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家 위한 순환출자, 계열사 간 연결고리 취약
SK·삼성·현대차 등 재벌기업이 주 타깃
타이거·소버린·칼 아이칸 등 수천억 시세차익 챙겨
2016년 이후 토종 행동주의펀드도 잇따라 등장
‘주주 권한 강화’ 내세우며 존재감 어필
[서울=뉴스핌] 김민수 기자 = 지난주 국내 사모펀드 KCGI, 일명 강성부 펀드가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경영권 확보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과거 국내 기업에 대한 행동주의펀드의 공격 사례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기업 경영에 적극 관여하는 행동주의펀드의 등장은 외국계 헤지펀드에서 시작됐다. 전 세계 기업을 투자 대상으로 삼는 이들은 지배구조상 국내 기업들이 지닌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천문학적인 시세차익을 거둔 뒤 유유히 빠져나갔다.
외국계 헤지펀드와 국내 기업의 첫 만남은 2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미국계 헤지펀드 ‘타이거펀드’는 SK텔레콤 지분 6.6%를 확보해 다른 우호지분과 연합,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설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 과정에서 경영진 교체를 시도하는 등 실제 행동에 나섰고, SK그룹은 계열사를 동원해 타이거펀드가 보유한 SK텔레콤 주식을 전량 매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보유 지분을 모두 매각한 타이거펀드는 약 6300억원의 시세차익을 얻고 떠났다.
이후 SK그룹은 2003년 글로벌 사모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의 공격에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뤘다. 당시 SK그룹은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의 분식회계와 SK증권 관련 부당 내부거래 등으로 최태원 회장이 검찰에 소환되는 등 경영 공백 우려가 고조되던 상황이었다. 이 때 소버린이 ㈜SK 지분 14.99%를 확보해 2대주주로 올라섰고 이사진 총사퇴, 주요 계열사 매각, 최태원 일가 퇴진, 주주배당 등을 요구하며 경영진 압박에 나선 것이다.
이에 SK측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을 뿐 아니라 백기사 모집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결국 2004년 3월 SK 주주총회에서 최태원 회장이 승리했지만, 이듬해 소버린은 1조원에 가까운 시세차익을 남기고 SK 지분을 모두 정리했다.
2004년 삼성물산을 대상으로 적대적 M&A를 시사한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 2006년 KT&G 지분 참여로 목소리를 높인 칼 아이칸도 2000년대 중반 한국시장을 뒤흔든 행동주의펀드의 대표적 사례다.
헤르메스는 삼성물산 지분 5%를 사들여 우선주 소각 등을 요구했으나 돌연 보유지분을 모두 청산하고 380억원의 차익을 거둬 한국을 떠났다. 칼 아이칸 역시 또 다른 헤지펀드 스틸파트너스와 연합해 KT&G 지분 6.59%를 매입한 사외이사를 통해 자회사 매각을 요구하는 등 경영에 개입했고, 이듬해 KT&G가 자사주 소각 등 최대 2조8000억원 규모의 주주환원정책에 나서자 1년만에 약 1500억원의 차익을 실현하고 지분을 매각했다.
최근에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에 개입해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엘리엇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두 회사의 합병을 반대하는 주주들을 규합해 주주총회에서 실력 행사에 나섰고, 올해는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빌스 분할합병에 반대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도를 좌초시키는데 성공했다.
한편 2006년 한국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펀드)에서 시작된 한국형 행동주의펀드 활동 역시 활동 범위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라자드자산운용이 내놓은 한국지배구조펀드는 당시 소액주주운동으로 유명한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투자 고문을 맡아 화제가 됐다. 이들은 태광그룹과의 대립에서 승리하는 등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8년 40% 이상 손실을 보며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결국 2012년 보유주식을 모두 유동화한 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16년에는 라임자산운용이 국내 민간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와 의기투합해 ‘만든 라임-서스틴데모크라시’ 사모펀드를 선보였고, 2017년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과 머스트자산운용, 올해는 KB자산운용과 플랫폼파트너스자산운용 등이 잇따라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플랫폼파트너스는 맥쿼리인프라 펀드에 보수 인하 및 운용사 교체를 요구하며 한국 행동주의펀드 역사에 한획을 그었다는 일각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mkim0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