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흔히 보이는 것들로 뫼비우스적, 그 이상의 상상 여행을 하려 한다. 주변의 사물들엔 저마다 독특한 내력이 숨어 있고 어떻게 빚느냐에 따라 보석이 되기도 하고 나침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출발한 여행의 과정에 어떤 빛깔의 풍경이 나타날지, 그 끝이 어디까지 다다를지 필자 자신도 설레인다. 인문학의 시대라고 하는데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메타적 성찰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사물과 풍경, 시대와 인문을 두루 관통하면서 색다르면서도 유익한 여행을 떠나려 한다.
‘330 만년 전의 석기 발견. 인류 최초의 도구 역사 새로 쓰다.’
스마트폰으로 발견한 건데 케냐의 어느 호수 부근에서 출토된 돌 도구들이다. 기존의 최고(最古)인 260 만년 전 탄자니아 올두바이 도구보다 70 만년 앞선 것이라 한다. 고고학에선 최초라는 말을 곧잘 쓴다. 그리고 그 ‘최초’는 다른 분야들에서 쓰는 그것보다 ‘앞당겨지는’ 성격이 강해 보인다. 고고학 자체가 그리 역사가 깊은 학문도 아니고 탐구에 필요한 과학 장비들이 계속 발전하기에 당연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 미지의 구석들이 엄청나다보니 더욱 그럴 것이다. 이 기사에서도 최고(最古) 내지 최초는 ‘앞당겨진다.’
아득히 취해가는 기분이다. 세월이 더 흐르면 저 최초보다 더욱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 새로운 최초가 나올 확률이 크다. 새로운 발견들로 우리들을 놀라게 하곤 하는 고고학이 주는 선물이자 면역력이다.
그와 함께 나는 뭔가 풀리는 듯하면서 막히는 기분이었다. 평소의 생각이기도 한데 저 내용에 오류가 있다고 나는 본다. 즉 발견될 수 있는 도구의 현재 최초가 저것일 것이다. 발견될 수 없는 도구도 있다. 썪어 사라지는 것들 말이다.
가령 이전의 에세이에서 말했던 부러진 나뭇가지나 줄기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돌도끼에 묶어 쓰거나 들고 다니다가 뱀이 나타나면 후려치기도 했을 것이다.
뭔가를 묶거나 매듭을 지을 때 끈으로 삼았을 넝쿨도 마찬가지이다.
바이칼 호수로 여행을 떠났던 친구가 보내준 그 곁의 숲인데 저 숲 속 나뭇잎도 그럴 것이다. 호수의 물을 고대인들이 목이 마를 때 손으로 떠 먹다가 곁에 나뭇잎이 있다면 둥글게 오므려 떠먹었음직도 하다. 이런 사례가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나뭇가지, 넝쿨, 잎, 깨거나 갈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돌, 단단한 과일, 흙, 모래, 조개 껍데기 등등의 천연 도구나 이를 가공한 것들로 풍부했을 시대를 나는 <천연 도구 시대>라고 부르고 싶다.
충분히 존재했음직하고 아니라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존재를 상정하지 않을뿐더러 그 시대를 명명하는 이름 하나 없는가.
증거가 없어서일 것이다.
당연히 없을 것이다. 썩어 사라지는 것들이므로. 증거가 없을 수밖에 없기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대 자체가 없었을까.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곧잘 눈에 띄는 그런 풍경이 아득한 선사 시대에도 행해졌을 것이다. 상식이며 상상을 조금만 동원해도 자명해 보인다.
인류의 역사에 그렇게 명명된 시대를 넣자고 나는 주장하는 것이다. 증거가 없어서 어렵다면 신화와 역사를 구분하듯 그럴듯한 신화적인 명칭을 부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로 인한 효과는 너무도 값질 것이다.
지금처럼 석기 시대가 인류의 최초라고 우기고 그럼으로써 돌도끼, 돌칼 등등 깬석기 위주의 유물들만 나열할 때 그 울림은 다분히 협소할뿐더러 인류의 선사 시대의 진면목과 괴리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실태처럼 사냥과 먹거리 위주로 당시의 문화가 국소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큰 것이다.
목기류의 도구들이 풍부했음직하니 목기 시대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천연 도구들에 대한 상징을 녹색으로 간주해 그린 시대(green period)라고 이름 지어도 좋다. 천연 도구 시대라고 부르든 목기 시대, 그린 시대라고 부르든 인류의 선사 시대가 얼마나 풍성해지는가. 돌을 깨 동물을 잡아 죽여 식량으로 삼고 가죽을 벗겨 옷을 지어 입는 식의 납작한 상상력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지 않는가. 나뭇가지나 넝쿨, 잎, 풀, 조개, 모래 등등을 활용하는 다채로운 지혜들이 우리 특히 어린아이들의 가슴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이지 않을까. 선입견 없는 백지 같은 아이들에게 선사 시대를 설명할 때 지금처럼 깬석기나 돌도끼, 돌칼 등만을 보여준다면 아이들의 납득이 자연스러운 걸까. 그렇지 않다고 나는 본다. 숲 속에 들어가서 ‘돌만 바라보세요’라고 반복적으로 듣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증주의가 절대적인 사관일까. 그것이 놓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증거가 가능한 곳은 실증주의, 애초 불가능한 곳은 다른 범주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방식도 세상이라는 실재에도 맞고 상식에도 맞는 것 아닌가. 인류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선사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을 이제부터라도 있는 그대로, 사실에 기반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지금까지는 보는 관점 위주였다. 이에 반해 가령 ‘천연 도구 시대’라는 개념은 보이는 관점이다. 즉 있는 그대로의 관점이다. 그동안 보이는 것만 보자는 관점의 폭력으로부터 고대인을, 인류문화사를 해방시키자는 이야기이다.
컵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기원이 언제부터일까.
그럴듯한 썰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기원에 대해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연속성 뿐 아니라 단절성도 있다. 즉 역사라는 것엔 전혀 파악 불가능한 단절성도 있기 마련이어서 그것 또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물적 증거가 나올 수 없는 성격의 것들이 단절성마저 띠게 되면 기원의 파악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가령 과거의 어느 한 토막이 완전히 잘려나가듯 해서 그 이전과 이후가 단절되었다고 해 보자. 컵이든 또다른 뭔가든 그 기원에 속하는 것이 그 단절의 두께 저 너머에 있다고 한다면 단절의 이쪽에 사는 우리로서는 전혀 그곳에 다달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불가능의 절망밖에 없는가. 다행히 보편성에 접근할 수 있는 인지 역시 주어졌기에 인간은 단절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꿰뚫을 통찰 역시 지니고 있다. 물 자체(thing itself)를 파악할 수 있는냐 없느냐는 둘째이고 말이다.
이런 문제 의식을 깔고 컵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앞서 말했듯 처음엔 손바닥으로 물을 떠먹다가 큼직한 나뭇잎이 물가에 있다면 집어 둥글게 오므려 컵인양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잡은 짐승의 뿔로 대신했을 수도 있다. 혼자 마시다가 누군가에게 그것을 건네 물을 먹게 했을 수도 있다. 그 어떤 방식이든 컵인양 쓴 것이 330 만년 전에 돌을 깨 칼로 만들기 이전 시대인 400 만년 전에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화석이 증명하듯 그때도 고대인들이 살았었다. 그들 역시 걸어다녔고 손의 사용이 가능했고 때론 목이 말랐을 것이다. 돌을 활용하는 지혜도 머잖아 등장했을텐데 그처럼 현대의 컵인양 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었을까. 개연성의 범주에 속하지 않을까.
그 얼마 후 300 만년이란 시간이 단절적으로 지나 100 만년 전에 컵에 해당되는 뭔가가 유물로 발견되었다고 치자. 그 시기를 컵의 기원 시점으로 정했다고 해보자. 단절된 두께 그 이전을 결코 볼 수 없을진대 그 기원이라는 설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단지 현재까지 발견된 자취들을 단단히 해주는 역할 밖에 더 있는가.
그것으로서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단절 너머에 대한 의심 내지 가능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기에 탐탁치 않은 면이 있다.
여기서 인간에게 더욱 자연스런 길을 열어주는 것이 앞서 말한 보편성과 그에 접근할 수 있는 인지력과 상상력이다. 그것들을 무시한채 보편적인 초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보는 관점 위주의 폭력으로 막는 것은 다채롭고 풍요로운 고대의 생활상과 문화를 고루한 성에 가두는 폐단을 초래한다. 천연적인 도구들은 현재의 연속선상에서나 단절 너머에서 얼마든지 쓰였을 것이다. 과학 내지 사관. 때론 우매한 휘장일 수 있는 그것들로 그처럼 찬연한 선사 시대의 풍경을 가로막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하지 않을까.
‘천연 도구 시대’나 목기 시대 혹은 그린 시대. 그 무엇으로 이름짓든 간에 그런 새로운 개념을 설정한다면 선사 시대의 풍경이 한껏 다채롭고 풍성하게 열리게 된다. 박물관에 석기 시대 전시실 앞에 그런 이름을 단 전시실이 새롭게 설치된다면 박물관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친근과 지혜, 행복이 더욱 소담히 빛나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