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정부, 자국 제약 산업 보호 '속내'.. 업계 대응 한계
식약처 관계자 "베트남과 개정안 협상 필요, 이번 달 논의"
[서울=뉴스핌] 김유림 기자 = 베트남 정부가 의약품 입찰규정 개정안을 변경하고 오는 7월 시행을 예고하면서, 우리 제약바이오업계 수출 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이 간단치 않기 때문에, 당국의 외교적 현안으로도 부상했다.
8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베트남 당국의 개정안은 의약품 입찰 시장에서 미국과 일본, 유럽에서 인정받은 의약품만 제조품질관리기준(GMP) 1~2등급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은 제외됐다.
기존에는 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PIC/S) 가입국을 2등급으로 인정함에 따라 우리나라 의약품 입찰 등급은 2등급이었다. 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한국은 6등급으로 하락하게 된다.
◆ 베트남 정부 진짜 속내는 '자국 산업 보호'
베트남 경제 중심지 호찌민 거리. <사진=게티이미지> |
베트남은 중국처럼 공산당 사회주의 국가 체제이며, 의약품 수입 계약을 민간에서 진행하지 않고 중앙정부가 주도한다. 해외 제약사들은 1~6등급을 받아 입찰에 참여하는데 등급이 높을수록 공급 계약을 따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예고된 개정안이 시행돼 한국 제약사의 입찰 등급이 하향 조정되면, 베트남 수출 물량이 70~80%까지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존 2000억원에서 절반 이상 축소될 수 있다는 얘기다.
베트남 당국은 개정안 추진 발표 배경으로 의약품 품질 수준을 올리려는 조치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제약업계는 베트남 정부의 진짜 속내는 ‘자국 의약품 산업 보호’가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로 들어오는 해외자본으로 인해 가장 중요한 보건 제약 산업이 외국인들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주요 목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 해외 거대 자본이 베트남 제약회사의 지분을 잇달아 매입하면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 4대 제약회사 중 하나인 다이쇼(Taisho)는 하우장약국의 지분 24.4%를 보유, 미국 애보트(Abbott)는 도메스코(Domesco) JSC의 지분 51.69%를 인수하면서 대주주가 됐다. 외국계 사모펀드 LK GHC는 특수목적회사 ‘Super Delta Pte. Ltd’를 설립해 베트남 최대 제약사 트라파코 지분을 사들여 주요 주주에 올랐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들이 지난달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베트남 보건부 국장 등과 미팅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제약바이오협회> |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특히 제약기업들은 정부 기관인 식약처가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베트남 당국을 상대로 협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베트남 정부와 협의를 진행해야 하므로 외교적인 문제나 마찬가지”라면서 “이달 베트남으로 출국해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제약사 앞다퉈 ‘포스트 차이나’ 진출
국내 제약사들은 ‘포스트 차이나’로 주목받고 있는 베트남 시장 선점을 위해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BMI에 따르면 2016년 베트남 제약시장 규모는 약 47억달러(5조3,000억원) 수준이다. 19조원대인 국내 제약시장과 비교하면 규모가 25~30%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난해 시장규모가 전년 대비 12% 성장한 데 이어 2020년까지 연평균 11% 성장, 2020년에는 70억달러(7조9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베트남은 의약품 수입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지난해 프랑스, 인도, 독일, 미국 등 전 세계에서 약 28억달러(2조9000억원) 규모로 들여왔다.
우리나라는 LG화학, 삼진제약, 조아제약 등 30여 곳 제약사가 진출한 상태다. 베트남 의약품 수입국 중 3위에 해당하는 규모이며, 연간 20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중 대웅제약, 대원제약, 대화제약, 삼일제약, CJ헬스케어, 유한양행, JW중외제약, 종근당 등은 대표사무소나 법인을 설립했다. 또 한국유나이티드와 신풍제약, 삼일제약은 이미 공장 설립을 통해 현지화에 돌입하거나 추진 중이다.
ur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