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제장마을 <사진=(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 |
[뉴스핌=이현경 기자] 국가가 나서기 전 시민들의 힘으로 우리의 문화 유산을 지키고 보존할 수 있을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발굴하고 또 지켜나간다. 국내에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재)무등산공유화재단, 민간단체 아름지기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최대 규모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순수 비영리 단체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자연유산 관리는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문화유산 관리는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하고 있다. 또 사단 법인에서는 땅 매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따로 영농조합법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를 설립해 자연·문화 유산 관리에 힘쓰고 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영국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1985년 영국에서 시작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산업혁명 때 일어났다. 당시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문화유산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사회는 황폐해졌다. 이때 시민이 주체가 되어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영구보존하면서 사회는 안정을 되찾았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1999년 그린벨트 보전운동으로 윤곽이 잡혀 2000년에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이후 자연유산과 문화유산 보호에 앞장섰다.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동강제장마을, 연천DMZ일원 임야, 원흥이 방죽 두꺼비 서식지, 내성천 범람원, 맹산 반딧불이 자연학교, 함평 군유산 임야를 매입하고 관리를 시작했다.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사진=(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 |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의 경우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처음으로 자연유산으로 보존한 곳이다. 1998년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일대 논에서 멸종위기식물 매화마름이 발견됐고 당시 주민들의 민원으로 경지정리가 예정돼 자생지가 사라질 위기였다. 이에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매화마름 군락지를 확보하기 위해 주민 간담회와 자치단체장과 협의를 진행했고 매화마름 보전 의사를 밝히며 본격적인 매입활동에 착수했다. 시민 모금으로 3,009㎡중 2,640㎡를 매입하였고 369㎡를 소유주인 사재구 씨로부터 기증받아 보전하게 됐다.
시민문화유산 1호로 최순우 옛집, 2호 도래마을 옛집, 3호로 권진규 아틀리에를 관리하고 있다. 시민문화유산 1호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서’를 집필한 작가, 최순우의 유족이 직접 내셔널트러스트에 관리를 요청한 것이다. 최순우옛집은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관리하고 있다.
최순우 작가가 살던 집이 많이 낡아 유족들은 이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인의 흔적이 묻은 집을 제 3자에게 넘겨야하는 문제와 마주하게 됐다. 이에 내셔널트러스트에 의뢰했고 시민들의 모금 활동으로 2002년에 매입할 수 있었다.
시민문화유산 1호 최순우 옛집, 2호 도래마을 옛집, 3호 권진규 아틀리에 (위로부터)<사진=(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
현재 최순우 옛집은 2006년 9월 19일 등록문화재 제268호로 지정됐다. 이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성과로 볼 수 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관계자는 “당시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등록문화재 체계가 없던 시절만 해도 가치 있는 문화재를 보호할 기회를 놓치기 일쑤였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진행한 최순우 옛집의 관리, 보존 활동이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몰랐던 문화재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더불어 문화재 보존 의식을 만드는 단초가 됐다”고 덧붙였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게도 고충은 있다. 보존할 것들은 많지만 자산 확보가 쉽지 않다. 관리 비용도 매입비 못지 않게 들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관계자는 “대중적 이슈에 놓인 문화, 자연 유산 모금은 쉽게 이뤄지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최순우 옛집도 당시 2억 정도에 매입을 했지만 실제 보존을 위한 관리비는 매입비 이상”이라고 전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매월 후원금을 받고 있고, 회원들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또 지난 7월부터 ‘동강사랑 위탁운영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와 힘을 모아 창의적인 방법으로 동강을 지켜나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비영리법인 단체와 개인을 찾고 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관계자는 “향후에도 시민들이 주도해서 전개할 수 있는 문화 보존 활동을 다양하게 해나갈 것”이라며 관심을 당부했다.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