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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제천 참사 등 잇단 화재 사고에도 관련법안 '방치'

기사입력 : 2017년12월26일 16:56

최종수정 : 2017년12월26일 16:56

'소방차 막는 불법 주차 방지' 법안 등 장기 계류
책임론 불거지자 "소방 안전 시스템 개선" 한 목소리

[뉴스핌=조현정 기자] 지난 21일 충북 제천 화재 참사에서 희생자가 크게 늘어난 주요 원인으로 부족한 소방 안전 시스템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화재 당시 불법 주차 차량 때문에 인명 구조가 지연된다는 지적이 오래 전에 제기됐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법안이 이미 발의된 상태임에도 일부 관련법안은 아예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하고 상임위원회에 계류중이라는 점이다. 무분별한 불법 주차로 인한 소방차 도착 지연은 충북 제천 화재를 비롯해 2015년 의정부, 2010년 부산 해운대 화재 등 대형 화재 때마다 피해를 키운 대표적인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지난 21일 충북 제천시의 한 스포츠시설 건물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진화하고 있다. <사진=제천소방서>

◆ 화재 참사 반복…국회에 발 묶인 소방 법안 '수두룩'

26일 국회 의안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해양수산부 장관인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월 소방차 등 긴급 자동차의 통행을 방해해 대형 참사를 초래할 수 있는 곳을 주정차특별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도로 모퉁이, 버스 등 대중교통 정류지와 소방 관련 시설 주변을 별도로 표시하고 주정차 위반 시 범칙금과 과태료를 일반적인 경우의 2배로 부과해 엄격히 관리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아직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행안위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 주택에 소방차 전용 주차 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소방기본법 개정안'도 계류돼 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발의한 개정안 역시 올해 2월 상정만 된 채 10개월 동안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 개정안 역시 주차 구역이 혼잡스러워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예방하자는 취지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119 구조대가 작업을 하는 상황에서 물적 피해가 발생하면 해당 소방관이 직접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겨 적극적인 구조 활동이 어렵다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도 제시돼 있다.

소병훈 민주당 의원은 최근 소방공무원이 소방 활동 등을 하다가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을 경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피고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만 한정하고 해당 소방관은 제외하는 내용의 소방기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또 김성원 한국당 의원은 지난 9월 국가가 시도별 소방장비 실태조사를 통해 재정 지원에 나서도록 하는 내용의 소방기본법 개정안을 냈다. 소방 설비와 인력이 지역별로 편차가 큰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다. 하지만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행안위 관계자는 "소방 관련 법안들이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다"며 "더 이상 법안 논의를 미루지 말고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한 재발 방지 대책과 조속한 입법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5일, 충북 제천체육관에 마련된 노블 휘트니스 스파 화재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여야 "소방 안전 시스템 관련법, 처리 속도 높일 것"

한편 기동민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유일하게 통과돼 내년 5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벌써부터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솜방망이 제재로 안이한 대책이라는 것이다.

이 법은 주행 중 긴급 차량에게 길을 내주지 않을 경우 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 골자다. 일명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소방차 길 터주기를 강제하기 위한 취지로 제천 화재의 사례처럼 운전자가 없이 도로를 막고 있는 주·정차 차량은 해당되지 않는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33조에 따르면 ▲소방용 기계 및 기구가 설치된 곳 ▲소방용 방화 물통 ▲소화전·소화용 방화물통의 흡수구나 흡수관을 넣는 구멍 ▲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 경우 그 동사 구역의 양쪽 가장자리 등은 주차 금지 장소로 규정돼 있다.

또 교차로·횡단보도·건널목이나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의 보도, 교차로의 가장자리나 도로의 모퉁이로부터 5m 이내인 곳, 건널목의 가장자리, 횡단보도로부터 10m 이내인 곳 등도 주차를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건이 발생할 당시 불법 주차된 차량들 때문에 소방 당국이 인명 구조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점은 행정상의 미흡함이 여실히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충북 제천 화재가 단순 사고가 아닌 인재(人災)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이 같은 비판이 쏟아지자 정치권에서도 소방 안전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야는 지난 25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현장을 나란히 찾아 열악한 소방 시스템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지방의 열악한 사정에 대해서 더 증원이 되고 보강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제대로 보강된 인력 속에서 장비 보강도 시급히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추 대표는 "미비한 건축 행정 법규도 다시 한 번 총체적으로 점검할 때"라며 "이 곳만 하더라도 불법 증·개축이 눈에 띄고 한 눈에 보더라도 화재에 대단히 취약한 공법인 것을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2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소방 인력과 노후 장비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살펴야 한다"며 "국회에 계류 중인 소방 안전 시스템 관련법 처리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전날 현장 방문 당시 "소홀한 소방 점검 및 현장 대처가 피해 규모를 키웠다"며 소방·재난 점검 여부를 문제 삼았다.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도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진지하고 차분한 수습과 재발 방지 대책"이라며 "정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가 충북 제천 화재 참사를 계기로 모처럼 한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수습 및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위한 관련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뉴스핌 Newspim] 조현정 기자 (jhj@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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