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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어느 예술가 생애의 에피소드' 베를리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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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16)

‘어느 예술가 생애의 에피소드’라는 부제를 가진 《환상 교향곡》 은 베를리오즈 본인이 실연으로 인해 겪은 아픔과 슬픔을 담은 작품이다. 이 《환상 교향곡》을 통해 그는 사랑의 고통을 승화시키면서 서서히 되살아날 수 있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한 여자를 전전긍긍하며 미친 듯이 짝사랑했던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자신을 거부하자 좌절감으로 인해 아편을 먹고 자살을 꾀한다. 그러나 치사량에 미달하여 자살미수에 그치고 꿈속에서 단두대로 끌려간다. 그런데 그토록 짝사랑한 여인이 마녀가 되어 마녀들의 잔치에 나타난다는 내용이다. 각 악장마다 주제와 이야기가 있다.

1악장은 ‘꿈과 열정(Revieries Passions)’의 장이다. 여기서는 젊은 예술가가 사랑할 애인을 만나기 전의 심정을 나타내는 우울한 가락이 연주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통제할 수 없는 열정은 베를리오즈의 작품 속에서 집요하게 반복되는 음악적 모티브가 되고 있다. 즉 반복되는 음악적 모티브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것을 ‘고정상념(이데 픽스, idee fixe)’이라고 한다.
2악장은 ‘무도회(Un bal)’의 장이다. 연인을 상징하는 고정상념의 선율이 아름답게 나타난다. 군중 앞에 나타난 그녀의 자태는 뭇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연인은 무도회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춤은 계속되어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3악장은 ‘전원 풍경(Scene aux Champs)’을 연주한다. 예술가는 아름다운 경치를 쫓아 시골로 간다. 목가적인 2중주는 그 주위의 화창한 풍경과 솔솔 부는 바람을 표현하며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4악장은 ‘단두대의 행진(La marche au supplice)’을 연주한다. 젊은 예술가는 연인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아 단두대에 끌려가는 꿈을 꾼다. 그런데 단두대로의 행진은 어둡고 거칠기도 하지만 눈부실 정도로 빛나기도 한다. 고정상념 선율은 여기에서도 잠시 나타나 죽음에 이르러 마지막 순간에 연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지막 5악장은 ‘악마의 축제일 밤의 꿈(Songe d’unnuit du Sabbat/Ronde du Sabbat)‘을 나타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젊은 예술가는 자기가 무서운 악마들 사이에 끼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예술가의 장례식에 모여든 것이다. 이때 야비하고 기괴한 무도풍의 연인의 선율이 나타난다. 여자의 자태를 본 악마들이 기뻐서 지르는 고함, 난잡한 연회의 잡음과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과 탁월한 상상력으로 만든 《환상 교향곡》에는 자신의 환각 상태를 ‘고정상념’을 통해 녹여 넣었다. 원래 ‘고정상념’은 정신과 병의학 용어인데, 베를리오즈가 이를 사용한 것은 교향곡의 줄거리가 환각에 빠진 주인공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의 ‘고정상념’은 낭만시대의 주요 기법으로 리스트의 ‘교향시(Symphonic Poem)’, 그리고 바그너의 ‘라이트 모티브”(leitmotiv, 유도동기)’로 확장· 발전되는 기초가 된다.
이 작품은 발표 당시 찬반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비단 자살을 다룬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줄거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유럽 음악계는 교향곡 작곡 활동이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그것은 베토벤이라는 거대한 거인의 발자국 뒤를 걸어가는 후배들의 운명이기도 했다. 음악가들은 교향곡은 베토벤에 의해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이 완벽하게 완성되어 버렸기에 그의 전철을 밟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절대음악 즉 ‘음악 이외의 다른 예술과 직접 관계를 갖지 않고 순수한 음의 예술성을 추구하는 음악’ 대신 그나마 아직은 창작의 여지가 있다고 여겨지는 줄거리가 있는 가곡과 오페라에 치중했다.
그러나 베를리오즈는 새로운 길을 찾는 시도와 함께 교향곡 자체의 발전도 중단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불태웠다. 그 결실이 바로 《환상 교향곡》이었다. 그는 교향곡에 대해 새로운 시도를 단행했다. 즉 그동안 교향곡의 정석처럼 여겨지던 4악장의 틀을 파괴하고 5악장으로 늘린 것이다.

베를리오즈는 프랑스의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로 끈질긴 기질과 불굴의 음악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곡을 많이 만들었다. 프랑스 작곡가로서는 예외적으로 대규모 기악곡의 창작에 몰두하였다. 그는 프랑스 특유의 섬세한 감정과 관현악법에 의하여 감미로운 음색을 즐겨 사용하였으며, 대담 분방한 표현은 때때로 격정적인 폭발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는 악기의 음색과 효과를 최대한 이용해 환상과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음악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고 주장한 베를리오즈는 문학과 음악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곡활동을 했다. 그는 스스로 베토벤의 사도로 자처하리만큼 베토벤을 존경하였고 실제로도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또 베토벤뿐만 아니라 문학가인 셰익스피어와 괴테도 존경하여 그들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삶은 그의 음악세계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는 음악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낭만파를 대표하는 작곡가가 된 베를리오즈는 ‘표제 음악(Program music)’이라는 새로운 관현악곡 기법을 창시했다. 그리하여 그의 교향곡에는 모두 제목이 붙어있다. 그의 대표작인 교향곡 1번이 《환상 교향곡》, 2번이 《이탈리아의 해롤드》, 3번이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소재로 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이름이 붙어 있다.

‘환상 교향곡’의 두 주인공 베를리오즈와 해리엇 스미스슨 <사진=이철환>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 1869)는 1803년 프랑스 남부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부유한 의사였던 아버지로부터 라틴어를 배웠고 음악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베를리오즈에게 있어 음악은 한참 동안 취미생활이자 수준 높은 대화를 위한 교양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의 직업을 물려주고 싶어 했던 아버지는 큰 기대를 가지고 본격적인 의학공부를 시키기 위해 베를리오즈를 파리로 유학 보냈다. 처음 1년 동안 베를리오즈는 부모의 기대에 충실하게 부응했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감수성이 예민한 베를리오즈로서는 전 유럽에서도 최고의 예술과 문화가 집결되어 있는 이 도시에 혹할 수밖에 없었다. 틈만 나면 연극이며 오페라를 보러 다니고, 공연을 관람하는 것만으로 성이 안 차 그날 들은 음악을 악보로 베끼며 욕구를 채웠다. 결국 그는 파리 음악원 작곡 교수였던 장 프랑수아 르쉬에르를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펄펄 뛰었다. 특히 아버지와의 갈등은 무려 8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아버지는 생활비와 학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반면, 그의 어머니는 간곡히 타일렀다. “얘야, 의사가 되어 훌륭한 일을 하면 천당에 갈 수 있지만, 음악가가 되는 것은 지옥을 향해 돌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어머니의 말에 베를리오즈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머니! 저는 천사들이 우두커니 서 있는 조용한 천당보다는, 소란하더라도 음악이 있는 지옥을 택하고 싶습니다.”

부모가 생활비 지원을 끊으면서 빈곤에 허덕이던 베를리오즈는 상당한 돈과 명예가 보장된 ‘로마대상(Grand Prix de Rome)’에 도전했다. 그러나 그는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로마대상’이란 프랑스 정부가 자국의 우수한 젊은 예술가들이 당시 문화의 중심지이던 로마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주는 제도였다. 이 상은 루이 14세가 제정하였다. 처음에는 미술에서부터 시작하여 건축을 거쳐 1803년에는 음악 분야에도 수상자를 냈다.
그러던 중 베를리오즈의 마음을 뒤흔드는 사건이 터졌다. 그의 나이 스물네 살 때인 1827년, 그는 영국의 한 극단이 파리 오데옹 극장에서 공연하는 〈햄릿〉을 관람하였다. 혈기 왕성한 베를리오즈는 셰익스피어 연극에 매료됐을 뿐 아니라, 오필리어 역의 여배우 해리엇 스미스슨(Harriet Smithson)에게 완전히 빠져 버렸다. 그래서 거의 스토킹에 가까울 정도의 애정공세를 폈다. 하지만 당시 잘 나가던 그 여배우는 무명의 작곡가인 베를리오즈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베를리오즈는 삶의 의욕을 잃고 시름시름 마음의 병을 앓으며 현실을 벗어난 환상에 빠져들기도 했다. 목적지도 없이 거리와 들판을 배회했다. 우울과 고통, 절망적 사랑, 잔인한 냉소, 막막한 공상, 찢어지는 가슴, 광기, 눈물, 죽음과의 절망적인 투쟁 … 베를리오즈는 이런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점점 탈진해갔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상황에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음악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환상 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 op. 14)》이다. 자신의 애끓는 심정을 알아주지 않는 스미스슨을 향한 절망과 분노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킴으로서 걸작을 만들어 낸 것이다.

베를리오즈가 27세가 되던 해인 1830년, 그는 마침내 그동안 수차례의 낙방 끝에 〈사르다나팔루스의 최후의 밤〉 이라는 칸타타로 로마대상을 수상했다. 이 로마대상 수상으로 베를리오즈는 음악계의 시선을 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곧이어 발표된 《환상 교향곡》은 음악가로서의 명성을 확실하게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아버지는 비로소 음악가로서 아들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고, 가정에도 화해와 평화가 찾아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베를리오즈에게 인생의 변곡점이 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다름 아닌 베를리오즈가 그토록 갈구해 마지않던 여인 해리엇 스미스슨과 재회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남자와 여자가 처한 상황이 뒤바뀌어 있었다. 전 유럽이 주목하는 전도유망한 젊은 작곡가 앞에 스미스슨은 이미 나이든, 그리고 빚에 쪼들리는 한물 간 여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베를리오즈의 연정은 다시 불붙었다. 결국 그들은 베를리오즈 아버지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1833년 결혼하여 몽마르트 언덕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베를리오즈의 창작력은 스미스슨과의 결혼과 더불어 더욱 정열적으로 타올랐다. 특히 결혼한 지 1년 만에 작곡한 《이탈리아의 해롤드》는 바이올린의 천재인 파가니니로부터 커다란 찬사를 받는다. 파가니니가 처음 이 작품의 악보를 보았을 당시에는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비올라의 역할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다소 실망감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 작품의 연주를 듣고 난 후에는 베를리오즈를 베토벤의 뒤를 잇는 운명적인 천재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후원금까지 보냈다.
스미스슨이 아들 루이를 낳으면서 이들 가정의 행복은 절정에 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예민한데다가 아집이 강한 음악가와, 이제는 한창 때의 미모를 상실하여 열등감에 사로잡힌 중년 여배우의 부부관계는 평탄하지 않았다. 베를리오즈가 네 번째 교향곡을 완성한 37세가 되던 해, 두 사람은 애증이 점철된 8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후 베를리오즈는 공공연히 사귀어 오던 여가수 마리아 레치오와 재혼하였다. 그렇지만 전 부인이 되어버린 스미스슨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정리한 것은 아니었다. 스미스슨이 병을 얻어 쓰러지자 베를리오즈는 그녀의 침대 옆을 지키며 헌신적으로 간호하였고 임종도 지켜보았다.
스미스슨의 죽음은 베를리오즈가 이후 차례로 겪을 이별의 서곡이었다. 스미스슨이 죽은 지 8년 후 두 번째 아내 마리아도 갑자기 사망하였다. 그리고 스미스슨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루이마저도 쿠바의 아바나에서 풍토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랑하는 이들의 연이은 죽음은 베를리오즈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베를리오즈는 첫 번째 아내의 시신을 두 번째 아내가 잠들어 있던 몽마르트의 무덤 옆으로 옮겼다. 그리고 얼마 후인 1869년 3월, 자신도 66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베를리오즈는 파가니니로부터도 크게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표제음악과 낭만파 음악세계를 창시하는 등 특별한 음악활동을 통해 유럽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또 프랑스음악의 자존심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살아생전 정작 그의 조국인 프랑스에서는 그렇게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이는 그가 파리에서 음악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적을 만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를리오즈가 프랑스 음악계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은 그가 죽은 뒤 상당한 시간이 흐른 이후였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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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업무보고 논란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청와대 영빈관에서 5일 열린 외교·안보 분야 정부 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한반도 평화공존 발전 구상'과 업무보고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이날 정 장관의 발언 중에는 정부 내 조율을 거치지 않은 사안을 정책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있는가 하면 사실 관계에 맞지 않은 설명도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신중을 기해 달라고 경고했고,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상주의적 희망에 근거한 비현실적 구상'이라는 비판을 내놨다. 그동안 정 장관의 대북 정책 관련 발언이 물의를 빚은 적은 여러 번 있지만 대통령과 유관 부처 장관이 공개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정 장관의 무리한 대북 접근법과 월권을 제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2026.07.23 ◆통일부 장관 권한 넘어선 주장 정 장관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한반도 평화공존 발전 구상'을 설명하면서 이재명 정부 2년차 핵심 과제로 상호 존중·평화적 갈등 해결·핵 없는 한반도 등 3대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정 장관은 "대결과 혐오의 언어는 멈춰야 한다"면서 주적 용어 대체를 주장했다. 지난 25년간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구도는 이미 무너졌다고도 했다. 또 "현 시점에서 흘러간 선(先)비핵화만 되뇌는 것은 현실을 바꾸는 데 힘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 장관은 또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는 논의에 착수하겠다"면서 "북·미 정상회담 견인과 함께 4자 대화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정 장관의 구상에 대부분 제동을 걸었다. 이 대통령은 "평화공존 정책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며 "많이 조심하셔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는 "표현에 꼬투리가 잡혀 정쟁으로 휘몰아 들어가면 원래 하고자 했던 데에서 오히려 나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주장에 대해서도 "우리의 선의대로 하는 게 과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플러스냐, 결론적으로 약간의 의문이 들 때도 있다"며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업무보고 사후 브리핑에서 정 장관이 언급한 '4자 회담'에 대해 "이상주의에 근거한 어떤 희망이라 하더라도 그건 아직 조율되지 않은 방법"이라며 "여러분들께서 디스카운트해 주시면 좋겠다"고 선을 그었다. 정 장관이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EEF)'을 언급하며 "정부 차원에서 (참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조 장관은 "그것은 외교부의 몫"이라며 "아직 거기까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고 잘랐다. 정 장관이 이날 소개한 대북 구상과 설명은 정부 내 조율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특히 주적 표현 대체와 국호 사용, 9·19 군사합의 복원, 4자회담 추진 등은 통일부 장관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어서 월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정 장관의 업무보고를 듣고 난 뒤 "여기 업무보고에 발표했다고 승인난 건 아니다"라고 재차 확인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정 장관의 발언 내용은 대부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거쳐 결정된 사안이 아닌 정 장관의 개인적 생각에 가깝다"며 "안보 관련 부처 장관이 정부의 공식 정책이 아닌 사안을 추진하겠다고 업무보고를 하고 대통령의 면전에서 '국군통수권자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통일 외교 국방 등 외교 안보 부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2026.08.05 ◆시대착오적 접근, 대북 인식 오류 더욱 문제인 것은 정 장관의 이같은 주장이 현 시점에서 이미 참고가 될 수 없는 과거의 경험 또는 사실과 다른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장관이 주장하는 구상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북한의 전략과 한반도 및 국제 정세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 장관이 "흘러간 선(先)비핵화만 되뇌는 것은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고 언급한 것은 지금까지의 대북 접근법을 호도하고 있다. 북핵 위기 발발 이후 지금까지 모든 핵 협상에서 한국이나 미국은 북한에 선비핵화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북핵 협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한·미가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는 핵시설 동결과 중유 제공의 교환이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의 모든 단계에 상응조치를 제공하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이 적용됐다. 대북 협상에 관여했던 한 전직 관료는 "모든 북핵 협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한·미가 제공하는 상응조치를 어떻게 정교하게 배열하느냐가 관건이었다"면서 "정 장관의 발언은 지금까지 한·미가 북한에 먼저 핵을 포기해야 대화할 수 있다는 정책을 고수해 현 상황에 이르게 됐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장관이 "지난 25년간의 CVID 구도가 무너졌다"고 말한 것도 비핵화의 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북핵 문제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어떤 명칭을 붙이든 핵을 제거한 뒤 이를 검증하고 재발 방지 조치를 하는 것은 비핵화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기본적 절차"라며 "CVID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검증도 하지 않고 언제든 되돌릴 수 있도록 합의하자는 말과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핌] 이길동 기자 = 조현 외교부 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2026년 하반기 업무보고 사후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08.05 gdlee@newspim.com ◆안보 리스크 키우는 통일부 장관 정 장관은 지난해 취임 직후부터 청와대와 외교부를 제치고 통일부가 북한과 관련된 모든 정책을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단독 질주를 거듭해왔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주장을 변형한 '평화적 두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무시했다. 외교부가 미국과 북한 문제를 논의하는 것에 대해 "한반도 정책과 남북관계는 주권의 영역이며 동맹국과 협의의 주체는 통일부"라고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 파탄 원인이었다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폈다. 지난해 업무보고에서는 국제정세를 감안하지 않고 남북대화 재개에만 초점을 맞춘 비현실적 내용으로 논란을 빚었다. 정부 내 조율도 거치지 않고 독자 대북제재인 5·24 조치를 해제하고 9·19 군사합의 비행금지구역 복원을 추진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지난 4월에는 평안북도 구성시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은 이 발언을 계기로 한국과 대북정보 공유를 제한했다. 이 조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이 이처럼 정부의 공식 결정을 거치지 않은 사안을 정부 정책인 것처럼 주장하며 좌충우돌하는 배경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나온다. 북한 문제에서 조기에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조급증과 자신의 존재감 과시 욕구가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일각에서는 정 장관이 2007년 민주당 대선후보였을 때 이재명 대통령이 캠프에서 비서실 부실장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는 것을 들어 "정 장관이 아직도 이 대통령을 아랫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내놓기도 한다. 한·미 관계와 북한 문제를 오래 다뤘던 전직 관료 출신의 한 전문가는 "정 장관 취임 후 지금까지의 언행은 잘못된 현실 인식에 따른 독단과 앞서 가기, 월권 등으로 점철돼 있다"면서 "통일부 장관이라는 중요한 직책에 있으면서 스스로 안보 리스크를 키우는 역할만 했다"고 비판했다. opento@newspim.com 2026-08-0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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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경상수지 최대 흑자 [서울=뉴스핌] 박가연 기자 = 지난 6월 우리나라의 경상수지가 전월에 이어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IT) 품목 수출 호조로 월간 상품수출이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어선 영향이다. [자료=한국은행] 한국은행이 6일 발표한 '2026년 6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지난 6월 경상수지는 497억3000만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전월(386억1000만달러)에 이어 두 달 연속 월간 기준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1910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경상수지 흑자를 견인한 것은 상품수지다. 6월 상품수지는 478억9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전월에 이어 역대 최대를 다시 썼다. 국제수지 기준 상품수출은 1123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84.5% 증가하며 월간 기준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상품수입은 644억8000만달러로 38.6% 늘었다. 통관 기준으로는 반도체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196.9% 급증했고 컴퓨터·주변기기(SSD)는 282.7% 증가했다. IT 품목 수출은 160.4% 늘었으며 비IT 품목도 ▲석유제품(47.5%) ▲화공품(18.6%) ▲철강제품(17.9%) ▲승용차(6.1%) 등을 중심으로 18.6% 증가했다. 통관 기준 수입은 ▲원자재(30.5%) ▲자본재(35.3%) ▲소비재(16.4%)가 모두 늘었다. 서비스수지는 12억9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해 전월(-10억9000만달러)보다 적자 폭이 확대됐다. 여행수지는 외국인 입국자 증가와 유류할증료 인상 등에 따른 출국자 감소로 4억4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지만 지식재산권사용료수지는 전월 흑자에서 4억4000만달러 적자로 전환됐다. 본원소득수지는 배당소득을 중심으로 32억7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해 전월(21억7000만달러)보다 흑자 폭이 확대됐다. 배당소득수지는 배당수입이 늘어난 데다 전월 분기배당에 따른 기저효과로 배당지급이 줄면서 25억6000만달러 흑자를 나타냈다. 금융계정 순자산은 6월 중 467억1000만달러 증가해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종전 최대였던 올해 3월(369억9000만달러)을 넘어선 것이다. 직접투자에서는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80억1000만달러, 외국인의 국내투자가 46억3000만달러 각각 증가했다. 증권투자에서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세가 이어졌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투자는 차익실현 매도 등의 영향으로 316억1000만달러 감소하며 전월(-310억5000만달러)에 이어 역대 최대 순매도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투자는 세계국채지수(WGBI) 자금 유입에도 분기 말 만기도래 영향으로 증가 폭이 줄어든 52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내국인의 해외 증권투자는 주식을 중심으로 35억6000만달러 증가했다. eoyn2@newspim.com 2026-08-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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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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