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상품성 없는 정책성보험 판매 강요 멈춰야
[뉴스핌=김승동 기자] 신상품이 나왔다. 하지만 판매한다는 걸 슬그머니 감춘다. 벌써부터 실패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달부터 판매를 시작한 유병자실손보험에 대한 얘기다.
유병자실손보험은 이번 정권 출범 초기부터 기획한 정책성상품이다. 금융당국은 갈수록 증가하는 당뇨·고혈압 등 만성질환 유병자의 ‘의료비 보장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개발을 추진했다.
보험사들은 건강한 사람이 가입하는 ‘표준형’도 손해율이 120%가 넘는다며 유병자를 대상으로 실손보험을 개발하면 손해율이 더 높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보험료로 버는 돈보다 보험금으로 나가는 돈이 더 많아 손해를 본다는 것.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손해율이 높은 단독형만 따로 판매하고, 사업비는 최대한 줄이라고 한발 더 나아가 선을 그었다.
우리나라는 법치국가이자 자본주의이며, 보험사는 기업이고 설계사는 경제적 사고를 한다. 행정은 법률을 근거로 이뤄져야 하며, 자본주의에서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법치국가 자본주의 내에 있는 기업에게 금융당국이 법률적 근거 없이 손해를 보라고 지시한 셈이다.
결국 보험사들은 꾀를 낼 수밖에 없다. 판매할수록 손해인데 안 팔 수 없으니 못 팔게 할 수밖에 없는 것. 이에 보험사는 실손보험 판매 실적을 시책(판매 보너스)에서 제외하고 수당을 줄이는 방법을 고안했다.
가령 10만원 이상 보험을 판매하면 수당은 물론 시책을 추가지급하는 프로모션이 걸렸다. 이전에는 8만원의 암보험에 2만원의 실손보험을 판매하면 시책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손보험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10만원 이상의 보험을 상품을 팔아야 시책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보험료 규모를 키우기 위해 불필요한 담보까지 함께 설계하게 되는 것.
또 대부분의 보험은 보험료를 기준으로 수당을 지급한다. 10만원의 보험을 계약하면 1만원 수당을 지급하고 20만원짜리는 2만원을 지급하는 식이다. 하지만 유병자실손보험은 보험료는 표준형인 일반실손보험보다 2배 이상 비싸지만 수당은 같거나 더 낮다. 10만원짜리 보험을 팔아도 월 1000원 정도의 수당만 받게 된다.
요컨대 보험사는 이 상품을 판매하면 손해 볼 가능성이 크다. 설계사는 상품을 팔아도 시책 보너스를 받을 수 없고 수당도 적다. 판매자에겐 매력이 없는 셈이다.
보험은 대표적인 푸시마케팅 상품이다. 판매자가 적극적으로 권해야 계약이 성사된다. 그런데 판매자가 권할 이유가 없으니 가입자도 매우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병자실손보험이 아무리 좋아도 가입자가 적어 혜택받는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결국 노후실손보험처럼 애물단지 상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당국은 한국이 법치국가이며 자본주의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상품 개발이나 사업비 책정은 자본주의에선 기업에게 있다는 것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해도 혜택받는 사람이 없다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뉴스핌 Newspim] 김승동 기자 (k8709489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