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김정은, 北 경제 잠재력 잘 안다"
문성묵 "에둘러서 현실 직시하라는 암시"
남성욱 "비핵화 진전돼야 경제발전 있다는 의도"
조성렬 "트럼프 메시지 긍정적이지만…의미 부여 어려워"
[서울=뉴스핌] 노민호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당근과 채찍’이라는 대미(對美) 메시지를 복합적으로 담았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미국과 새로운 관계 수립의 필요성과 이른바 ‘4불(不. 핵무기 불 제조·실험·사용·전파) 원칙’을 천명하며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인 동시에, 제재·압박이 계속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 “나도 그를 만나고 싶다”며 긍정적인 답을 내놨다. 다만 북한의 경제 잠재력을 언급하며 선(先) 비핵화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지적이다.
결국 북미 정상 간 대화와 관계 개선 모멘텀은 유지되고 있는 모양새나, 빅딜이 성사될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오찬 후 함께 걷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트럼프 “김정은, 北 경제 잠재력 잘 알고 있어”…우회적인 압박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PBS 뉴스를 인용하며 “김 위원장은 핵무기를 만들거나 실험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를 다른 국가에 제공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며 “나 역시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북한이 훌륭한 경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깨닫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새로운 길 모색 발언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전날 신년사에서 “미국이 (중략)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핵개발로의 회귀’라는 해석이 나왔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의 상응조치가 없을 시 다시금 핵무장과 개발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발언이라는 것이다.
이에 근거,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경제 잠재력 언급은 김 위원장에 대한 우회적인 경고 메시지라는 분석을 내놨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핵을 내려놔야 우리가 제재도 해제해줄 수 있고 그래야 그 무궁한 잠재력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이라며 “에둘러서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도 “북한이 자력갱생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대북제재로 인해 많이 아프다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경제발전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계속 경제제재를 가하겠다는 의중이 담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본부 청사 내 집무실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사진=노동신문] |
◆ “트럼프 메시지 긍정적…김정은 ‘새 길 모색’ 발언, 과잉해석 자제해야”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는 긍정적이나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부분이 있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아직 섣부르다는 지적도 있다.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늘 한 얘기만을 가지고는 판단하기 어렵다”며 “첫 반응으로서는 나쁘지 않다. 다만 미 국무부가 아직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고 있는데 분석·대응책 마련에 들어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 전 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의 새로운 길 모색 발언을 두고서는 “플랜B라는 해석은 잘못된 접근”이라며 “꼭 뒤로 회귀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닌 (비핵화 조치 진전에) 나아가지 않겠다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불어 북중관계를 고려했을 때 북한이 다시 핵을 개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조 전 연구위원은 “문제는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라며 “미국이 화답을 하면 비핵화 진전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금년에도 비핵화 진전은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이 내놓을 수 있는 상응조치와 관련해서는 “인도적 지원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는 유인책으로서는 미흡하다고 본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적어도 어떤 조건에서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는 것도 비핵화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 “트럼프 세가지 선택지 있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로 올해 북한 당국의 운영 방침이 확고해졌다. 이에 따라 북미 간 교착국면이 거둬지는지 여부는 지금 당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에 달렸다는 지적이다.
남성욱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세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알맹이 없는 정상회담 개최 △대북제재 완화 등 북한 요구 수용 △교착국면 지속하면서 회담 연기 전략을 펼치는 것 등이다.
남 교수는 “실질적인 성과가 없는 6.12 합의 수준의 협의를 반복하는 선전용 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다”며 “아니면 제재 완화와 종전선언 등 북한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북한이 조건을 안 바꾸면 물러서지 않는다는 전략으로 회담을 자꾸 연기할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선(先)비핵화 후(後)보상이라는 원칙이 유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성묵 센터장은 “제재 완화는 미국의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독자 대북제재는 법령으로 정해진 것이고 유엔 안보리 결의는 상임이사국(미국·영국·중국·러시아·프랑스)의 전원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센터장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 제재를 해제한다면 오히려 비핵화가 어려워지는 길로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설사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모른다고 가정해도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