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문화·연예일반

속보

더보기

[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음악을 색채로 표현한 추상화가, 칸딘스키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34)

칸딘스키 대표작품의 하나인 《노랑 빨강 파랑》은 색의 3원색인 노랑, 빨강, 파랑을 기본색으로 하여 녹색, 분홍, 초록, 보라색으로 된 점과 선 그리고 원형으로 된 기하하적 무늬들로 이루어져 있다. 화면의 왼쪽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건축적 형상 또는 사람의 얼굴을 노랑을 주조로 하여 표현하였고, 오른쪽은 곡선을 주로 사용하면서 파랑색을, 그리고 화면의 중심에는 빨강을 배치하여 균형을 이루고 있다. 칸딘스키는 곡선과 직선, 면, 그리고 색채를 단순히 배열한 것이 아니라 화면을 체계적이고 조화롭게 구성하였음을 알게 된다.

‘노랑 빨강 파랑(Jaune-rouge-bleu)’, 캔버스에 유채, 128x201.5cm / 파리 조르주 퐁피두센터 <사진=이철환>

칸딘스키의 미술사에 남긴 커다란 족적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몬드리안과 함께 추상적 세계를 개척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미술과 음악의 결합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20세기 전까지의 미술작품을 보면 거의 모두가 사실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조를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칸딘스키가 송두리째 바꾸어 놓게 된다. 1910년경 어느 저녁 무렵, 칸딘스키는 자신의 화실에 들어서면서 아주 낯선 이상한 그림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불타는 듯 아름다운 색채로 빛나는 그림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신이 그린 작품이 거꾸로 놓여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칸딘스키의 뇌리에 무엇인가가 스쳐갔다. 그림은 내용과 상관없이 오직 색채만으로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후 그는 20세기의 미술을 전통적인 사실주의 기법에서 추상이라는 새로운 지평으로 인도하기 시작한다.
“색채는 건반, 눈은 화음, 영혼은 현이 있는 피아노이다(Color is the keyboard, the eye ball, the soul is the piano with strings). 예술가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이다. 그들은 건반을 눌러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칸딘스키의 추상미술에는 음악의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음악은 형태가 없는 소리를 통해 우리의 감정을 움직인다. 이 관점에서 음악 또한 하나의 추상이다. 그리고 음악에 소리가 있다면 미술은 색채의 예술이다. 칸딘스키는 음악의 소리와 같이 미술의 색채 역시 고유의 질서가 있고, 그 질서를 이용하면 인간의 정신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색채로 표현된 음악’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추상미술이란 정해 놓은 대상이 없이 어떤 생각이나 내용을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은 추상회화의 선구자이자 대가로 꼽힌다. 두 사람이 활동한 시기가 비슷하고 작품세계 또한 동일한 추상표현주의 화가였지만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차이가 있다.
칸딘스키는, 추상미술이란 보편과 편견의 시각에서 벗어나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또 외면만이 아닌 내면의 모습을 간파하려는 욕구가 강했다. 물질의 배후에 있는 정신적 실재성인 내적 필연성을 그의 작품을 통해 계속 강조하였다. 또한 내적 필연성은 예술의 외적 필연성으로부터 해방과 자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서 몬드리안의 작품은 정형화되고 계획된 공간의 분할을 통해서 선과 색의 완벽한 단순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회화라기보다는 오히려 화면상의 공간 디자인이라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래서 칸딘스키의 작품세계를 ‘뜨거운 추상’ 또는 ‘비정형의 추상’이라고 부르는 데 비해 몬드리안의 작품세계를 ‘차가운 추상’ 혹은 ‘정형의 추상’이라고 부른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1866년 모스크바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후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우크라이나의 항구 도시 오데사에서 보냈다. 어렸을 때부터 색, 소리, 언어에 특출한 감각을 보여 그의 부모는 일찍부터 그에게 미술과 음악 공부를 시켰다. 하지만 자라서 그는 모스크바대학에 입학해서 법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1892년 같은 대학교에서 법학 강사가 되었다.
칸딘스키는 나이 30세가 되던 1895년,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꾸게 되는 두 가지 중요한 체험을 하게 된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프랑스 인상파 전시회에서 모네의 《건초더미》를 본 것이 그 하나이고, 모스크바 궁중극장에서 바그너의 《로엔그린》 공연을 본 것이 또 다른 하나이다.
칸딘스키는 모스크바의 한 전시장에 걸린 그림 한 점을 접하고는 돌연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는데, 바로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라는 작품이었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기법이 혼재된 모네의 붓 터치는 칸딘스키에게 내재되어 있던 그림을 향한 욕망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또 칸딘스키는 바그너의 《로엔그린》 공연을 보면서 음악에서 색을 느끼는 공감각(共感覺)을 경험하게 되고, 음악이 그림이 될 수 있고 그림이 음악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후 그는 촉망받는 법학자의 길을 버리고 새로이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896년 칸딘스키는 모스크바를 떠나 독일 뮌헨으로 건너가, 그곳에 정착해 살면서 미술 습작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 이 시절은 칸딘스키가 ‘청기사파(靑騎士派, Der Blaue Reiter)’라는 이름으로 모인 화가들과 함께 작품을 함께 전시하면서 예술혼을 불태운 인생의 황금시기였다. ‘청기사파’란 칸딘스키와 프란츠 마르크 등 9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하여 추상미술 활동을 펼친 유연한 형태의 모임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예술을 정확히 알리고 소리와 색채 간의 상징적 관계를 통해 새로운 예술을 모색했다. 그리고 그 이념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기의 연장선상에서 프랑스 상징주의와 러시아의 신화적인 요소를 결합한 것이었다. ‘청기사’란 이름은 물론 칸딘스키의 작품에서 온 것이다. 그렇지만 ‘말’, ‘푸른색’ 등 다른 예술가들이 좋아하는 요소들도 담고 있었다. 이 모임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해체될 때까지 세 번의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는 독일을 넘어 유럽 예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칸딘스키는 이 시기에 철학과 미학에 대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리고 야수파와 신인상주의가 남긴 업적과 풍경화를 발판으로 추상에 이르게 된다. 이때 나타난 즉흥적인 주제와 낭만적인 주제는 그가 마지막 생을 보낸 파리시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청기사는 해체되었고, 러시아 국적을 지닌 칸딘스키는 독일에서 생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에 칸딘스키는 조국인 러시아로 돌아가 거기서 수년간을 지냈다. 그러다 1921년 다시 독일로 돌아와 1933년까지 예술과 건축을 위한 학교인 ‘바우하우스(Bauhaus)’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시기에 원, 직선, 사각형, 삼각형 등 기하학적인 요소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26년 그의 가장 중요한 이론서인 《점, 선, 면(Punkt und Linie zu Fläche)》을 발표하면서 추상미술 예술론을 완성했다.
그러나 당시 독일을 지배하던 나치는 칸딘스키의 예술관을 좋지 않게 평가했다. 그가 러시아인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나치는 그의 작품을 ‘퇴폐 예술’로 규정하고 57점을 압수했다. 다행히 미국의 철강 재벌 상속인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솔로몬 구겐하임은 구겐하임 재단을 세우고 칸딘스키의 작품들을 150점 가까이 사들였다. 이때 모았던 칸딘스키 작품들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설립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나치를 피해 프랑스로 정착지를 옮긴 칸딘스키는 거기서 여생을 보냈다.

칸딘스키 하면 으레 떠오르는 작품은 자유분방한 형태와 색채로 가득한 캔버스일 것이다. 그러나 칸딘스키가 처음부터 추상미술을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청기사파 화가들과 함께 활동하기 전에는 칸딘스키 작품은 대부분 구상회화 중심이었다. 그러나 가브리엘 뮌터(Gabriele Münter)라는 여성을 만나면서부터 추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칸딘스키와 뮌터는 1901년 칸딘스키가 설립한 팔랑스 미술학교(Phalanx School)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당시 칸딘스키는 뮌터보다 나이가 11살이나 위였고, 러시아에 두고 온 아내도 있었다. 그렇지만 유복한 베를린 출신의 어린 소녀 뮌터에게는 이런 것들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지성으로 번뜩이고 이국적 모습을 한 칸딘스키 선생님에게 한눈에 반하게 된다.
이후 칸딘스키와 뮌터는 서로 추구하는 회화적 방향에 끌리게 되면서 약 10년 동안 예술적 동지이자 연인으로 지낸다. 칸딘스키는 뮌터와 함께 한 이 시절 동안 가장 의욕적으로 활동했다. 1911년 청기사파에서 같이 활동하였고, 그즈음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Über das Geistige in der Kunst)》라는 추상이론도 발표하였다.

그러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은 두 사람을 갈라놓게 된다. 청기사는 해체되었고, 칸딘스키는 독일을 떠나 러시아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3년 후 1917년 칸딘스키는 러시아의 어느 장군의 딸과 결혼식을 올린다. 이 소식에 칸딘스키를 기다리던 뮌터는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이후 뮌터는 한동안 그림도 그릴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이후에도 칸딘스키와 함께했던 바이에른 지방 무르나우에서 홀로 고독하게 살았다. 죽기 전 뮌터는 나치로부터 지켜낸 칸딘스키의 작품을 자신의 작품과 함께 뮌헨 시립 미술관에 기증하였다. 그리고 1962년 85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칸딘스키는 그의 진정한 예술동반자 뮌터보다 18년 앞선 1944년 12월, 77세를 일기로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에서 사망하였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관련키워드]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정동영 업무보고 논란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청와대 영빈관에서 5일 열린 외교·안보 분야 정부 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한반도 평화공존 발전 구상'과 업무보고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이날 정 장관의 발언 중에는 정부 내 조율을 거치지 않은 사안을 정책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있는가 하면 사실 관계에 맞지 않은 설명도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신중을 기해 달라고 경고했고,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상주의적 희망에 근거한 비현실적 구상'이라는 비판을 내놨다. 그동안 정 장관의 대북 정책 관련 발언이 물의를 빚은 적은 여러 번 있지만 대통령과 유관 부처 장관이 공개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정 장관의 무리한 대북 접근법과 월권을 제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2026.07.23 ◆통일부 장관 권한 넘어선 주장 정 장관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한반도 평화공존 발전 구상'을 설명하면서 이재명 정부 2년차 핵심 과제로 상호 존중·평화적 갈등 해결·핵 없는 한반도 등 3대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정 장관은 "대결과 혐오의 언어는 멈춰야 한다"면서 주적 용어 대체를 주장했다. 지난 25년간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구도는 이미 무너졌다고도 했다. 또 "현 시점에서 흘러간 선(先)비핵화만 되뇌는 것은 현실을 바꾸는 데 힘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 장관은 또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는 논의에 착수하겠다"면서 "북·미 정상회담 견인과 함께 4자 대화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정 장관의 구상에 대부분 제동을 걸었다. 이 대통령은 "평화공존 정책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며 "많이 조심하셔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는 "표현에 꼬투리가 잡혀 정쟁으로 휘몰아 들어가면 원래 하고자 했던 데에서 오히려 나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주장에 대해서도 "우리의 선의대로 하는 게 과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플러스냐, 결론적으로 약간의 의문이 들 때도 있다"며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업무보고 사후 브리핑에서 정 장관이 언급한 '4자 회담'에 대해 "이상주의에 근거한 어떤 희망이라 하더라도 그건 아직 조율되지 않은 방법"이라며 "여러분들께서 디스카운트해 주시면 좋겠다"고 선을 그었다. 정 장관이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EEF)'을 언급하며 "정부 차원에서 (참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조 장관은 "그것은 외교부의 몫"이라며 "아직 거기까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고 잘랐다. 정 장관이 이날 소개한 대북 구상과 설명은 정부 내 조율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특히 주적 표현 대체와 국호 사용, 9·19 군사합의 복원, 4자회담 추진 등은 통일부 장관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어서 월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정 장관의 업무보고를 듣고 난 뒤 "여기 업무보고에 발표했다고 승인난 건 아니다"라고 재차 확인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정 장관의 발언 내용은 대부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거쳐 결정된 사안이 아닌 정 장관의 개인적 생각에 가깝다"며 "안보 관련 부처 장관이 정부의 공식 정책이 아닌 사안을 추진하겠다고 업무보고를 하고 대통령의 면전에서 '국군통수권자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통일 외교 국방 등 외교 안보 부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2026.08.05 ◆시대착오적 접근, 대북 인식 오류 더욱 문제인 것은 정 장관의 이같은 주장이 현 시점에서 이미 참고가 될 수 없는 과거의 경험 또는 사실과 다른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장관이 주장하는 구상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북한의 전략과 한반도 및 국제 정세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 장관이 "흘러간 선(先)비핵화만 되뇌는 것은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고 언급한 것은 지금까지의 대북 접근법을 호도하고 있다. 북핵 위기 발발 이후 지금까지 모든 핵 협상에서 한국이나 미국은 북한에 선비핵화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북핵 협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한·미가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는 핵시설 동결과 중유 제공의 교환이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의 모든 단계에 상응조치를 제공하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이 적용됐다. 대북 협상에 관여했던 한 전직 관료는 "모든 북핵 협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한·미가 제공하는 상응조치를 어떻게 정교하게 배열하느냐가 관건이었다"면서 "정 장관의 발언은 지금까지 한·미가 북한에 먼저 핵을 포기해야 대화할 수 있다는 정책을 고수해 현 상황에 이르게 됐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장관이 "지난 25년간의 CVID 구도가 무너졌다"고 말한 것도 비핵화의 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북핵 문제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어떤 명칭을 붙이든 핵을 제거한 뒤 이를 검증하고 재발 방지 조치를 하는 것은 비핵화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기본적 절차"라며 "CVID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검증도 하지 않고 언제든 되돌릴 수 있도록 합의하자는 말과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핌] 이길동 기자 = 조현 외교부 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2026년 하반기 업무보고 사후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08.05 gdlee@newspim.com ◆안보 리스크 키우는 통일부 장관 정 장관은 지난해 취임 직후부터 청와대와 외교부를 제치고 통일부가 북한과 관련된 모든 정책을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단독 질주를 거듭해왔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주장을 변형한 '평화적 두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무시했다. 외교부가 미국과 북한 문제를 논의하는 것에 대해 "한반도 정책과 남북관계는 주권의 영역이며 동맹국과 협의의 주체는 통일부"라고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 파탄 원인이었다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폈다. 지난해 업무보고에서는 국제정세를 감안하지 않고 남북대화 재개에만 초점을 맞춘 비현실적 내용으로 논란을 빚었다. 정부 내 조율도 거치지 않고 독자 대북제재인 5·24 조치를 해제하고 9·19 군사합의 비행금지구역 복원을 추진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지난 4월에는 평안북도 구성시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은 이 발언을 계기로 한국과 대북정보 공유를 제한했다. 이 조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이 이처럼 정부의 공식 결정을 거치지 않은 사안을 정부 정책인 것처럼 주장하며 좌충우돌하는 배경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나온다. 북한 문제에서 조기에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조급증과 자신의 존재감 과시 욕구가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일각에서는 정 장관이 2007년 민주당 대선후보였을 때 이재명 대통령이 캠프에서 비서실 부실장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는 것을 들어 "정 장관이 아직도 이 대통령을 아랫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내놓기도 한다. 한·미 관계와 북한 문제를 오래 다뤘던 전직 관료 출신의 한 전문가는 "정 장관 취임 후 지금까지의 언행은 잘못된 현실 인식에 따른 독단과 앞서 가기, 월권 등으로 점철돼 있다"면서 "통일부 장관이라는 중요한 직책에 있으면서 스스로 안보 리스크를 키우는 역할만 했다"고 비판했다. opento@newspim.com 2026-08-06 06:10
사진
6월 경상수지 최대 흑자 [서울=뉴스핌] 박가연 기자 = 지난 6월 우리나라의 경상수지가 전월에 이어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IT) 품목 수출 호조로 월간 상품수출이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어선 영향이다. [자료=한국은행] 한국은행이 6일 발표한 '2026년 6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지난 6월 경상수지는 497억3000만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전월(386억1000만달러)에 이어 두 달 연속 월간 기준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1910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경상수지 흑자를 견인한 것은 상품수지다. 6월 상품수지는 478억9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전월에 이어 역대 최대를 다시 썼다. 국제수지 기준 상품수출은 1123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84.5% 증가하며 월간 기준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상품수입은 644억8000만달러로 38.6% 늘었다. 통관 기준으로는 반도체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196.9% 급증했고 컴퓨터·주변기기(SSD)는 282.7% 증가했다. IT 품목 수출은 160.4% 늘었으며 비IT 품목도 ▲석유제품(47.5%) ▲화공품(18.6%) ▲철강제품(17.9%) ▲승용차(6.1%) 등을 중심으로 18.6% 증가했다. 통관 기준 수입은 ▲원자재(30.5%) ▲자본재(35.3%) ▲소비재(16.4%)가 모두 늘었다. 서비스수지는 12억9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해 전월(-10억9000만달러)보다 적자 폭이 확대됐다. 여행수지는 외국인 입국자 증가와 유류할증료 인상 등에 따른 출국자 감소로 4억4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지만 지식재산권사용료수지는 전월 흑자에서 4억4000만달러 적자로 전환됐다. 본원소득수지는 배당소득을 중심으로 32억7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해 전월(21억7000만달러)보다 흑자 폭이 확대됐다. 배당소득수지는 배당수입이 늘어난 데다 전월 분기배당에 따른 기저효과로 배당지급이 줄면서 25억6000만달러 흑자를 나타냈다. 금융계정 순자산은 6월 중 467억1000만달러 증가해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종전 최대였던 올해 3월(369억9000만달러)을 넘어선 것이다. 직접투자에서는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80억1000만달러, 외국인의 국내투자가 46억3000만달러 각각 증가했다. 증권투자에서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세가 이어졌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투자는 차익실현 매도 등의 영향으로 316억1000만달러 감소하며 전월(-310억5000만달러)에 이어 역대 최대 순매도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투자는 세계국채지수(WGBI) 자금 유입에도 분기 말 만기도래 영향으로 증가 폭이 줄어든 52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내국인의 해외 증권투자는 주식을 중심으로 35억6000만달러 증가했다. eoyn2@newspim.com 2026-08-06 08:00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