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무·매미가 전시장으로 들어온 이유…8월2일까지 PKM 갤러리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한옥이요? 한옥에서 살면 불편할 것 같아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구현모(44) 작가는 시골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요즘엔 현대식으로 지은 한옥이 있다고 되물으니 "조선시대 기왓집, 한옥을 생각했다"고 답했다.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한옥살이는 불편하다지만, 자연과 공존하고 싶은 본능을 가진 구현모 작가다. 역설적인 생각을 가진 그의 작품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구현모 작가 2018.06.18 89hklee@newspim.com |
구현모 작가의 머릿속엔 이분법적 사고가 공존한다. 자연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와 구름을 좋아하나, 도심을 벗어난 생활은 힘들다는 그의 이분법적 사고는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인공과 자연, 원리와 현상, 서양과 동양, 실재와 가상이 공존한 결과로 나타난다.
PKM갤러리에서는 오는 20일부터 구현모 작가의 개인전 '구현모: 후천적 자연'이 열린다. 4년 만의 개인전이다.
전시장의 벽에는 달이 떠 있다. 지구본에 칠판의 색을 내는 검정 페인트에 석고 가루를 녹여 페인팅하고, 무늬를 그려 달을 만들었다. 또 다른 벽면에는 황동과 나뭇가지를 작품이 보인다. 나뭇가지와 황동을 어떻게 붙였나 궁금해하던 찰나, "실제 나뭇가지가 아니다"라고 구현모 작가가 알려줬다. 황동으로 주물 작업한 나뭇가지였던 것. 자연과 인위적인 것을 하나의 몸체에서 볼 수 있는 작품 '젤코바(Zelkova, 느티나무)'다. 우리는 달을 보고 나무를 보지만, 달이 아니고 나무가 아니다. 실재가 아니다.
Cloud, 2016-2018, (Dimension variable) 36x40x25cm [사진=PKM갤러리] |
"자연이라는 개념이나 상징을 반영한 작품이 아닌 완결된 오브제 자체로 봐주세요. 자연을 차용한 작품이 아닙니다. 인위적인 것, 자연적인 것을 구분지은 건 철저히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부터죠. 인간의 삶에 스민 이분법적인 개념을 한 오브제에 담아낸 거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도시를 숲으로 표현하듯, 대도시도 자연환경일 수 있습니다."
'구름'이라는 작품에 대해 구 작가는 "구름을 좋아한다. 우리 아이 이름도 '구름'"이라며 활짝 웃었다. 작품 '구름' 역시 자연스러움과 인위적인 느낌을 오간다. 창틀에 붙은 우레탄폼으로 자연적이면서 반환경적인 형태의 구름을 구성했다.
그는 "구름이 지상으로 내려와 물질화된 것"이라며 "내 앞에서 물체로 볼 수 있게 한 느낌을 갖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연을 물체화한 계기를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구현모 작가 2018.06.18 89hklee@newspim.com |
“자연을 물체화한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사람들이 새를 집의 새 장 안에 가둬 놓는 것, 나무를 정원으로 들여놓는 것, 방안에 분재를 만드는 것처럼 제 마음에 그런 욕구가 있었어요. 제 본능이죠. 그렇게 구름, 번개, 나무와 달까지 집 안으로 들어왔어요. 하늘에 나는 예쁜 새를 내 집에 들이고 싶은 그 마음이 제 안에 있었던 거죠."
구 작가의 작품 크기는 세로가 10cm이거나 그보다 더 작은 경우도 있다. '하우스(House)', '시카더(Cicada, 매미)' 등이다. 구 작가는 작품을 통해 상상이 되게끔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그래서 작품 설치도 일부러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볼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꾸렸다.
"작품을 놓은 테이블이 관람객의 눈높이에 있어요. 작품을 올려다보면서 실재로 상상이 되게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죠. 실제 크기의 바윗덩어리를 올려놓을 순 없잖아요(웃음). 크게 하면 비용도 많이 들고 수학적인 계산도 달라지죠. 작게 만들면 구조, 역학을 따지지 않고 느낌을 살리면 실용적이고 초현실적인 표현들이 더 가능해집니다. 물질의 질감, 빳빳함, 모양 등이 살아나죠."
Zelkova, 2018, (Dimension variable) 나뭇가지를 황동으로 주물한 작품. 나뭇가지형태와 황동이 이어져있음. House, 2016, (10 x 10 x 17.6 cm) [사진=PKM갤러리] |
그는 3D 프린팅 기술이 활발한 지금도 자신의 손을 믿는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설계방식, 물성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 방식이 '동양'적이라는 의미와도 이어진다.
"3D 프린팅은 설계한 명령대로 나오죠. 제 작업방식을 학술대로 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맞게 변화 가능성이 있어요. 제 작업 방식이 '한국적'이라고 느껴졌던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독일 유학을 갔을 때였어요. 서양인들은 대체로 설계한 대로 건축물을 지어요. 반면 한옥은 설계보다 상황이 우선이죠. 바위가 있거나 비탈이 졌으면 그곳에 나무를 대고, 다음에 나무 수치를 냅니다. 철저히 귀납적인 방식인 거죠. 그 방식이 제게 더 맞고, 저는 3D 프린팅보다 제 손을 더 믿습니다."
'구현모: 후천적 자연'은 오는 20일부터 8월3일까지 PKM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