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정치

속보

더보기

이원종 비서실장 "박 대통령 최적의 의사결정 보좌"

기사입력 : 2016년05월15일 19:06

최종수정 : 2016년05월15일 19:06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인사…부처 개각 등 후속 인사도 관심

[뉴스핌=이영태 기자] 이원종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은 15일 "앞으로 제일 먼저 비서실의 힘을 하나로 합쳐서 대통령께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하실 수 있도록 보좌해 드리고, 원활하게 국정을 펼쳐나가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드리는 데에도 역점을 두겠다"고 빍혔다.

이원종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이 1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출입기자들에게 취임 소감을 밝히고 있다.<사진=뉴시스>

이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출입기자들에게 "국가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님을 보필하는 소임을 맡게 돼 우선 두려운 생각과 아울러 어깨가 매우 무겁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울러 "저는 평생 공직에 몸 담으면서 공직자는 자기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게 국민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아 왔다"며 "앞으로 더욱 노력해 대통령께서 지향하는 희망의 새 시대, 국민이 행복한 시대를 만들어가는 데 일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 실장(1942년생)은 이날 박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한 이병기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임명됐다. 행정전문가인 이 실장은 국립체신대학에서 통신행정, 성균관대학교에서 행정학을 각각 공부했다. 1966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한 후 1990년대 초부터 2006년까지 서울시장을 비롯해 민선과 관선 충북도지사를 3차례 역임했다.

그는 충북도지사를 마친 뒤 한국지방세연구원 이사장과 서울연구원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현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지속기구인 지역발전위원장을 맡았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신임 이 비서실장은 행정 전반에 걸쳐 풍부한 경험과 식견을 갖추고 있고, 친화력과 신망이 있는 분으로 대통령을 원활히 보좌하여 국민소통과 국가발전에 기여해 나갈 적임자"라고 인사배경을 설명했다.

이 실장은 충청 지역 모임 '청명회'에서 반 총장과 함께 활동해 온 멤버로 알려지면서 친분이 두텁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를 두고 이 실장의 발탁이 반 총장의 대선 후보 영입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친분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두텁다고는 하지만 같은 고향인 정도"라고 답했다. 이 실장은 충북 제천 출신으로 제천중학교와 제천고등학교를 나왔으며, 반 총장은 충북 음성 출신으로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반 총장을 최근에 언제 봤느냐는 질문에는 "오래됐다"며 "(반 총장이 청와대에서) 수석하실 때 부부 모임으로 청와대 초청을 받아서 식사하는데 옆자리에 있었다"고 언급했다. 반 총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의전수석을 지냈으며, 노무현 정부에서는 외교보좌관으로 일한 바 있다.

반 총장과의 인연이 와전된 게 많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이 실장은 "그런 것을 바로잡아주시는 게 언론이 할 일"이라고 했다.

◆ 정무장관직 신설 등 후속 개각 관심

한편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비서실장과 정책조정수석, 경제수석을 교체하는 일부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 나섬에 따라 개각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원종 신임 비서실장에 이어 신임 정책조정수석에 안종범 경제수석, 신임 경제수석에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이를 두고 정게에선 4·13 총선 참패로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에 치명타를 입은 박 대통령이 참모진 개편을 필두로 국면전환을 위해 인적쇄신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을 고려할 때 큰 폭의 개각은 없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서도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내각을 바꾼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박 대통령이 지난 13일 여야 3당 원내지도부와의 회동에서 정무장관직 신설 등에 대해 어느 정도 필요성을 인정해 소폭의 개각은 가능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기자 (medialyt@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광복군, 일본군 무장해제 "항복사실 모르느냐?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전의(戰意)가 없는 것을 보이기 위해 기관단총을 모두 어깨에 걸쳤다. 그러고도 만일을 위해서 각각 산개하면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몸을 날렸다. 아. 그때 그 바람 냄새, 그 공기의 열기, 아른대는 포플러의 아지랑이, 그리고는 아무것도 순간적이었지만 보이지 아니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가? 우리 주변엔 돌격 태세에 착검한 일본군이 포위하고 있었다. 워커 구두 밑의 여의도 모래가 발을 구르게 했다. 코끼리 콧대 같은 고무관을 제독총에 연결한 험상궂은 방독면을 뒤집어쓴 일본군이 차차 비행기를 중심으로 원거리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그리던 조국 땅을 밟고 처음 맞은 분위기였다. 동지들은 눈빛을 무섭게 빛내면서 사주경계를 했다. 그러나 아직 기관단총을 거머쥐지는 아니했다. 여의도의 공기가 움직이지 않는 고체처럼 조여들어 왔다. 뿐만 아니었다. 타고 온 C46형 수송기로부터 한 50여m 떨어진 곳의 격납고 앞에는 실히 1개 중대나 되는 군인들이 일본도를 뽑아 든 한 장교에게 인솔되어 정렬해 있었다. 그 앞에는 고급장교인 듯한 자들이 한 줄 또 섰고, 장군 몇 명도 있는 듯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8월 18일 한낮의 그 뜨거운 여의도 열기가 우리를 더욱 긴장시켰다. 격납고 뒤에까지 무장한 군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중형전차의 기관포도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환호하는 광복군.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비행장 아스팔트 위엔 한여름의 복사열이 그 위기의 긴장처럼 이글대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땀에 젖어 있었다. 기막힌 침묵이 십여 분이나 지났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행동도 취해 오지 않았다. 마침내 우리가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일본군 고급 장교들이 늘어선 쪽으로 한걸음 씩 움직였다. 각자 산개, 조심하라! 누군가가 이렇게 나직하게 말했다. 서해 연안으로 비행기가 고도를 낮출 때 누군가가 유서를 쓰던 일이 이 순간 내 머릿속에서 상기되었다. 일본군 병사들은 우리가 다가서자 의외로 포위망을 풀 듯이 비켜섰다. 우리는 아직 기관단총을 어깨에 멘 그대로였다. 일본군이 길을 열어주자, 그들도 일본군 육군 중장을 선두로 한 장교단이 우리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조선주차군사령관 죠오쯔끼(上月良夫)였다. 쬬오쯔기는 그의 참모장 이하라 소장과 나남 사단장과 참모들을 뒤로 거느렸다. 우리도 좌우로 벌려 섰다. 쬬오쯔기가 「나니시니 이라시따노?(무슨 일로 왔소?)」말문을 열었다. 퍽 야무지게 보였다. 우리는 말 대신 영등포 상공에서 뿌리다 남긴 선전 전단을 내밀어 주었다. 우리의 임무가 일본어와 우리말로 적힌 전단이었다. 거긴 또 우리가 이렇게 들어오게 된 사연도 적혀있었다. 우리는 한 장씩 그 전단을 다른 일본군 장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쬬오쯔끼는 이를 받아 읽고, "일본은 정전만 한 상태이니 일단 돌아갔다가 휴전 조약이 체결된 다음에 재입국하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위협했다. 자기네 병사들이 꽤 흥분되어 있으니, 만약 돌아가지 않으면 그 신변 보호에 안전책임을 지기가 어렵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에 이범석 장군이 "네 놈들의 천황이 이미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사실을 모르느냐? 이제부터는 동경의 지시가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맞섰다. 그러나 쉽사리 양보하지 않았다. 옥신각신 말이 몇 번 건너 왔다 갔다. 갑자기 쬬오쯔끼는 한 일본군 대령에게 일을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경서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 마중을 나와 있던 참이란 말을 하고는 물러가 버렸다" 이범석 장군은 일본군 측에 "조선 총독을 만나 담판 짓겠다'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일본군 무장해제 임무를 띠고 국내로 들어 온 '광복군 국내정진군'은 아무런 소득도 올리지 못한 채 다음 날 8월 19일 14:30분 여의도 기지를 이륙하여 중국으로 돌아갔다. 광복군은 미군정이 시작되고 나서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 개인 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29 08:00
사진
중국 전기차 주행거리 두배 증가 배터리 개발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이 에너지 밀도를 두 배 증가시킬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칭화(淸華)대학 화학공학과의 연구팀은 '음이온이 풍부한 용매화 구조 설계'를 개발해 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불소 함유 폴리에테르 전해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중국 관찰자망이 30일 전했다. 해당 연구 성과는 논문 형식으로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에 등재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폴리에테르 전해질은 고체이며, 연구팀은 해당 전해질을 사용하여 전고체 배터리를 제작했다. 제작된 전고체 배터리는 604Wh/kg의 에너지 밀도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150~320Wh/kg인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 밀도가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동일한 무게의 배터리이지만 해당 전해질을 사용한 전고체 배터리는 두 배 이상의 전력을 충전할 수 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 거리가 두 배 증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500km가량을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가 1000km를 주행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 테스트도 통과하였다. 못을 박아도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120도의 높은 온도의 박스 안에 6시간 동안 방치되었지만, 연소나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500회 이상 충방전을 거치면서도 에너지 저장 용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된다면 많은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해진다. 전기차의 주행 거리는 두 배 증가하며, 드론의 비행 거리도 두 배 증가하게 된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역시 부피당 저장 용량을 크게 끌어올리게 되며 ESS 소형화가 가능해진다. 칭화대 연구진이 개발한 전고체 전해질의 도식도 [사진=네이처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9-30 10:35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사제목
기사가 번역된 내용입니다.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