을 수 없었다. '제한표면'(OLS) 규정에 따라 안전 운항을 위해 항공기 성능이나 비행 절차를 고려하지 않고 건축물 높이를 획일적으로 규제해서다. 활주로 반경 4㎞ 이내 건물은 45m를 초과하지 못해 13층 이상의 아파트를 짓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노후 주거지의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에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앞으로는 이를 '금지표면'(OFS)과 '평가표면'(OES)으로 이원화한다. 금지표면은 항공 안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절대적 금지구역이다. 평가표면은 건물 높이를 규제한 금지 표면을 축소하고, 항공학적 검토를 거쳐 건축물 높이를 탄력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곳이다. 공항별 여건에 따라 평가표면을 축소하거나 완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개정안상 평가표면은 현행 기준보다 확대된다. 국내에 적용되면 김포공항 반경 약 11∼13㎞ 내가 평가표면으로 분류돼 45·60·90m 등으로 고도를 제한할 수 있다. 이 경우 원래는 고도제한 대상에 해당되지 않았던 양천구는 영등포, 마포, 부천 등이 평가표면에 포함된다. 고도제한 요건 수정으로 가장 마음이 급해진 건 목동신시가지 소유주들이다. 현재 1~14단지 모두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6단지는 최고 49층, 7단지는 최고 60층을 목표로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최고 층수가 49층이면 높이로는 약 180m이므로 90m 고도제한이 설정되면 설정 범위내 모든 건축물은 30층 이하로만 지어야 한다.   목동 14개 단지 재건축 조합 등으로 구성된 '목동 재건축 연합회'(목재련)은 이달 28일 ICAO 개정안에 대한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상용 목재련 회장은 "항공기술 발전에 따라 규제가 완화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개정안은 주민들의 오랜 염원을 짓밟는 퇴행적 조치"라며 "이는 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 기회와 재산권을 사실상 봉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개정안이 현실화되면 목동 재건축 사업의 동력이 상실되고 수도권 전체 도시 재생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국토부에 김포공항 이전 재검토나 ICAO 개정안에 대한 공식 반대 입장 표명을 요청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개정안 국내 도입 시 항공기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도 합리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계획"이라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확보하고, 국내공항 여건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 "재산권 행사 좀 하자"는 강서구… 중간에 낀 서울시 '난감' 양천구와 반대로 강서구는 ICAO 개정안에 대한 환영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강서구는 현재 전체 면적의 97.3%가 고도제한 구역으로 설정돼 있다. 관련 규정이 개정되면 절대적 금지표면 대비 조건부 평가에 따라 건물을 높이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금보다는 높은 층수로 정비사업이 가능하다. 진교훈 강서구청장은 지난달 고도제한 완화 관련 세미나를 열고 "1958년 김포국제공항 개항 이후 강서구는 도시 발전과 재산권 행사에 심각한 제약을 받아왔다"며 이번 국제기준 개정이 강서구 56만 주민의 염원을 담아 합리적이고 조속하게 추진되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서울 내 자치구가 상반된 처지에 놓이면서 서울시도 향후 정책 방향을 고심하는 모습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0일 목동6단지를 방문해 재건축 속도를 높인다면 ICAO 개정안 적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목동 재건축 단지가 개정안 시행이 예정된 2030년 안에 사업시행계획인가 단계까지 모두 마친다면 제도 변경 사정권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오 시장은 "아직 고도제한 개정 관련 세부 내용이 완전히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8월부터 ICAO와 국토부 사이 소통을 통해 최종 규정안 협상까지 1년 정도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토부가 재건축이 진행되는 지역의 재산적 피해가 발생하는 방향으로 결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서울시 또한 재건축 추진 단지가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강력히 건의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전문가 사이에선 고도제한 관련 규정 개정과 재건축 사업 사이 균형점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정비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주택 공급량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지역 전체의 자산 가치와 지방세수 증가, 인구유입 등에 효과가 있으나 그 과정에서 비행 안전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김영록 신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제한된 면적 하에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 저하는 해당 지역 개발의 결정적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장애물제한표면 하에서의 법규상 각종 제한까지 더해지면 지역 노후화의 대표 원인이 될 수 있다"며 "고도완화가 없이 특정 지역 전체의 경제적 이익이 상실된다면 항공항적 검토를 바탕으로 한 고도제한 규정을 손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성환 한국항공우주법연구소 대표는 "일본과 대만은 도심에 있는 비행장 주변의 공역을 재설계함으로써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비행안전을 추구하고 있다"며 "항공기와 관제 기술의 급속한 발달을 따라잡지 못하는 구식 정책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2025-08-0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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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공모' 이상민 前 장관 구속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12·3 비상계엄' 당시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를 지시한 혐의 등을 받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정재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이 전 장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죄를 범했다고 인정할 상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1일 영장을 발부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사진=뉴스핌DB] 특검은 지난달 28일 내란중요임무종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위증 등 혐의로 이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이 전 장관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적인 계엄 선포를 사실상 방조하고,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 지시를 전달해 국민의 생명·안전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특검은 이 전 장관이 행안부 장관으로서 외청 기관장인 소방청장 등에게 의무 없는 단전·단수를 지시한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도 봤다. 특히 이와 관련해 특검은 그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변론기일에 나와 단전·단수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발언한 것을 위증이라고 판단해 이 혐의도 적용했다. 그동안 이 전 장관은 혐의를 전면 부인해 왔다.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단전·단수 등 지시를 받은 적이 없으며, 행안부에는 소방청에 대한 지휘 권한이 없다는 것이 이 전 장관의 주장이었다. 특검은 이 전 장관의 주장을 반박하고 구속 수사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해 160장의 파워포인트(PPT)를 준비하고, 앞서선 300여쪽의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특검이 이 전 장관의 신병을 확보하면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 다른 국무위원들에 대한 수사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 전 장관 구속은 이른바 '안가(안전 가옥) 회동 의혹' 관련자 중 첫 신병 확보인 만큼, 일각에선 특검이 근시일 내 나머지 안가 회동 멤버에 대해서도 소환조사를 진행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안가 회동 멤버는 이 전 장관과 김주현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이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법률가 출신 최측근으로, 계엄 해제 이후 안가에 모여 계엄 직후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hyun9@newspim.com 2025-08-01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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